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간특별호: 한노정연 백서] 2007.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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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노정연과 나(?)

현장에서 미래를  제종간특별호
정옥순

한노정연과 나(?)


글쓰기 주제 참 고루하다. ‘한노정연과 나’ 라니?! 그렇다고 딱히 거창한 제목도 생각나지 않는다.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이뤄진 한노정연에서 나는 그야말로 현장 연구원 자격으로 연구소에 적을 두기 시작했으니, 그런 나에게 한노정연은 내가 잠시 현장을 떠나 갈 곳 몰라(?) 할 때 언제나 든든하고 따뜻한 장소를 제공해준 사랑방,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었다. 그리고 거기를 거점으로 다시 다른 곳으로 옮아갈 수 있는 힘을 주기도 한 곳이었으니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은 곳이었다는 것에 이의를 달수가 없다. 연구소는 내게 그런 곳이었다.

11월 초 완벽하게 반대 시간에 열흘간 머물다 돌아온 한국에서 한노정연 해산총회를 한다는 공지 메일을 받았을 때 그냥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으로 받아들였다. 역사적 소임을 다했다고, 표현했듯이 그 역할을 대중조직이 정치조직이 해가고 있다고, 이제는 이론 연구를 자기 업으로 할 수 있는 자들의 공간으로 새로 꾸려가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것에 동의하면서 말이다.

해산총회 당일, 사당역 8번 출구를 나와 연구소까지 오는 동안 연구소가 정말 없어지는 총회에 가는 중이구나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마음이 무거워지는 걸 느꼈다. 그리고 얘기하면서 훌쩍거리고 말았다. 그러다보니 정말 하지 못한 말이 있었다.

나는 언젠가부터, 아마도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영어 ABCD를 처음 배우면서 외교관의 꿈을 키웠다. 중간에 몇 번 꿈이 바뀌기도 했지만 그 꿈은 운동을 하면서 노동자 국제연대 실현을 위한 활동이라는 것으로 옮아왔다. 물론 꿈에 걸맞게 내가 열심을 다한 것은 별로 없다. 그냥 맘으로만 어쩌다 시간이 나면 영어공부를 유지하면서 그렇게 지냈다. 한노정연과의 인연은 97년 대학 졸업 후 아침 일찍 설치한 현대자본주의이해 세미나에서였다. 그때 나를 본 은숙언니는 ‘저런 도깨비 같은 년이 우리 연구소에 왔다냐!’ 했단다. 아마도 화장에 진한 립스틱을 바르고 다녔던 나의 모습이 그녀에겐 익숙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다 99년 초 피자헛 노동조합을 들어가기 전 후 설치된 자본론 세미나에 결합했었다. 노조 상근한다고 세미나 참여에 열성을 다한 것은 아니었으나 팀 반장이랍시고 놀러도 다니고 다른 많은 사람들도 알게 된 기회를 주기도 했었던 세미나였다. 지금 그들은 어디서 한 자락씩 하고 있는 모양이다. 세미나가 끝나갈 무렵, 한노정연 국제 세미나를 시작했다. 세 명이 했었는데 거기서 두 명이 국제연대활동에 대한 끈을 놓고 있지 않으니 당시 우리를 이끌었던 원영수 선배의 농사는 자못 성공을 거둔 셈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그렇게 진행된 세미나를 뒤로 하고 나는 다시 노조 상근을 시작했다. 그야말로 내 인생에서 몇 안 될 중요한 지점인 롯데호텔노조에서의 상근이었다. 만 3년이 조금 넘는 롯데호텔노조 상근 동안, 특히 2000년 6월 파업이 들어가기 전후의 내 기분이나 상태가 연구소 등산모임 쉬엄쉬엄 가는 ‘당찬길’ 게시판에 남아있다. 지금도 가끔씩 들어가서 당시의 글들을 읽어보곤 한다. ‘당찬길’ 모임을 통한 산행들은 한노정연을 기억하게 하는 또 하나의 매개가 되기도 한다.

다시 나름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나는 국제연대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만큼 그에 따른 정보를 취합하는 것엔 영 젬병이다. 머리로는 해야지 하지만 어느 곳에서 양질의 자료를 거둬들여야 하는 지를 잘 모르겠다는 거다. 그런 면에서 한국어로 쏟아지는 소식을 쫓아가기도 벅차다. 언제쯤 자생력이 생겨 관련 소식을 전달하는 주체가 될지 현재로선 나도 알 길이 없다. 정보 취합이 느림에도 불구하고 국제연대의 구체적인 상을 그리고 키우는데 나에게 한노정연은 지대한 공을 미쳤다. 그 속에서 선배도 만나고 후배도 만나고, 물론 선후배주의를 벗자면 그냥 나와 관심이 비슷한 아니 한참 앞서 있는 동지들을 만나게 해준 곳이다. 그리고 현재 나는 나름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국제산별조직에 들어가 활동하고 있다. 아직은 버거움이 많아 늘 씩씩대지만 그래도 하고자 했던 일을 노동조합 수준의 국제연대활동이지만 열심히 해볼 생각이다. 그런 활동의 모태를 제공했던 한노정연이 사라지는 것이다. 발전적 해체라고 하지만 해체는 해체다. 이젠 그야말로 내가 운동을 못하겠다고 객기를 부리다가도 어느 날 다시 기웃거릴 수 있는 공간이 더 이상은 내게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번 백서에 글 몇 자 남겨 나의 서운함을 달래려 한다. 그리고 하나 덧붙이자면, 작년(2005년)에 나는 친구와 도보여행을 했다. 친구가 ‘바람’이라는 이름으로 2회에 걸쳐 도보 여행기를 연재하는 동안 나는 한 줄도 정리하지 못했다. 싣고 싶었지만 육신이 편하지 못했던지라 그냥 넘기고 말았다. 그래서 이 글 뒤에 실어볼까 한다. 물론 미완성이다. 5일차부터는 메모에 불과하다. 그걸 완성형 문장을 만들기엔 시간과 내 기억이 허락하질 않는다. 다만 어떻게 궤적을 밟으며 도보 여행을 했는지 남기고 싶다. 이 백서는 나도 보관하게 될 것이니 어딘가에는 흔적을 남기고 싶은 욕심에 실어본다.

그동안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를 통해 알게 된 모든 이들의 건투를 빈다. (국제식품노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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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도보여행기


“털어버리기”
- 두 발로 땅 끝까지 왜 걸은 거지?


도보여행을 계획한 건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그 이유를 잠깐 잊고 있었다.
작년(2004년) 6개월간의 외유가 있은 뒤 다시 외유를 계획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아 뭔가 탈출구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서점에서 어떤 여성의 도보 여행기를 접하게 되었고, 또 어느 날은 우연히 ‘산사 체험’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뭔가 개운하지 않은 것들을 털어 버리는 나만의 의식으로 도보여행과 그래도 안 털리면 산사 체험도 하겠다고 뇌까렸다. 그런 생각을 한 것이 올 초였는데 다시 일상에서 이런 저런 바쁜 일정들을 보내면서 그런 계획들을 잊고 있었다. 고통이 있을 때 정면으로 돌파하지 않고 그냥 일로 잊어버리는 것은 정말로 잊는 것이 아니란 걸 경험으로 나는 알고 있다. 그래서 정면으로 나에게 집중하고 탐색하는 그런 시간을 조력자와 함께 2개월 정도를 보냈다. 그리고 번역에 세미나에 알바에 그리고 간간이 산행과 수다 떨기로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여전히 잡히지 않는 내 마음과 고통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와 나를 괴롭히기도 했었다.

막상 계획을 하고 삼복더위가 내리쬐는 이 땡볕에 걷는다는 생각을 하니 끔찍했다. 출발 이삼일 전의 더위는 눈물이 날 정도였다. 작년 이맘때의 더위 축에는 끼지도 못한다고 하는데 난 그 경험이 없었으니, 게다가 필리핀이란 더운 나라에서도 소매가 긴 옷을 늘 들고 다녔던 나로서는 이 더위가 두렵기도 했었다. 친구에게 이런 저런 핑계를 댔지만 씨알도 안 먹힌다. 어렵게 휴가를 낸 것이니 그렇기도 했겠지만 나중에 걸으면서 보니 이 친구 각오가 대단했다. 친구가 도보여행용으로 에어운동화를 장만했을 때 나는 포인트로 산 조깅화로 될 거라고 오만을 떨었고, 일주일 전부터 짐을 싸고 풀었던 친구에 비해 나는 가기 전날 밤이 되어서야 짐을 쌓다. 그리고 친구는 새로 장만한 에어운동화 신고 워밍업으로 걷기를 이틀 정도 3시간가량 해줬는데 평소 걷기에 자신 있었던 나는 신발만 빨아 말려 신고 그냥 출발했다. 이렇게 차이가 났던 게다.

7월 30일 1일차
*걸은 길: 병점역 -> 1번국도 오산 -> 서정리 -> 송탄 -> 평택의 **재래시장 -> 평택역 근처 주공아파트
*쓴 돈: 27,500원(물 등 2,000원, 밥 8,500원, 맨소래담 로션 2,500원, 쮸쮸바 1,000원, 과일 7,000원, 집들이선물 6,500원) / 각자 10만원씩 묻음.

