신년사
‘묵은 것을 울려보내고 새 것을 맞아들이자(?)’
홍 근 수
이사장, 향린교회 목사
새해를 맞이한 강호의 독자 여러분들을 환영하며 축하한다.
금년은 기필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사람이 살 수 있는
보다 나은 세상이 될 것을 기원해마지 않는다.
우리는 새해에 축복을 비는 인사를 교환하고 새해에 좋은 것이
오리라는 막연한 희망에 부풀어 있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새해를 올바로, 책임있게 맞이할 마음가짐과 태도를 갖추고
있는가? 책상 서랍이나 집안 청소를 하는 것, 묵은 달력을
내리고 새해의 달력을 거는 것, 제야의 종소리를 듣는 것,
길거리에 나가서 불꽃놀이를 하고 맥주병을 비우는 것, 또는
새해의 첫날 바닷가나 높은 산에 올라 일출을 보는 것 등이
새해를 맞이하는 바른 준비의 전부인가?
그런 것들이 필요하겠지만, 낡은 생각과 마음, 구태의연한 낡은
정책과 제도와 법 등을 가지고는 새해를 의미있게 맞이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 그렇게 해서는 아무리 새해라고 우긴다
하더라도 새해는 아닐 것이다. ‘앙샹 레짐’(ancien regime)은
언제나 ‘앙샹
레짐’일 수밖에 없으리라.
연말연시에 우리는 19세기의 영국의 계관 시인 알프레드
테니슨(Alfred Tennyson)의 아주 적절한 노래를 보통 부른다.
테니슨의 “옛 것을 울려 보내고 새 것을 울려 들이자”는
노래다. 이것은 동양적인 표현으로는 ‘송구영신’(送舊迎新)일
것이다.
그런데 울려 보낼 묵은 것, 다시 말하면 ‘송구’할 것은 어떤
것이고 울려 들이고 맞아들일 새 것, 즉 ‘영신’할 것은 어떤
것인가? 테니슨에 따르면 시기와 분쟁, 옛 생각, 질병, 고통,
탐욕, 전쟁 등은 묵은 것으로서 울려 보내야 할 것들이고 송구할
것이며, 순결한 삶, 새 맘, 기쁨과 사랑, 참 자유, 평화, 등은
울려 들일 새 것, 즉 영신할 것이다.
그런데 요즘 이 사회의 지도자라는 자들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어떤가? 새해를 맞으면서 ‘송구영신’(送舊迎新)이 아니라
거꾸로 ‘송신영구’(送新迎舊)를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정말 안타깝다. 인권대통령을 자처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반인권적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는 대통령, 개혁입법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있는 국회의원들, 역사의 근본 방향이
변했는데도 불구하고 범민련과 한총련 등에 대한 이적단체규정을
스스로 교정하지 못하고 있는 사법부의 나으리들, 남한의
민주정부의 3부의 높은 지위에 있는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모두
예외 없이 그런 것 같다.
지금 김대중 정권이 하는 것을 보면 민족독립운동, 민주혁명,
민족자주운동 등 민족정통성은 더 이상 모두 의미가 없는 것들인
것 같다. 가령 박정희 기념관을 세우는데 현직 대통령이
그 추진위의 명예회장을 하면서 앞장서고 있고, 이 정부가
국고에서 200억원 이상 지원하는 것은 물론 500억원을 모금할 수
있도록 국무회의에서 가결하여 전적으로 정부가 박정희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시피 하고 있다.
그런데 박정희가 누구인가? 박정희 기념관 건립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가 ‘보릿고개’를 극복하게 했다는 공을
인정하면서도 오늘 우리가 당하고 있는 경제적 환란인 IMF의
근본적이고 궁극적인 책임자였다는 중대한 사실을 환기시켜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부패의 극에 달하고 민주주의 자체를 그
근본에서 부정했던 문민우익반공 이승만 자유당 정권을
맨주먹으로 쓰러뜨린 4월 혁명을 총칼로 깔아뭉개고 불법
쿠데타를 자행하여 권력을 강탈했던 범죄자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그것보다도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더 중대한 사실은
우리가 나라를 잃었을 때 그가 독립운동 지사들을 색출,
박멸하는 데 열을 올렸던 왜군 장교였다는 사실이 아닌가? 현직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
명예회장’직을 맡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제2인자요 유신본당으로
자처하는 김종필과 공동정권이네 공조네 하고 있지 않은가?
