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간특별호: 한노정연 백서] 2007.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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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못하는 스트레스

현장에서 미래를  제종간특별호
해미

말 못하는 스트레스
 
  
병원일로 만나는 노조가 있다.
 
나는 (정말 비겁하다...) 병원일은 그저 ‘병원일’로만 생각하려 애쓰고 ‘조직’을 하려고 몸과 마음을 다 하기보다  최대한 양심을 지킬 수 있을 만한 ‘내용’을 만드는 수준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그 와중에도 비공식적인 루트를 통해 조직의 가능성을 만들 수 있으면 그래보려 노력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그들이 원하는 ‘전문성’ 만큼의 내용을 내어 놓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나는 비겁쟁이다.
 
하여간, 오늘 한 노조에 다녀왔다.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설문조사 결과 문제가 있었던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현장검진을 하기로 한 날이었다. 검진을 하는 내내 폭발하는 줄 알았다. 폭발할거 같았던 또는 이렇게 노조 같지 않은 노조 만나서 일하는건 정말 짜증난다는 생각에 우울해지기까지 하는 ‘오늘’이다. 이 프로젝트와 관련해서 만난 조합들과 관련된 몇 가지 에피소드.
 
#1.
 
나 : 설문지 검토 해주세요.
위원장 : 우리는 잔업 없어요. 특근도 없고... 물량이 너무 적어서 한 달에 20일도 일 안하는데... 회사가 너무 어려워서 걱정이에요. 중소기업들은 너무 어렵거든요. 설문지에서 근무시간, 잔업/특근 같은 거는 빼주세요.
 
오늘 만난 환자 : 물량이 많아서 요새 매일 밤 9시까지는 남아서 일해요.
 
나 : (허거덕... 너무 친절하게 위원장님이 나서서 작업시간 줄여주고 물량 걱정해 주시는 거 아니야? 순진하게 조합간부들 말만 듣고 노동시간 설문지에서 빼준 내가 바부탱이지... ㅠㅠ)
 
#2.
 
나 : 설문지를 분석해 보니까 근골격계 검진 대상이 100%네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검진을 전원(이라 해봐야 100명이지만) 다 하실 수 있다면 그렇게 해볼께요.
위원장 : 아니 그러실 필요 없어요. 일부만 하면 되요. 괜히 문제만 커져요. 예전에도 몇 명 아프다고 그래서 병원에 보내줬는데 너두 나두 간다구 해서 제가 중간에 못가게 한적 있어요. 그렇게 악용하는 사람들 있어서 안돼요. 그러다가 회사 망해요.
상급단체 담당자 : 환자가 많아지면 조합이 부담이잖아요. 고령화를 대비한 ‘예방'에 촛점을 맞추면 좋겠네요.
 
나 : (일단 아픈사람들의 규모가 얼마나 되나 확인을 해야지 그에 맞는 예방도 가능한 거 아니겠어요? 그리고 현재 환자들이 정말 치료가 필요한 사람인지 적당한 운동치료와 물리치료만 하는 되는 정도인지 그냥 예방만 하면 되는 건지 판단하는 게 최소한 아닌가요? 전부다 100% 치료는 못하더라도 아픈 사람은 아프다고 이야기하고 최대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 하는거 아닌가요? 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3.
 
나 : 설문지 분석해보니까 평균임금이 너무 적더라구요(90만원 수준이었다).
위원장 : 다들 기본급만 적어서 그래요. 상여금이 600%나 되는데 다들 그건 임금으로 생각 안해서 그런 거라구요. 다른 사업장들도 다 그래요. 요즘 다들 경기가 안 좋아서 난리인데 임금보다 고용이 먼저지요. 임금을 깍아서라도 고용만 보장된다면 되는 거 아니겠어요? 정년을 늘이는 게 지금의 최우선 과제예요. 우린 너무 많이 놀아서 한 달에 20일도 일 안해요.
 
나 : (정년까지 일했는데 골병들면 뭐하나요? 퇴직하고도 건강하게 여생을 즐겨야 하는 거 아닌가요? 지금 임금도 적은데 뭘 더 낮춰요? 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4.
 