전날 7시에 신도림역에서 친구를 만나기로 약속했다.
아침에 일어나 대충 세수하고 이 닦고 나가려는데 친구가 전화를 한다. 늦게 일어났으니 8시에 만나자고 한다. 시간에 맞추기 위해 잠깐 앉아 있다가 주무시는 엄마한테 인사도 없이 집을 나섰다. (나중에 엄마가 전화를 해서 그제서야 나는 먼 길, 오랜 시간 떠나는데 인사도 없이 나온 나를 발견하곤 의아해 했다.)
늘 느끼는 거지만 이른 아침에 지하철을 타면 무수히도 많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정말 부지런한 사람들과 게으른 나를 중첩시키면서 나도 일찍 일어나 움직여야겠다는 실행하지도 못할 다짐을 하곤 한다.
신도림역에서 천안 가는 열차 하나를 보낸 뒤에 약속시간보다 몇 분 늦게 친구가 도착했다. 아침이라 입맛이 없었는지 친구가 내민 사과를 싫다 했다. 전철을 탔다. 예정보다 늦게 만났으니 수원이 아니라 병점에서 출발하지고 합의를 봤다.

병점역에 내려서 어디로 나가야 하는지 가늠한 뒤 역 밖으로 나갔다. 토스트라도 하나 먹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근처 가게가 하나 눈에 들어온다. 토스트를 주문하고 열차 승무원 같은 아저씨에게 1번 국도가 어느냐고 물었다. 오른쪽으로 끼고 돌면 바로 1번 국도란다. 아울러 우리 복장에 관심을 보인다. 도보여행 시작한다니까 부러워하는 눈치다. 해남까지 가려면 하루에 몇 키로 걸어야 한다느니, 대략 13일정도 생각한다니까 ‘여유 있게 가겠네.’라는 훈수도 잊지 않는다. 토스트를 먹고 ‘수고하세요.’를 남기고 1번 국도를 찾아 걸음을 옮겼다. 한 200미터쯤 왔을까? 마실 물을 사려고 가게에 들어갔다가 토스트 값을 지불하지 않을 걸 알아차렸다. 정직하게 다시 되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갈 것인가? 잠깐 고민하다 그냥 가던 길로 갔다. 아줌마도 토스트를 정신없이 만들어주다 돈을 받았는지 어쨌는지 깜빡하셨던 게다. 우리가 예의바르게 인사까지 하고 왔는데도 말이다. 나중에 거기 지날 일이 생기면 그때 드려야겠다.

병점 사거리 표지판을 뒤로하고 사진 한 장 찍어달라고 지나는 아저씨에게 부탁했다. 쌩뚱 맞은 표정으로 마지못해 한 장 찍어주신다. 가슴속에 도보여행 첫날 첫발의 설렘이 고스란히 담겨있을 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아직은 허여 멀건한 얼굴과 팔 다리만은 분명히 박혔을 것이다. 1번 국도로 이어진 길은 번잡하다. 근처에 아파트며 가게가 늘어서 있고 차량 통행량도 많다. 후배가 공수해준 베트남산 밀짚모자를 쓰고 걷는데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그러거나 말거나...

처음 만나는 고가도로를 피해 옆길로 샜다. 그러고 보니 걸어야 할 거리가 더 길어졌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위험해도 고가를 타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햇볕이 장난이 아니다. 모자로 가렸지만 연신 흘러내리는 땀을 주체하기가 힘들다. 친구와 걸으면서 50분 걷고 10~20분 쉬기로 했다. 잠을 설쳤는지 잠도 쏟아진다. 오산 끝자락 국도 변의 아파트 공원에서 낮잠을 잤다. 자전거 여행자로 보이는 젊은 학생 둘도 우리와 같이 낮잠을 잔다. 1시간을 뒤척이다 다시 출발. 토스트로 아침을 먹은지라 배도 고플 때가 됐다. 점심을 국도 변 옆길로 나 있는 길로 들어가 허름한 중국집을 찾았다. 친구는 콩국수가 먹고 싶다고 했고 나는 밥을 먹어줘야 뭔가 기운이 날 것 같아 볶음밥을 시켰다. 그런데 이 콩국수가 가관이다. 직접 간 것이 아니라 뭔가 여러 가지 가루를 가득 탄 것 같다. 급기야는 우유 맛도 난다. 역시 관심을 보이는 중국집 (주인인지 종업원인지 잘 모르겠지만) 사람들. 오늘이 첫날이라고, 걸어왔다고, 오늘은 평택까지 갈 거고, 앞으로 땅 끝까지 갈 생각이라고 얘기한다. 한 아저씨 평택까지 8km 남았단다. 뭔가 힘이 솟는다. 2시간 정도만 걸으면 된다는 생각에 말이다. 화장실도 쓰고 물도 채우고 다시 1번국도 쪽 길을 잡으려고 도로를 무단 횡단하는데, 친구는 내팽개치고 혼자 건넜다고 ‘지 혼자만 살겠다고 친구도 버릴 년’이라고 한바탕 욕을 퍼붓는다. 그래도 2시간 거리라고 생각하니 여유를 가지며 웃어가며 길을 가는데 거리 표지판이 보인다. 근데 웬걸... 8km가 아니라 15km이상 남은 길이었다. 무너지는 내 두 다리...

다시 헉헉대며 길을 걷는데 정오가 지나며 작열하는 태양은 우릴 쓰러뜨리고 싶은가보다. 쓰러지기 직전의 상황쯤 송탄 버스 터미널 근방의 아파트 길을 따라 가는데 쪽문이 보인다. 그리고 화단도 보인다. 무조건 들어가 자리를 폈다. 다시 누웠다. 발바닥 물집이 걸려서 아프고 신경 쓰인다. 계속 걸려오는 격려 전화로 잠은 거의 자지 못했다. 그냥 뜨거운 볕이 조금 가시길 누워서 기다린 셈이다. 다시 일어나 걸었지만 얼마 가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4시경엔 무지 덥다. 왜냐면 태양이 10시부터 3시까지 열을 발산해 온 세상을 데우는 지라 거기서 발생하는 지열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다시 더위를 식히려고 시의회 송탄 출장소에 들어갔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물 인심은 야박했다. 당직을 서는 공무원으로 보이는 몇 명이 우릴 무슨 도둑쯤으로 생각하는지 시선이 곱지가 않다. 결국 날 선 친구가 한바탕하고야 만다. 그래도 물은 주지 않는다. 그런 공무원의 행태가 열 받아 공무원노조 홈피에 올리고 싶었던 마음이 굴뚝같았다. 씩씩대며 길을 잡아가는 데 서정리역 근방에서 우리를 앞선 자전거 여행자들이 모자를 들어 인사한다.

송탄IC 근방은 대규모 신도시가 조성되는 중이다. 서울 외곽의 일산, 분당의 신도시처럼 수원 또는 평택 근방에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다. 저 많은 집들 중에 친구나 내가 맘 편히 살 수 있는 집 한 칸이 없구만...
드디어 평택으로 들어가는 도로가 넓어지고 있다. 차들도 여기저기서 갈아타는 교차로인 것 같다. 쭉쭉 뻗었다. 우리 또한 (안전을 위해) 차를 마주보며 걸어야 하는 지라 이리 저리 도로를 갈아타느라 몸을 바삐 움직였다. 그 와중에 발바닥 물집은 역시 나를 실망시키지 않고 욱신거리는 고통을 주었다. 마침내 평택역과 시청으로 갈라지는 갈림길이 보인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길이 1번국도 구도로와 신도로로 나눠지는 길이었다.) 이제 얼마 안 남았겠거니 하며 박수를 쳤다. 일단 오늘의 목표치는 얼추 완수된 셈이었으니까...

우유를 사먹으러 들어간 가게 주인아저씨가 역까지는 더 가야한다고 일러주신다. 이미 목표치에 도달했다고 생각하니 발바닥은 더 욱신거리고 거리가 멀게만 느껴진다. 마침 낯익은 곳이 눈에 들어온다. 7월 10일 대추리 투쟁 때 버스 타고 지났던 길목의 재래시장이다. (나는 워낙이 길에 대한 눈썰미가 좋은 편이다. 한번 가본 길은 몸으로 느낌으로 기억하곤 한다.) 다시 반가움에 박수를 치고 재래시장에서 과일을 좀 샀다. 오늘 기거할 곳에 선물 겸 우리 먹을 간식용으로... 주공 4단지를 물어물어 평택역 번화가를 가로질러 도착했다. 마침 쓰레기를 버리러 나온 S 언니가 정말이지 아무런 감흥도 없이 우릴 맞이한다. 문 열어놨으니 올라가 쉬고 있으란 말을 던졌고 우린 계단을 올라 집에 들어가 녹아내리는 두 다리를 쉬게 했다.