또 다른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이를 위해 광주 학살을 자행했던
제1 책임자였던 전두환을 전직 대통령이라 하여 감옥에서 석방,
사면해주고 지금도 걸핏하면 청와대로 초청하여 상대접을 하고
그와 국정을 의논하고 있다. 국가보안법 개정 불가라는 전두환의
입장에 동조하는 듯이 지금 국회에서는 국가보안법 폐지는커녕
개정 계획도 없다. 이는 또 무엇인가?
이 나라와 민족의 정통성을 멀리는 기미년 3․1 독립운동,
가까이는 4월 혁명과 민주화를 위한 광주 민중항쟁에서 찾을 때,
김대중 대통령이 지금 하고 있는 것은 한마디로 3․1
독립운동, 4월 혁명, 그리고 광주 민중항쟁을 유린, 불법시하는
것은 물론이고 모독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민족해방이나 민족자주니 민족통일이니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현실정치 또는
실용주의란 이름 아래 민족과 민주의 정통성 마저 내동댕이치고
팔아먹어도 된단 말인가?
김대중 대통령의 이러한 민족정통성에 어긋나는 방자한 행동은
요즘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정치적인 쟁점이 되고 있는 소위
‘의원 이적’ 또는 ‘의원 임대’ 문제에도 잘 나타나 있다.
지난 해 세밑에 집권여당인 민주당이 자민련과의 공조관계를
복원한다며 민주당 의원 세 사람을 탈당시켜 자민련에 가입케
하였다.
선거에 의해서 국민의 심판으로 원내교섭단체가 못되면 국회법을
고쳐서라도 다시 원내교섭단체로 만들거나 의원을 꾸어주어서
부족한 숫자를 채워 원내교섭단체로 만드는 것이 과연
민주주의인가? 국민의 열화 같은 요구인 개혁입법은 하지 않고
이따위 저열하고 비민주적인 문제로 정쟁을 일삼고 있는 국회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구조조정으로 축소해야 할
대상으로 전락되어 버렸는데도 애먼 노동자들만 구조조정이란
이름 아래 정리해고하고 길가로 내몰고 있지 않았는가?
세 의원을 꾸어주는 ‘얕은 수’를 쓴 김대중 대통령의
정계개편은 우리가 그렇게도 극렬하게 비판하고 반대했던 노태우
정
권시절의 소위 ‘3당 야합’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야당
지도자였던 시절의 김대중의 말과 행동은 대통령이 된 지금 그의
말과 행동을 단죄하고 있는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것을
현실정치니 실용주의니 하는 이유에서나, 또는 ‘그 때는 그
때고 지금은 지금이다’ 라는 등의 상황윤리 논리의 변명이나
합리화가 가능한가?
정치란 결코 도덕과 거리가 멀거나 유리된 것일 수 없다.
동양에서 정치라고 할 때 ‘정’(政)이란 글자의 의미를 말하지
않더라도, 도덕에 기초하지 않는 정치나 권력은 생각할 수조차
없다. 정치는 의로워야 한다.
어느 성현이 말했듯이 만일 한 정권에 정의가 없다면 그것은
‘도둑의 집단’일 뿐일 것이다. 적어도 정권이란 강도단이나
도적떼와 달리 도덕과 정의, 원칙과 정도(正度)의 길을 추구해야
한다.
지금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해야 할 고유하고 시급한 책무를
뒷전에 밀어놓고 송신영구로 해가 지고 해가 뜨는 것 같다.
그들은 정쟁에나 열을 올리고 있으면서 민생이 어떻게 되는지,
역사의 방향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등에 대하여는 도무지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그들은 무익한 종인 자신들에 대한 구조조정은
하지 않고 탐욕 많고 큰 도둑인 이 나라의 재벌들과 자신들을
보호하기에 급급하다. 이런 악하고 게으른 종들은 배신자들에
다름 아니다. 저주를 받아라!
역사는 결코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우리 인간이
만드는 것이고 투쟁하는 자의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꾸는
한 해’가 되도록 노력하고 투쟁하여야 하지 않는가? 새해 더욱
건승(健勝)을 빈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