상급단체 담당자 : 선생님 죄송한데요. 현장 순회 하시면서 ‘문제다’, ‘심각하다’ 이런 얘기 안하셨으면 좋겠어요. 조합원들이 문제를 괜히 알아서 좋을 거 없잖아요. 조합만 힘들어요.
 
나 :  (노안 활동이, 아니 노동운동이란 거 자체가 조합원들이 어려워하고 힘들어 하는 거가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문제라는 거 공감하고 소통하게 하는데서 시작하는 거 아닌가요? 입막고 귀 막는다고 조합원들이 모르는 게 아니잖아요? 몸으로 느끼고 있는 거 함께 이야기하고 싸우게 하는 게 기본아닌가요? 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5.
 
위원장 : 현자노조 짜증나요. 자기네는 연봉도 많으면서 그거 성과급 몇푼땜시 잔업하고... 이러면 우리 같은 부품업체도 물량 떨어져서 일이 안되는데 너무 자기 밖에 모르는 거 아니에요? 중소기업들 처지는 생각도 안해주고... 자기들 파업할 때는 괜찮구 우리도 예전에 많이 파업했었는데 우리가 파업하면 위약금 물리고... 저렇게 과격하게 싸우는 게 노동운동인가요? 시대에 뒤쳐져요.
 
나 : (그건 현대 자동차가 국내 시장을 자기 중심으로 독점적으로 재편해서 생기는 문제지 현자 노조가 파업해서 생기는 문제는 아니잖아요? 현자 노조가 파업안하다구 해서 현대 자본의 부품사 착취가 끝나는 건 아니잖아요? 작년에 순이익 어마어마하게 내고도 그깟 성과급 안 주려는 자본이 문제지 그거 달라고 싸우는 노동자들이 문제인가요?)
 
#6.
 
위원장 : 아니 글쎄, 현자 전주 공장은 교대제 못하겠다고 싸웠다면서요? 하여간 배부른 소리에요. 누구는 물량이 없어서 못하는데... 어처구니가 없어요. 국가 경제가 어려운 마당에... 월급도 많이 받으면서 일도 편하게 하겠다는 건 도둑놈 심보 아니에요?
 
나 : (물량이 늘었으면 설비랑 인원을 늘리면 되지 하는 것만으로도 수명이 준다는 심야노동을 강제할 권리는 없지요. 기왕 있는 교대제도 없애자고 난리인데... 오히려 시대에 역행하는 거에요. 그리고 언제는 국가경제가 잘 나갔던 적 많았나요? 그리구 국가 경제 잘 나갈 때는 노동자들의 삶이 나았나요? 저는 일하는 만큼 돈 못벌고 있다고 생각해요. 비싼 대공장의 임금이 문제가 아니라 너무 낮은 당신들의 임금이 문제인 거라구요. 왜 노동자만 하향평준화 해야 하는데요?... 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전부 안으로만 삼키고 대부분의 질문에 나는 그저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노조의 위원장은 노동운동 역사가 20년이 넘은 만년 위원장이신 분이다. 노동운동의 산증인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하고 계시다. 물론 생각은 이렇지만 현장에서는 대장처럼 존중받으며 산다. 내가 이야기한다고 씨알이라도 먹힐 사람이 아니다. 에효...
 
내가 만약 책임연구자였으면 이런 프로젝트는 안 했을 거 같다. 하지만 교수님 이름으로 하는 프로젝트라서 내 맘대로 할 수가 없다.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건 그저 ‘내용’을 만드는 것뿐이다. 스트레스 받고 이런 현실들을 보면서 해도해도 너무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저 보고서의 ‘내용’만이라도 현실을 드러내게 써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다. 비겁하지만 이게 최선이라고 위로하고 싶다.
 
올해도 또... 이런 프로젝트를 한다고 한다. 아후... 하고 싶은 말 못하고 속으로 삼키느 스트레스는 계속될 것 같다. 아흑... (산업의학 전문의)

2007-01-18 19:3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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