오랜만의 해후라 수다도 이어진다. 못 박히고 물집 잡힌 발에 실을 꿰어 주고 뒤뚱뒤뚱 거리며 이사한 집안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좋았다. 전에 살던 집에서 키웠던 콜라란 애완견의 근황을 물었더니 아파트라 데려올 수 없어 시골집에 맡겼는데 죽었다면서 안 그래도 그것 땜에 맘이 찢어진다며 슬퍼한다. 잘 해주지 못한 것이 맘에 걸린다면서... 평택으로 이사하면서 신경 쓸 일이 많았던지 그새 살이 좀 빠진 듯하다. 오늘 지나오면서 본 산업단지 내 휴대폰 액정 만드는 공장에서 8월 8일부터 일할 거란다. 우린 짐을 다시 풀렀다 쌌다. 필요 없는 짐을 빼려 했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모기향만 맡겼다.

첫날의 도보는 먼지 뒤집어쓰기와 난폭한 버스 피하다 ‘휘청’하기 그리고 차량 마주보며 걷기가 포인트였다. 서울과 가까운 경기도라 차량 이동량이 많아서인지 매연도 심하고 먼지도 꽤 많았다. 한비야가 추천한 족욕을 간단히 하고 맥주도 한 잔 들이켰다. 그리고 어느새 밤잠이 없어져서 새벽이 되어야 잠이 든다는 언니를 뒤로하고 잠이 들었다.

7월 31일 2일차
*걸은 길: 평택 주공 4단지->성환->직산->천안역
*쓴 돈: 15,600원(찐빵 3,000원, 콩국수 8,000원, 아침거리 4,600원)

언니는 어느새 일어나 근사한 아침상을 봐줬다. 전날 밤 ‘낼은 뭘 해주나’ 걱정하더니만 시원한 마른 새우 미역국에 계란찜 등 한 상 뿐질러지게 내놨다. 그 마른 새우 미역국 맛이 기가 막힌다. 연신 맛나다고 하니 좋아하는 눈치다.
대충 고양이 세수를 하고 길을 잡았다. 아파트 바로 옆길이 1번 국도로 이어지는 새로 난 도로란다. 우리가 어제 걸었던 길은 시내를 관통해 돌아오는 길이라며 언니가 길잡이를 해준다. 한 2km나 걸었을까? 언니가 신고 나온 슬리퍼가 새 거라며 벌써 물집 잡혔다고 이제 그만 들어간단다. 아쉬운 작별을 하고 1번 국도가 만나질 때까지 산책로로 닦아놓은 쿠션 좋은 길을 걸었다. 나오는 길에 안개도 제법 끼어서 카사블랑카의 한 장면까지는 뭐해도 운치는 제법 있는 편이었다.

1번국도 양쪽으로 꽤 너른 평야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가로수로 심어진 듯한 빈약한 나무와 나무 사이에는 엄지손가락 한 마디만한 거미가 거미줄을 쳐 또아리를 틀고 있다. 왜 그리도 많은 거야...(이런 종류의 거미는 땅 끝까지 이어졌다.) 마침내 평택과 천안을 가르는 경계 다리가 나왔다. 그 길에서 사진 한 장씩 찍어줬다. 출발부터 심상치 않았지만 어제 물집 딴 발이 계속 욱신거린다. 뜨거운 아스팔트 위를 걷는 거라 그런지 발의 열기까지 더한다. 눈앞에 보이는 LPG 휴게소에서 휴식을 취하며 친구의 등산양말을 겹쳐 신었다. 조금 나아지는 것 같다. 친구가 ‘산에 갈 땐 준비도 잘하더만 이번엔 왜 그렇게 했냐’며 한 마디 한다. 속으로 이렇게 대꾸한다. ‘이 땡볕에 가기 싫었던 맘이 있었던 게지.’

다시 걷는데 차량도 서행한다. 우리가 신기한 듯 구경하느라 그런가보다. 나야 모자를 써서 잘 안보이지만 썬크림도 안 바르고 모자도 쓰지 않은 친구는 그 눈길이 다 보였나보다. 그런 와중에도 나의 발은 나를 계속 좌절시켰다. 입으론 계속 ‘더 이상 못 걸을 것 같다’를 연발하고 ‘서울 가서 등산화로 갈아 신고 다시 올께’, ‘동생한테 어디 택배로 보내라고 할까?’ 등 별 말을 다하며 길을 잡았다. 역시 포인트로 산 운동화로 걷기에는 아스팔트가 너무 강한 거였을까? 준비가 부족한 나를 탓해야겠지. 아픈 발을 쉴 겸 국도 변 찐방 집 앞에 앉았다. 마침 문을 여신 아주머니께 찐빵 값을 물어보고 먹기로 결정했다. 친절한 아주머니는 자가 펌프로 지하수를 퍼 올린다며 시원하니 발이라도 씻으라고 하신다. 찐빵 3천원 어치 사먹고 직접 키운 참외로 푸짐한 인심까지 덤으로 받았다. 심심하지 않으시냐는 질문에 그래서 텔레비전이나마 틀어놓고 계신단다. 한참을 쉬고 난 뒤 일어났다. 얼마 가지 않아 헉헉대고 발바닥 열기는 계속되는 지라 중간 중간 걸음을 멈췄다. 게다가 햇볕도 강해 속도가 나지 않았다.

친구가 아는 언니의 초등학교 동창이 성환에서 아이스크림 대리점을 한단다. 그래서 그 언니는 도보여행 하다가 꼭 들르라고 당부를 했단다. 전화로 위치를 묻기 위해 몇 번을 전화한 끝에 성환을 지나 직산 초입에 있는 그 대리점을 마침내 발견했다. 문을 두들기고 들어가니 한 아저씨가 우릴 반갑게 맞는다. 어느새 냉커필 타놓으셨는지 우린 더운 김에 계속 벌컥 벌컥 들이마신다. 휴식을 취하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아저씨는 이미 다섯 아이의 아버지였다. 당연히 왜 이리 많이 나셨냐고 물었지. 그랬더니 ‘돈이 좀 돼서... 씨앗, 혈통이 좋으니까 더 나으려 한다’ 등등으로 대꾸하신다. 에고 우짤고... 우리랑은 영 사고체계가 다른 양반이시다. 갈 길이 멀어 우리가 한 시간 가량을 쉰 다음, 간다고 하니 아저씨가 냉동고에 들어가잔다. 그러면 땀샘이 축소되어 더위도 식히고 게다가 피부에 좋다고 한 말씀하신다. 냉동고에 들어가 쮸쮸바 하나씩 물고 나왔다. 그리고 천안으로 들어갔다.

잠깐의 휴식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고 또 다시 물집 잡힌 발의 통증이 나를 괴롭힌다. 속으로는 계속 뇌까린다. 서울 갈까? vs 운동화를 사야 하나? 결국 운동화를 사기로 결정하고 메가마트에 들어가 거금 116,000원을 주고 에어 운동화를 구입했다. 신발을 산 매장에 ‘구’신발과 침낭, 옷가지 등을 다시 싸서 택배를 부탁했다. 매장에 근무하시는 여성들이 대단하다며 부러워하는 눈치다.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든다. 그들도 우리처럼 돈은 풍족하지 않지만 맘만이라도 여행을 계획하고 편히 여행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본다.
몸과 발이 가벼워지는가 싶더니 잠깐이다. 쿠션은 좋으나 이미 발에 물집에 잡혀 심각한 상태인데다 길들여지지 않은 새 신발로 고통은 쭉 계속된다.

쩔뚝쩔뚝... 내 상태를 걱정하는 친구가 내 발걸음을 맞추느라 같이 고생이다. 그래도 눈에 들어오는 풍경들이 나쁘지 않다. 고가 아래서 한가로이 낮잠을 즐기시는 고물상 할아버지와 천안의 번화가와 그렇지 않은 곳을 나누는 다리를 건너니 오거리가 나온다. 한쪽은 순대와 삼일만세운동으로 유명한 병천 아우내 가는 길, 톨게이트 빠지는 길, 천안역 가는 길 등으로 나눠져 있다. 그때 시야에 ‘여성’으로 추측되는 자전거 여행자가 들어왔다. 여잘까, 남잘까 궁금해 하며 말을 걸어본다. 에고 팔다리가 쭉쭉 잘 뻗은 남자다. (날씬한) 그는 자전거로 목포를 간다했고 (상대적으로 튼튼한) 우리는 두 발로 땅 끝까지 간다 했다.

천안에 도착해 때늦은 점심 겸 저녁을 먹으려고 골목골목을 돌아다녔다. 최근에 천안에 오면 들르는 곳이기도 해서 잘 찾을 줄 알았더만 결국은 후미진 뒷골목에 가서야 한 식당을 찾았다. 다시 콩국수를 시켰다. 알고 보니 콩국수 콩물이 당일 또는 그 자리에서 직접 간 것이 아니라 ‘말린 콩가루’에 물을 타서 만든 것이었다. 여름이면 쉬이 상하는 것이라 그런 생각을 했나보다 하면서도 뭔가 아쉽다. 전날 먹은 콩국수의 콩물 정체를 대략 알만하다. 그래도 그것보다는 낫다. 한낮의 더위는 조금 누그러진 볕이 식당을 비추고 있는 것이 평화롭다. 어제보다 일찍 걸음을 멈췄다. 원래 일정으로 보면 천안 아래 유천리역에서 자려했다. 그런데 잠자리 소개를 부탁했던 동지가 그곳은 불편할 테니 천안역에서 자는 것이 좋겠다고 권해 그리 하기로 했다. 물론 내 발 상태도 한몫 거들었지만...

천안역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거긴 1번 국도에서 20여분 비껴간 곳에 위치해 걸어야 했다. 서울과는 다른 낮은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걷고 있는 보도 건너편에 인심이 후덕할 것 같은 방앗간이 보인다.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다. 철도의 한 동지 소개로 8월 1일부로 천안역에 복직을 하게 된 동지와 통화를 했다. 그 동지는 집에서 잠을 자는지 아들이 전화를 받는다. 역으로 가면 다른 동지가 있으니 가도 된다고 하신다. 염치 불구하고 지부 사무실 겸 직원 휴게실로 쓰는 공간에 문을 두들겼다. 마침 우리를 기다린 동지는 우리가 잘 곳을 보여준 뒤, 아직은 시간이 일러 휴게실에 들어가긴 어려우니 10시까지는 기다려야 한단다. 충청도 특유의 톤으로 적당히 미소도 띠시며 말씀하신다. 그래서 친구는 컴 앞으로 나는 티브이 앞으로 가서 시간을 죽였다. 얼추 10시가 되기 전에 사람들이 뜸 하자 샤워를 시작하고 땀에 절은 옷을 빨았다. 그리고는 깨끗한 이부자리를 펴 침대 옆 공간을 우리가 완전히 점령했다. 당분간 숙소가 어찌 될지 몰라 오늘의 호사를 최대한 누리자고 다짐하며 일찍 잠을 청했다. 근데 웬걸... 기차가 문제다. 십 분이 멀다하고 기차가 계속 들어왔다 나간다. 우야노... 난 성격이 까탈스러워 시끄러우면 웬만해선 잠을 자기 무지 힘들다. 결국 거의 새벽 3시가 넘어서야 피곤에 지쳐 골아 떨어진다.

8월 1일 3일차
*걸은 길: 천안역->천안삼거리->구성소방서->한솔제지 정문->선문대->23번 분기점->23번 국도 변에서 히치하이킹으로 공주 끝자락 주유소->논산 천동마을
*쓴 돈: 6,000원(팥빙수)

전날, 아니 새벽에 잠이 든 터라 결국 늦잠을 자고 말았다. 전날 편의점에서 산 아침거리로 간단히 대체했다. 다시 역에서 국도변으로 나왔다. 예전에 선배를 만나러 왔던 데라 곳곳이 익숙하다. 신번화가를 옆으로 끼고 천안삼거리를 지났다. 국도변에 있는 구성소방서에 들어가 물과 그늘을 빌렸다. 여기서도 관심 만빵이다. 소방대원들은 ‘학생이냐? 아줌마냐?’를 묻는다. ‘그게 대체 뭔 상관인지...’ 여하튼 그런 관심이 우리에게는 공짜 점심으로 이어졌으니 일단은 넘어가기로 했다. 힘든 일을 하는 양반들이라 지하에 위치한 식당-그리고 외주를 준 것으로 보이는-의 밥, 국, 반찬은 질이 괜찮은 편이었다. 하물며 공짜로 먹는 터인데 가릴 것이 없었다. (아저씨들에게 뭔가를 물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하긴 10개월이 지나 수첩에 적은 간단한 메모를 보고 이 글을 쓰고 있으니 뭘 바라랴.) 식사를 마치고 소파에 앉아 잠깐 쉬고 다시 길을 잡았다. 주변 풍경은 다르지만 아스팔트가 깔린 길은 별로 다르지 않다. 양옆에 즐비한 식당과 매점들이 보인다. 그런데 갑자기 반갑지 않은 사물 출현. 거의 내 상반신만한 큰 개가 달려들었다. 순간의 당황,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친구는 내 옆으로 와서 도와줄 생각을 할 수 없을 만큼 같이 놀랬다. 나한테 달려들었는데도 말이다. 나는 두 손을 허리 위로 들고 그야말로 ‘꼼짝 마’ 자세로 슬슬 옆으로 움직였다. 그 녀석 자기 구역을 침범할 것을 의식해서 그랬는지 슬슬 움직이는 나를 더 이상 좇지 않는다.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가!

계속 걸었다. 물집 잡힌 발바닥은 여전히 욱신거렸고 나는 점점 여행에 회의가 들었다. 그러다보니 자연 얼굴은 찌그러지고 친구는 그런 내가 불편했을 거다. 선문대학교를 지나 결국 천안 한솔제지 앞에서 뻗어버렸다. 그곳 정문 앞에 세워진 셔틀버스가 만들어준 그늘에서 신발도, 양말도 벗고 자리보전했다. 친구는 멀쩡해 보인다. 오히려 이런 내가 그 친구의 일정에 차질을 미치는 것 같아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그래도 친구는 혼자 가겠다는 말은 안한다. (지금 생각해보니 친구 성격이 나보다는 무지 무던하다. 성질 급한 내가 그 입장이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니, 아니 생각을 말자.) 그런 친구의 의지에 미안해서였을까? 다시 길을 잡았다. 500m를 걷고 다시 1km를 걸어 나타난 23번 분기점에서 친군 모종의 결단을 내렸다. 우리에게 주어진 일정상(13일), 그리고 나의 발바닥 통증으로 논산까지 점프를 결정했다. 나는 물론 속으로 무지 좋아했을 것을 말해 무엇 하랴? 언덕배기에서 차량을 ‘히치’하는 것은 ‘미친 짓-위험을 무릅쓰고 아무도 서지 않는다.’이라는 것을 몇 번의 실패 끝에 내린 뒤, 다시 몇 십 미터를 더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이미 차를 얻어 탄다는 결정을 한 끝이라 걷는 것이 더욱 고역이었다. 그래도 눈에는 저 멀리 그리고 가까이 펼쳐진 논과 밭이 시원스레 보여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그때 검은색 세단이 부드럽게 우리 앞으로 섰다. 기쁜 맘에 차에 올라탔다. 쿠션 좋고... 그는 우리가 남자들인 줄 알았단다. 친구의 짧은 머리에 밀짚모자를 눌러쓴 우리 모습이 그리 보였던 모양이다. 으레(?) 그렇지만 첨 만나는 사이에 간단한 인사를 건네고 우리 셋 다 동갑인 걸 알았다. 장사를 하는 모양인데 물건 배달 차 이동 중이라고. 그곳에서 우린 공주까지 차로 점프했다. 공주로 들어가는 국도 초입의 주유소 길바닥에 배낭을 놓고 앉았다. 내 모양새는 부상병 또는 패잔병의 모습과 같았을지 모른다. 더위에 지치고 발바닥 물집이 나를 괴롭혀 나의 낯빛이 유쾌하지 않으리란 건 분명하니까. 4번의 실패 끝에 다시 차가 우리 앞으로 섰다. 깽깽이 발을 뛰며 조금은 기쁘게, 또 조금은 서글프게 차에 올랐다. 아저씨는 당신 자식이 여행 중에 도움을 많이 받았다는 기억이 나 선행을 베푸신 게다. 그 친구를 도와준 이름 모를 이의 선행으로 우리가 도움을 받았던 것이다. 좀 비약일지 모르지만 세상의 모든 관계는 연결되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차량 보시에 이어 우리를 아저씨의 동생 집을 잠자리로 알아봐 주셨다. 그 동생은 논산 천동리 이장 직함을 가지고 계셨다. 젊으신 분이었고 하우스도 여러 개 소유하신 중농에 해당되는 듯 했다. 형제지간 우애가 좋은지 형의 돌출행동에 동생내외가 아무런 불평의 빛도 없이 푸짐하고 융숭한 저녁을 대접을 받았다. 하우스에서 갓 따온 수박을 디저트로 마무리하고, 그 집 아들이 쓰는 방을 점령한 채 다시 짐을 풀었다. 습한 날씨라 집안 곳곳이 함께 습했다. 그래도 이런 호사가 어디 있으랴. 샤워에 빨래에 널어놓고 나는 후끈거리는 발바닥 물집을 하염없이 바라만 봤다. 심지어는 굳은 살 박힌 발뒤꿈치에도 물집이 잡혀 나를 더 애타게 했다. 그리고 샤워 후 물먹은 물집 부위가 흐늘흐늘해지고 새끼발가락은 아예 물집이 포위를 했다. 워낙이 건강염려증 환자인데 이런 낭패가 또 어디 있으랴! 물집 잡힌 발이 약 먹는다고 다음 날 털고 일어날 수 있는 병도 아닌 마당에... 마음이 요동을 친다. ‘일단 올라가자. 그리고 다시 내려오자. 아니다. 그냥 가자.’를 연신 반복하며 나를 괴롭혔다. 결국 여행 진행 여부를 자기 전에 결정하지 않고 아침에 일어나 판단하기로 했다.
우리는 차를 타고 점프한 거리를 직접 걸었다면 이틀 반 정도가 걸렸을 거리를 거리를 고작 ‘40분’만에 도착했다. 약간의 허무함도 생기는 순간이었다. 다시금 내가 왜 이 땡볕에 걸을라 했는지 되새기면 안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어제는 무심코 지났던 천안역사 가는 길에 초등학교 담장으로 쓰인 철책(?)에 “Fast 천안”이란 구호가 붙어 있었던 게 기억났다. 충청도가 가지고 있는 ‘돌 굴러 가유우우우’ 이미지 제고 차원에서였을까? 그리고 이곳 천안도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노동력이 많은 곳임을 홍보하기 위해서인가? 이는 내려오면서 봤던 평택 근방의 공단과 천안 또한 새롭게 산업단지가 조성되고 있음을 반영하는 구호라도 되는 듯 했다. 느린 것을 참지 못하는 성격 급한 나지만 천안의 이런 변화가 썩 유쾌하지만은 않다.

8월 2일 4일차
*걸은 길: 논산에서 서울로 점프, 물집 치료. / 친구는 논산에서 삼례까지.
*지금까지 쓴 돈을 제외하고 반으로 나눔(75,450원씩)
전주로 내려가기까지 쓴 돈
(차비 8,500원+15,000원/치료+약값 4,500원/떡볶기 4,000원/호도과자+우유 2,500원/택시비 4,000원)

아침에 눈을 떴다. 결정은 서울로 되돌아가는 걸로. 친구는 못내 아쉬워했지만 내 상태 때문에 더 이상은 아무 말이 없다. 고등학생이 있는 집이라 그런지 아침이 일렀다. 물론 농촌인 이유가 더 크겠지만. 아침까지 대접을 받고 8시경 천동리 샘골마을을 차로 출발했다. 학교 등교를 위해 아이의 어머니가 나서서 그 덕에 타게 된 것이다. 차에서 내려 감사 인사를 전하고 친구와 나는 택시를 이용, 논산터미널로 향했다. 그런데 서울 가는 터미널은 대각선 200미터 전방에 있다고 한다. 다시 아픈 발을 부여잡고-서울에 간다고 다짐을 하고나니 더 아픈 듯- 걸었다. 마침 20분 이내로 출발하는 버스가 있다. 자판기 커피를 한잔 뽑아들고 친구와 나는 작별을 고했다. 올라가서 치료받고 내려오도록 하겠다는 위로와 함께. 버스가 움직이고 친구는 나를 지켜본다. 나중에 들은 말이지만 친구는 눈물이 찔끔 났다고 한다.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 창문으로 빗방울이 스친다. 벌써 친구가 걱정이다. 피곤함에 눈을 부치고 일어나니 서울이다. 터미널에서 시커멓고 꽤재재한 모습으로 집 근처 병원을 들렀다. 치료를 받고 주사를 한대 맞는데 간호사가 이것저것 묻는다. 얘기 끝에 그녀의 파란만장한 여행기를 들었다. 이 정도 물집은 유도 아니라면서 자신도 국토 종주를 해봤고, 현재 사하라 횡단을 준비 중이란다. 우와~ 난감함과 그녀의 말에 다시 기운도 붙는 것 같다. 집에 도착한 나를 반기는 건 우리집 강아지 짜부다. 좋아서 난리다. 하루 종일 집에서 빈둥거리며 몸을 쉬게 했다. 몇 시간 뒤에 ‘짜부’와 앞 산 산책도 했다. 친구는 지금 어디에 있을라나? 걱정도 되고 몸은 집에 있지만 마음은 같이 걷고 있는 기분이었다. 친구에게 문자가 온다. ‘거지’란 제목으로 자신의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낸 것이다. 비가 제법 오는지 안 쓰던 모자에 비옷까지 입은 모습이다. 마음이 저려온다. 친구의 기분은 어떨까? 무사하길...

친구는 그날 삼례까지 들어갔다. 늦은 시각까지 걷느라 지칠 대로 지친 모양이었다. 삼례에 찜질방이 있다는 정보를 갖고 찾아봤지만 더운 여름이라 임시 휴업이라고 했단다. 결국 교회에 잠자리를 청했고, 처음에 남잔 줄 알고 예배당 한 편에서 자라고 했던 모양인데, 알고 나서는 집사님 방을 내줘서 편하게 쉬었다고 한다. 게다가 학생들이 사온 햄버거로 저녁을 먹은 게 좋았던 모양이다.

8월 3일 5일차
*차와 발로 움직인 길: 전주 고속버스터미널->금산사행 버스정류장->택시로 713번 지방도에서 1번 국도 교차로 근처 금구 방면에서 하차/ 친구와 만남->금산사 근방 쌍용리 마을회관
*쓴 돈: 4,300원(아이스크림 1,000원/아침거리 3,300원) / 각자 다시 55,000원씩 묻음.

-11시 20분 서울->전주로 14시 30분 도착. 오는 도중에 물에 잠긴 비닐하우스가 눈에 들어옴./금산사 산사 체험자들 3명을 버스 정류장서 만남. 간밤의 폭우로 버스길이 끊어졌다는 버스 기사의 말을 들음. 택시를 타기로 결정함. 4명이 함께 타고 내 몫으로 5천원을 건넸더니 천원을 거슬러주는 친절한 총각. 그 총각도 역마살 어지간한 듯. 전국 안가본데가 없다. 일이나 여행 등으로...
-15:15 713번에서 1번국도 교차로에서 금구 방면 하차해 친구와 다시 만남.
-16:00 다시 출발. 가는 길에 용달차 아저씨 얼음물 1리터를 희사하심.
-비교되는 것: 화장실 인심이 박한 오일뱅크 주유소 사람들/잠자리를 거부한 전통사찰 쌍용사 안주인(?)
-인상 좋은 목우촌 정문 경비아저씨 “대한민국전도”를 선물로 주시다. 원래는 본인 것이었는데 다른 근무자가 자기 것인양 굴었다고 불만을 토로함. 그 사람이 찾으면 어쩌냐는 물음에 상관없다고 모른척한다고 하신다.
-쌍용리 마을회관 젊은 이장 숙박 허락. 학생인줄 알고 반말하다가 일반인(?)인 것을 안 뒤 사과함.
-주민증 복사함. 혹시나 마을회관 기물을 들고 나갈까봐 염려되어서. 예전에 그런 사고가 있었다고 함.
-친구가 나의 머리카락을 잘라 줌. 싹둑.
-술 취한 마을 아저씨 불시에 문 두드림. 이장에게 허락받았다고 얘기하고 돌려보냄.
*쌍용리 들어오기 전 삼거리에 서로 마주보고 가게가 두 개였음. 치열한 경쟁관계임을 보여줌. 쮸쮸바 2개씩 먹음.
-폭우로 산의 흙더미 무너져 내리고 잠긴 논의 물 빼는 모습...
-용달차 아저씨 같이 걷고 싶다고 부러움을 표함.
-삼거리 가게에서 얼핏 본 단발머리 아저씨 마을회관 문 흔듦. “당신들 누구야?” “이장님 허락받았다. 전화해볼까?” 슬그머니 사라지심.
-아름다운 풍광들. 잠긴 논밭의 안타까운 모습들이 대비됨
-인심좋은 사람들: 쌍용리 구멍가게 아줌마 보리차 1리터 기꺼이 희사
-무너진 제방(둑) 아슬아슬한 엘피쥐 저장소
-상대적 부촌의 모습과 젊은이들이 간간이 보임.
-소깃발이라도 하나 달걸하는 아쉬움.
“당신은 집에서 가사와 육아 분담을 얼마나 하고 계신가요?”
“여성해방/노동해방 만세”
“비정규직 철폐”

8월 4일 6일차
약품 3,300원 / 음료·우유 4,700원 / 밥 6,000원

금산사 쌍용리->정읍 구계리 마을회관(상교동 동사무소 근방)

-7시전 기상
-태인면 읍내에서 콩국수 두 그릇(직접 갈은 듯한)
; 배달 남편의 한가로움(주문자 기다리든 말든 할 일 다 하고 배달). 속 터지는 부인, 그러나 큰 소리 한 번 못 냄. 큰소리는 오히려 아저씨가 더 치고, 배달이 밀려서 투덜. 점심시간에만 고용한 아줌마 걸핏하면 안온다고 투덜.
-새로운 물집 두 개(오른쪽)
-비온 뒤 날이 푹푹 찜. 전날보다 속도가 나지 않음.
-쉬는 횟수 늘어남
; 씨앗감자 보관소(냉동고)에서 잠깐 쉼. 연자언니 도착 문자 옴.
; 북면, 시골가게 할머니(앉아서 쉬면서 수다).
-연자언니와 5시 50분경 정읍사 방면 사거리에서 만남.
-솟튼재 넘기(제주 5.18 종단도로 맛남)
-정읍의 어떤 둔치에 앉아 연자언니가 싸온 천도복숭아+베지밀 마심. 그리고 빵집에서 더위에 지친 몸을 팥빙수로 달램.
-숙박을 위해 두 군데 전화(찜질방)->불발
-정읍시내를 넘어 19:35 구계리 초입. 마을회관 숙박문의(한참을 기다린 끝에). 이장님 부인 동장님이 쐬때를 가지고 등장. 마을회관(노인정)으로 청소한바탕(화장실 박박, 방청소 쓱쓱)
-담가온 매실 주 한잔->잠자기. 밤늦게 불 켜진 회관에 궁금하신 노부부 찾아옴. 자초지종을 말씀드림.

-7시30분 기상. 씻고 청소하고 짐싸서 노인정에 할머니 한 분 일착으로 도착.
; 청소했다고 해도 비질하시는 할머니 “풍으로 불편해 보였음.”
-다시 상교동 동사무소 앞 가게로 가 아침 얻어먹음(08:30)
; 된장국, 호박, 열무 등등. 보은을 위해 커피, 드링크제 등등 사다. 봉천동 시장에서 미장원을 한다는 시누이를 가지신 아주머니. “돈 벌어 건물도 올리고 등등”. 충남 서천이 고향, 내려온 지 30여년. 등이 굽으신 시어머니 모시고 살다. 밭농사(콩은 메주용으로, 깨)

8월 5일 7일차
음료 3,600원 / 필름 2,200원 / 우유·차비 2,700원

-마의 6km 갈재 그리고 곰재
-9시 출발, 밥 먹은 뒤 바로 걸어 옆구리 결림
-구계리 초입에서 잠깐 쉼(치질, 변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눔)
-아침부터 푹푹 찜.
-자전거 맨들 통전대에서 6일 만에 여기 옴. 해남까지 갈 모양. 약간의 담소.
-북하면 보건소 앞 정자에서 30여분 휴식
; 보건지소 선생님 물집은 터질 때까지 놔두고 터진 뒤 실로 뚫으라는 ‘새로운 방법 제시’
-새롭게 잡힌 발바닥 물집 신경쓰임의 연속
-가게 아줌마가 싸주신 옥수수와 오이를 마의 고개 갈재에서 먹다.
-물이 없어 괴로우던 터에 갈재 정상(전북 정읍과 전남 장성 경계) 옆의 산에서 내려오는 수로에서 물 받아 먹음.
-연자 언니 갈재고개에서 차 세워 물 공수를 간절히 요청(엉뚱함)했으나 오르막 내리막 차선에선 아무도 서지 않는다. 위험.
-갈재 초입에서 한 아저씨 ‘고생을 사서한다’고 한마디 던짐.
-입암 저수지를 끼고 갈재올라감. ->전남 장성으로 ‘홍길동의 고장’
-장성사거리까지(백양사역)
; 농협 하나로마트에서 시원한 쭈쭈바, 콜라
(두 집 건너 하나가 수퍼. 어떨 땐 마주보고, 경쟁치열해 보임.)
; 연자 언니가 준 참치에 어제 역시 연자언니가 산 식빵에 발라먹음. 잘재에서 먹은 오이를 끼워 넣어 먹었다면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 연자언니 백양사역에서 15:45 상경(팁: ‘국민철도사수’ 조끼 입으면 열차 무료)
-언니를 보내고 퉁명스런 약국에서 흰 붕대 사고, 인사했으나 대꾸도 안함.
-손가락이 퉁퉁 부어 손을 털어가며 응급조치를 취했으나 별 소용은 없는 듯.
-다시 재를 만남. 옆으로 한 마을을 수몰시킨 장성호. 장성호를 따라 1번국도. 드라이브 코스로 좋겠다. 그러나 발뒷꿈치 통증은 가라앉질 않고 ‘재’를 내려오는 길에 지렁이 두 마리에게 물을 공수해 줌. 국도 변에 수많은 동물 시체들
-백양사 초입 수퍼에서 베트남 처녀(시집온 듯) 만났으나 정필이 준 베트남 모자를 모른단다. 우째 된일이랴? 미소가 안타깝다.
-1번 국도에서 15번 국도로 벗어났기에 버스에 올라타 초입까지.
; 일주문 넘어 용달차 히치. 뒤에 앉아 삼림욕 신나게 함.
-백양사 제법 큰 절. 뒤쪽으로 바위 봉우리가 인상적이었음.
; 원주스님 기다리다가 다른 스님께 잘 곳 마련 요청. 허락함. 두평 남짓한 방 깨끗함.
; 샤워장에서 샤워하다가 만난 처사는 스스로를 ‘직원’이라 소개하고 서울 도곡동이 집이 이 여인도 도보여행 가끔 한단다. 열흘 넘어야 걸을만 하단다. 으악!
; 퇴직금, 사대보험, 상여금도 없다. 절측에선 직원 아니다. 자원 봉사자란다. 직원의 반박은 ‘우린 채용되었고 임금을 받고 있다. 그런데 자원 봉사자인가?’ 현재 15명이 채용 상근자.
; 서울 조계사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절측에 성명서 제출, 조만간 결과가 나올 거란다.
; 바람을 타면 이곳까지 이곳에도 오겠지.
-그녀는 빨래를, 나는 홀딱 벗고 샤워와 빨래를 병행함. 오랜만에 본 짤순이에 옷을 짜서 넘.
; 같이 간 친구가 짤순이 사용법을 모른다 하여 나 왈, ‘부잣집 딸 티내냐’는 말에 화가 났는지 획 가버린다. 농담인데 화를 내서 긴장감 형성, 여튼 맘이 약해져 뒤쫓아가 사용법을 알려줌.
*예전에 내장산 갔을 때 본 절은 이 절이 아닌가벼? 대학 1년 때 고등학교 동창 집인 고창으로 가서 정읍이 집인 대학 동기와 만나 내장산에 올랐었음.

8월 6일 8일차
아이스크림 2,500원 / 밥 8,000원

백양사->진원면 시목
5:50 기상. 식사. 청소와 정리
8:00 경내 한바퀴 돔
8:30 출발. 차 히치. 약 12Km 되돌아감. 허무...
9:00 장성 사거리에서 816번 지방도로 40여분 도보 끝에 도로(가) 그늘진 곳에서 1시간 취침.
다시 816번 국도 -> 박산리 정자 근처 민가에서 화장실 사용
11:50 신층 도착(작은 곳) T자형으로 상가 등 형성.
12:00 ‘수복식육식당’에서 백반. 디저트로 수박. 2시간 낮잠. 주인아줌마가 안방을 내주심. 냉커피 챙겨주시고. 주인아줌마 인심 듬뿍 받음. 아들 둘인데 이번 추석에 내려온다고 함. 홀로되신지 만5년. 식당 5년차.
15:30 다시 출발. 재 넘어 먹구름 출현. 등산커버를 씌우고 다시 출발.
18:00 얼추 장성 도착. “돌아다니는 시골 개는 다 주인이 있다. 안 그럼 잡아먹는다. 종류와 상관없이...” 장성 파출소 교대 시간, 관심. 걱정.
19:00 경 다시 출발. 어둑해짐. 못재 넘어감. 길 험악. 날 어두워짐.
19:50 ‘시목’ 버시 정류장서 친구의 친구 기다림. 중간에 파출소 경관들 만남. 걱정, 관심 등등.
20:30 친구들 옴. 담양으로 왔던 길 다시 돌아감. 오늘 만 두 번째다. 길은 되돌아가 가라고 있는 것인가? 대나무 통밥집에서 포식함. 광주 첨단산업단지 근처 찜질방. “살이 되려 찐 것을 확인함.”

8월 7일 9일차
종이반창고 1,400원 / 밥 8,000원 / 아이스크림, 음료 1,000원 / 빵, 우비, 물 2,900원

7:20 기상(냉온찜질)
9:00 친구 늦잠으로 그냥 광산 IC로 가기로 함.
10:00 움직이기 구찮고 발바닥을 쉴겸 친구만 대형 마트에 가서 몇 가지(비 대비 우비, 행동식 빵) 사온 뒤 출발. 광산IC 13번국도 갈아탐.
11:30 산업단지 근방 주유소 평상에서 잠을 청함. 전날 찜질방서 소음 등으로 잠 설침)
13:00 점심(적은 양의 오무라이스에 놀람)
14:00 월곡동 파출소, 병원으로 보내려 하길래 서둘러 나옴. 대신 지름길을 가르쳐줘 감사한 맘으로.
; 그때 경찰서에 있던 여인 ‘형부(피의자)의 언어폭력’ 신고 -> 접수자 남성 경찰, 형부로 보이는 인물 서내에서 담배 빡빡. 그래도 되는 건지(?) 언니로 보이는 자 출현. 남편으로 보이는 자와 등 돌리고 앉아 있음.
->다시 출발. 우산동 아파트 내 평상 발견. 어르신들 ‘거서 여가 워떤 거린데. 환장허겄네.’ 양해를 구하고 드러누움. 얼마 안 있어 강풍을 동반한 소나기. 서둘러 일어나 우비 입고 커버를 씌우고. 어르신들은 비를 피해 들어가시고 일군의 어린이들 등장. 지들끼리 노는데 속옷만 입은 머스마를 왕따시키는 분위기. 유독 한 여자아이가 노골적으로 싫은 기색을 보임. 외모 때문인가? 뭔가 사유가 있을텐데. 아이의 인성발달에 장애가 오지는 않을런지 걱정이다. 오지랖이 넓지.
이때 마르티스 2마리를 데리고 한 아주머니 등장. 호기심을 보이며 당신도 제주도 혼자 여행 다녀왔다고, 비오는 데 고생 많고 160번 버스 타고 나주까지 가라고 적극 권유하심. 나만 혹함.
-얼추 비는 그치고 16:15 경 출발. 13, 22번 국도로 연결되는 고가위로 올라가 갈팡질팡->다시 내려와 짐을 챙기고, 친구와 헤어져 중간 어디메서 만나기로 하고 각자 걸어감. 친구는 13번 국도로 연결되는 고가로 나는 송정리역으로...
-송정파출소에서 17:10 555번 버스 승차 나주터미널 도착. 나주시내 대략 조망함. 에어콘 나오는 약국에 앉아 정리(1,400원짜리 반창고 사고). 처음 온 이곳은 대형 약국만 십여개 가량 되는 듯.
*생리 시작함. 예정보다 3일 빨리.
-19시 경 친구 다시 만남. 정류장 이름 ‘서호’
-8월 27일 배영희 동지 결혼한다는 말을 듣고 축하 인사 겸 셈나 발제 부탁 겸 통화함.
-서호에서 13번 국도 1Km 정도 전방에서 49번 전용도로(아우토반, 속도 측정 cctv도 없음. 갓길이 넓어 걷기에 편했음.->승촌면으로. 마을 어귀 가게에서 잠 잘 곳을 물어봄. 마을회관 관리하는 어르신의 도움으로 하룻밤 묵을 수 있었음. 그런데 이분이 술이 만땅이어서 나 씻는 동안 부녀회장 모시고 와서 인사시키고 다시 오셔서 문을 열어달라고 하심. 그래서 죄송하다고 저희가 피곤하다고 하면서 돌려보냄.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면서 잠을 청함.

8월 8일 10일차
우유 등 1,900원 / 아이스크림 450원 / 빵, 맥주 등 6,460원

6:29 기상. 친구 잠 설침. 간단히 빵과 커피로 해결함.

8:30 시작(승촌동) -> 금천면까지 49번 -> 다시 1번 국도로 나주. 나주 배 전시장 방명록에 흔적 남기기. ->영산포 방면(샛길로) 중간에 빵과 우유로 새참. 둑방길따라...

11:30 경 나주시 노인사회복지관 물 공수와 화장실 이용. 관장신부님 출현. 친절히 상담실로 이동. 시원한 드링크제와 각종 수다와 휴식. 점심 얻어먹음. 수박에 녹차(억수)까지 내려서 먹음. 다시 이어지는 수다 ‘대화에 목마른 사람마냥’ 사회복지사 1급, 특수사목, 박사과정 중. 돈과 직장에서의 해방되기 위해 신부가 됐음. 그러나 빡센 관장생활과 후원인단 모집과 나주시와의 예산확보 작업 등. 영암에서 묵게 되면 성당에 가서 **신부님을 찾으라고 하심.

13:30 출발.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로 천막집으로 대피. 짐 날라줌. 아줌마 ‘환장허겠어’ 연발하심. 당신도 산악회 회원이라심. 비그쳐 이동함. 다시 소나기 내림. 친구 샌달로 갈아신고 13번 국도로 이어지는 고가위에서 영암 보이는 도로표지판 앞에서 한 컷.

16시경 영암 신북 버스터미널 수퍼 인심 꽝(도보여행 중 최악이다. 역이나 터미널에는 뜨내기 손님들만 상대하다 보니 서비스가 전무한듯함). 안에서 우유와 빵 먹는 거 못마땅한 듯. “우유 먹을 때까지만 있어라” 나가자는 친구를 ‘우리만 손해다. 그러려니 하고 에어콘 바람 쐬고 가자’라고 만류해 앉아서 끝까지 먹고 나옴. 결국 나와서 한바탕함. 대체적으로 역전과 터미널 앞 뜨내기손님 상대 상인들의 인심 후덕하지 못함.
-세차지는 빗줄기에 등산화 바지를 따라 빗물이 들어갈 징조 보여 스패츠를 함. 다시 이동함.
-저 산이 월출산인가 하는 질문을 3~4번 한 끝에야 월출산 등장.
-감격의 눈물 두방울... 털어내자... 고민의 시간을 갖게 계기를 주었기에 생각할 수 있다. 편하게. 영암 5km 전방부터 발바닥 통증 극심. 영암 읍내로 들어와 관장신부가 소개시켜준 영암성당으로. 부엌한편의 마루가 오늘의 숙박지. 고정 안되는 선풍기에 빨래가 마를까 걱정. 낼은 월출산을 넘어 강진으로...

8월 9일 11일차
월출산 입장료 3,200원 / 김밥 3,000원 / 아이스크림 1,000원

-친구와 두 번의 긴장. 월출산 앞에서. 숙소 오는 길에서...
-숙소 처인 마을

6시20분 기상. 부엌에서의 하루. 닭소리 때문에 깸. 친구는 계속 궁시렁.
7시경 8시까지 수녀님들과 식사. 맛난 쌀밥과 수박. 9시경 천황사지로 출발.
; 신발에 물들어감. 물컥물컥. 신발 산 이래로 최초로 방수에 실패함. 심리상태 다운되고 짜증 업. 오기로 월출산 매표소까지 올라감. 가서 못가겠다고 일갈. 친구의 당황. 왜 온 거냐? 긴장성 있는 대화와 신발 물빼기, 양말짜기.
; 화장실 다녀와 생각 바뀜. 하늘 날씨도 개인 듯. 올라가기로 결정함. 예전의 무서웠던 기억들.
; 천황사지 물 한 사발. 헉헉, 땀 비오 듯. 한 바가지.
; 중간지점에서 김밥 먹고 구름다리에서 한 컷.
; 여행 중인 부부(고성으로 영암까지.)들의 초콜릿과 사탕들. 가는 갈에 흐르는 물 받음. 물이 없어서...
; 천황봉 807m. 정필 전화. 번역료 입금될 것이라는 소식을 전함. 구정봉 방향으로 하산. 봉우리 직전에서 경포대 방면으로. 하산하다 물통을 줍다.
; 계곡물 소리가 넘 무서웠음. 천황봉에서 문자 보내기.
; 하산 후 아이스크림. 친구 샌들로 갈아신고. 성전까지 / 멀리 2번 강진 방향 국도 옆으로 들어섬.
; 성전 면사무소 들어가 숙소를 알아봄. 처음의 경계. 소개. 각 마을 이장님께 전화한 끝에 ‘처인 마을’로 당첨. 외지인들을 한번 재워주다 도난 사고 몇 번 난 듯함. 경계와 의심. 이장님께 살겹게 굴다. 산사 근처 마을회관에서 주민등록증 복사해 놓고 왔다는 말에 어르신 환하게 웃으면서 문단속 잘하고 자라는 한마디 남기고 가심.
; 금순이를 향한 구재희. ‘정신 나가고 있음’
*영암 읍내에서 월출산 그리고 강진군 성전

8월 10일 12일차
밥 18,000원 / 아이스크림, 우유 2,700원

-6시경 기상. 친구 잠 설침.
-안마 마사지기 가동. 결명자차 끓여먹음.
-성전 동성식당에서 김치찌개로 아침을
; 남편 농사지은 걸로 반찬, 쌀밥 등
-강진방향 국도 옆 도로 따라 걸음. 자전거여행자 만남. 강진 한 마을서 보리 수확후 수매장으로 줄 서 있는 거 발견. ‘이거 쌀이에요? 보리란다.’
-강진읍 비껴 18번 국도 아래쪽으로 들어섬.
-백련사, 다산초당 이정표 / 중장비 대여점에서 2시간만의 휴식. 비올 때는 휴식처 찾기가 어려움. 그래서 속도가 더 빨라야 함. 호기심으로 질문과 대답. 이어지는 수다들. 제어하는 친구. 노인복지관에서도 그러했듯이.
-길이 예쁘다. 아마 군도 쯤 되는 듯.
-멀리 제방이 보이고 간척지를 매운 논이 평야를 이루었다.
-백련사 동백꽃이 유명한지 길가 조경수로 동백을 쭈욱 심었다. 열매를 맺었길래 궁금하던 차에 풀 깎는 공공근로 아저씨께 물어봄. 백련사 입구 1.5km를 지나 군도라 차량도 쌩쌩 달리지 않는다. 여유롭다. 비는 오락가락하고. 자켓을 입었다 벗었다를 반복함.
; 친구는 얼굴 탔다고 상기됨. 지난 지리산 산행 때 왼쪽 눈 아래 생긴 기미군이 가로로 은하수 띠를 이루어간다. 흑흑. 벌써 기미라니. 주근깨와 어우러져 가관이다.
; 별거 없다던 다산초당은 운치가 있다. 그의 여전제(토지개혁)
-> 공동소유, 노동일수만큼 분배. 형인 정약종은 신유박해 때 죽은 천주교 순교자였다. 새롭게 안 사실임. 올라가는 길도 500m 등산로. 초당 옆으로 직접 팠다던 연못과 뒤편에 약천수가 있다. 그도 가만히 못 있었던 성미였나보다. 서암과 동암(동암의 추사체가 보기 좋다.)에서 후학을 양성했다는 남인학통 중 정약용의 맥을 잇는 자는 특별히 기록되지 않았다. 진품 유물 전시관에서 본 계보도. 늘 그렇지만 여성의 이름은 없다. ‘어디 무슨 씨’로 통한다. 다산은 경기도서 태어났지만 어머니 고향인 ‘해남 윤씨’의 고향에서 유배생활을 했다. 단 하나 오점이라고 하면 초당 뒷길로 올라가면 그가 바위에 새겼다는 정석丁石 두 글자가 새겨져 있는 것. 이건 별로 맘에 들지 않음.
; 여기서 긴 시간을 보낸 뒤 다시 길 따라 나갔다. 55번 지방도를 만나기 위해 재를 넘었다. 허기가 졌다. 점심은 강진 포구 근방의 수퍼에서 쭈쭈바 2개와 우유, 식빵 두 쪽이 전부였다. 이런 허기로 산에서 걷기는 힘들다. 그러니 다행이지만 재를 넘어오니 도암으로 이어진 55번 도로가 보인다. 우측으로 월출산이 새끼를 친 듯한 암릉을 가진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다. 장관이었음. 산도 좋아 보였고 월출의 감동이.
-도암 마을에 들어가 우리식당이라는 곳에서 저녁을 먹었다. 한정식인데 가격이 꽤 비쌈. 나오려는 데 협상함. 최저가가 6천원인데 친구가 4천원에 해달라고 부탁하고 그렇게 해주셨다. 맛있는 백반이다. 반찬도, 국도, 밥도, 모두다. 한 그릇 뚝딱 비우고 서둘러 길을 나섰다.
-나오는데 우리랑 비슷한 행색의 남성이 혼자 지나가 붙잡아 물었다. 땅끝에서 북쪽으로 간단다. 낼은 서울에서 내려오는 또 다른 언니를 만나야 하기에 해남군으로 들어가야 한다.
-6시 10분경 출발함. 길을 잡고 가는데 똑같은 상의를 입은 여성들, 그녀들은 남해 횡단이란다. 땅끝에서 부산까지. 건투를. 다시 빗발이. 어두워진다.
-짜게 먹었는지 물이 계속 먹힌다. 주유소 휴게소 쉬고 다시 출발 7시 20분경
-차량 진행방향 반대편에서 마주보고 걷다가 진행방향으로 옮김. 밤에는 그리해야 한단다. 운전자가 볼 수 있어야 하기에 장성지구대 경찰들이 말함. 점점 어두워지는데 갑자기 배가 돈다. 그래서 날도 어둡겠다 논길 옆으로 앉아 뿌지직. 와 시원하다...
-다시 걷다. 주유소 아저씨 다리만 건너면 해남군이라고 여기가 경계란다. 다시 호기심 수다를 떨려는 나를 제어하고 나가자는 친구. 내 기분도 오락가락함.
-어두워 어떤 다리가 경계인지 모르겠으나 두 개를 건너감. 해남읍 두륜산 케이블카 타는 곳으로 가는 이정표를 무시하고 직진. 얼추 오늘의 목적지로 잡았던 신월리 돌비석 발견함. 이장님 댁이 어디냐고 구멍가게에서 물으니까 대문 없이 활짝 열려 있는 곳이라고 하신다. 나중에 그 이유를 들으니 헐어서 허물어졌다고 하심. 노인회 회장님과 통화 후 마을회관으로 그러나 세면장이 없다.
-파출소로 갔다. 순찰 중 불이 들어와 있어 몇분 기다리다가 전화기를 들었다. 여경의 목소리가 들려 사정을 설명(도보여행 중이고 마을회관에서 잠자리를 얻었는데 세면장이 없어 샤워하러 왔다고...)하니 10분후 쯤 도착한다고 얘기해줌. 샤워 후 감사하게도 신월리 입구까지 빽차로 데려다 주심. ‘좋은 일 많이 하는 경찰 되세요’를 입에서 오물오물 함. 덕도 많이 본다.
경찰도 인원부족에 시달려 파출소는 주간만 근무하고, 밤에는 지구대 중심으로 전체 순찰하는 듯. 광역화...
-낭패. 열쇠를 잠그고 갔는데 몇 분을 씨름해도 열리지 않는다. 하는 수없이 이장님을 깨우러 감. 죄송 죄송. 이장님은 꼭 사모님을 대동하시고 두 번다... 잉꼬 아님 두 처자가 무서워서.. 내외하시느라 그러시나???
-이장님이 그 자물쇠를 만지시더니 대번에 열린다. 기술력 짱.
-오늘은 수건 세장만 빨고 나머진 그냥 둠.
-낼이 마지막 도보가 될 지 먼길이라 어찌될지 모르겠다.

8월 11일 13일차
아침 10,000원 / 음료 2,200원 / 배표 7,700원 * 3명

-신월리 이장님 오전 6시30분경 마을 방송. 8·15 기념 군민 **대회 홍보. 많이 참여하여 대동단결 등등의 이야기들...
-간밤에 틀어놓은 보일러(방이 비 때문에 습해서) 때문에 열대야에 시달림. 자기 전에 오줌을 차옆에서 눔.
-이장님께서 잠을 깨우다. 아침밥 준비했다는데 아쉽고 미안하게도 만나야 하는 일행 때문에 거절함. 인사드리고 신월리 뜸. 친구의 갑작스런 퉁명스러움. 이유는 모르겠음. 나도 슬슬 짜증이. 속으로 별 생각을 다해본다. 당분간 안 본다. 연락 안한다. 등등. 극단적으로 발동되는 내 성격의 일면을 보여준다. 이럴 때마다.
-북일면 하나로마트 앞에서 상봉. 기사식당에서 푸짐한 남도식 백반. 삭힌 홍어도 두 점 먹음. 덜 삭힌듯.)
-두륜산을 옆에 끼고 쇄두재를 넘기 직전까지 비 쏟아짐. 신발에 물 약간 참.
-‘평암’ 노인정에서 낮잠. 보건소에서 얼음 물 공수. 우리 같은 사람이 많아 늘 준비해두신다는 세련된 복장의 보건소 소장님. 약 30km 걸음. 발걸음도 무겁고 배낭도 무겁다. 힘이 많이 든다.
-간척지를 만들어 심은 벼와 밭 품종들.
-해남의 붉은 황토가 공사로 몸을 드러내고. 정말 붉다. ‘적토다’
-오르락내리락 길에 경운기를 얻어타고. 약 1km를 단축했다. 편리 수퍼에서 간단한 점심. 친구가 손수건을 가게에 놓고 와 우린 무덤 앞에서 기다리고 친구는 차를 히치, 수퍼까지 갔다 옴. 땅 끝서 출발한 한 남자를 만남. 다시 길을 거다. 해안도로를 따라 고바위 계속 이어지고. 지나가며 수고한다며 손 흔드는 이. 이제 시작한다는 느낌이 들어 걱정한 한 학생에 말을 걸음. 그랬더니 서울에서 땅끝으로 다시 포항까지 간단다. 우와 대단하다. 신발은 뭘 신었는지? 잠은 어서 잤는지? 지나고 나니 궁금함이 밀려온다. 물어볼 걸 아쉽다. 그도 말이 고팠을 텐데. 혼자라서 말이다.
-마지막 고개 넘어 땅끝 도착. 기념비까지 가지는 않았다. 얼추 위에 있는 기념비에서 사진 한 컷. 한 커플 중 여성은 우리를 자랑스러워하고 남성은 비아냥거리듯 반말 짓거리다. 재수 없음.
-아래로 내려와 시원한 팥빙수 집에 여장을 일단 풀고 배표를 끊음. 해병대 유사품 머저리가 다른데서 뺨맞고 우리한테 화풀이다. 재수 없게시리. 친구 참지 않고 한번 걸고 온다.
-시원한 팥빙수 먹고 배로 가는 내내 춥더라.
; 보길도 도착. 터주대감으로 보이는 젓갈 장사 도움으로 민박을 얻어 민박 삐끼 아줌마와 택시 아저씨 인도로 예송리 해변 주변의 민박 구함. 마당넓은 집. 평상도 있고 돌담으로 둘러싸인. 좋다. 모기장도 훌륭하다. 딸이 와서 전복죽을 끓였다던 아줌마.
-감격과 감동은 영암에서 월출산을 봤을 때처럼 강하지는 않다. 그렇게 땅끝을 거쳐 보길도로 들어왔다.

***
보길도 걷기. 예송리 해수욕. 살 태우기.
용달차 얻어 타고 예송리로. 전복회 먹으며 남은 하루 밤 정리.
주인아저씨 항구까지 데려다 주심. 안개로 배가 안 떠 시간이 남아 자전거를 탐. 그리고 나서 파출소에서 샤워함.
표 끊고 해남으로 가기 전 보길도 아저씨와 한컷.
배에 타다. 먼저 광주로 걸었던 길을 뒤로 하며 그리고 서울로 입성하다.

2007-01-18 19:3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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