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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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29 20:42:44
박성인
[크리스 하먼] '자율주의', <다함께>64호, 2005.10.01.
크리스 하먼의 '자율주의'

<다함께>64호, 2005.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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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중앙위원이자 고전 맑스주의의 계간지 <인터내셔널 소셜리즘>의 편집자인 크리스 하먼이 지난 8월 18~21일 방한해서 한 강연 중 하나를 무삭제 녹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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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년 간 우리는 전 세계에서 대중 운동이 성장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시애틀의 반자본주의 시위 이후 반자본주의 운동이 발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대중적 반자본주의 운동을 보았습니다. 중남미의 매우 중요한 지역에서 새로운 반란이 성장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1999년, 이 새로운 투쟁 물결이 시작됐을 때, 운동에 참가한 사람들은 모두 이 투쟁에 너무 감동한 나머지 정치적 논쟁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모든 운동이 모여서 마치 벌떼처럼 자본주의를 공격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싸워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하면 전진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만든 두 가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첫번째 사건은 2001년 7월 제노바 G8 정상회담 반대 시위였습니다. 경찰이 시위대를 공격해 카를로 줄리아니라는 이탈리아의 젊은 활동가를 죽였고, 이 일 때문에 사람들은 싸우는 이유뿐 아니라 싸우는 방법에 대해서도 토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그 뒤 세계무역센터가 파괴되고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이 잇달아 일어나자, 사람들은 전쟁 반대 운동이 얼마나 강력한지 깨닫게 됐습니다.

이후 이 새로운 운동 내의 각종 집회와 회의, 모임에서는 세 가지 정치적 경향이 등장했습니다. 이 경향들은 운동의 외부에서 전수된 것이 아니라 운동 안의 논쟁들에서 발전한 것이었습니다.

첫째 경향은 개량주의적 경향입니다. 이 경향은 기존 정부가 자본주의를 제어해 개혁을 제공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단체로 활동하는 것이 운동의 과제라고 말합니다. 이 경향은 운동 내에서 가장 유력한 경향입니다.

둘째 경향은 아주 소규모인데, 영국의 사회주의 노동자당(SWP), 프랑스의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LCR)으로 대표되는 혁명적 경향입니다. 한국의 ‘다함께’도 이 경향을 대표하는 단체로 성장했으면 좋겠군요.

그러나 운동 내에서 가장 유력한 경향은 바로 셋째 경향인데, 사람들은 이 경향을 자율주의라고 부릅니다. 자율주의는 운동 자체의 동력을 칭송하는 경향입니다. 이 경향은 운동 자체의 생명력이 모든 장애를 극복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 경향은 개량주의 정당과 노동조합을 불신합니다. 그러나 이 경향은 또한 혁명가들에도 반대합니다. 자율주의자들은 혁명가들이 운동 안에서 자신의 사상을 가지고 논쟁해 운동을 조종하려 한다고 말합니다.

운동 안에는 이런저런 방식으로 자율주의 사상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상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스스로 자율주의자를 자처하지는 않지만, 사실 그들의 사상은 자율주의입니다.

그래서 NGO의 많은 활동가들은 사실 자율주의자입니다. 멕시코의 사파티스타를 동경하는 많은 사람들이 자율주의자입니다. 새롭게 등장한 중남미의 억압받는 선주민 운동 안의 많은 활동가들이 자율주의자입니다. 아르헨티나의 매우 전투적인 실업자 운동인 피케테로스의 많은 활동가들이 자율주의 사상을 받아들입니다.

운동의 주변부에서 스스로를 ‘블랙 블록’이라 부르며 복면을 쓰고 활동하는 사람들은 은행에 불을 지르며 자본주의에 맞서 싸운다고 생각하는데, 이들도 자율주의 사상을 받아들입니다. 2001년 제노바에서 저는 이 ‘블랙 블록’ 때문에 짜증이 난 적이 있었는데, 왜냐하면 이들이 현금인출기를 모두 박살내 놔서 제노바에 막 도착한 20만 명이 은행에서 돈을 뽑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율주의 사상을 이론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애쓴 중요한 책이 두 권 있습니다. 토니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가 쓴 ≪제국≫이 그 가운데 한 권입니다. ≪제국≫은 심지어 단 한 줄을 이해하기도 어려운 책이어서 실제로 읽은 사람은 거의 없을 듯하지만, 이 책의 영향력은 지대합니다. 저는 이 책이 부르주아 사회학이나 부르주아 경제학 서적들처럼, 책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워 너무 중요하고 훌륭한 책이라고 여기게 만드는 서적들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나머지 한 권은 존 홀러웨이가 쓴 ≪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라는 책인데, 이 책은 독해가 가능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 홀러웨이는 자신만의 독특한 언어로 맑스주의 사상을 설명하려 합니다. 비록 그 결론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지만 말이죠.

이 두 권의 책을 비롯해 모든 자율주의 사상은 서너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 공통점은 가장 중요한 것으로, 각각의 운동이 고유의 자율성을 지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자율성이 발휘된다면, 서로 다른 운동들 사이에 자동으로 단결이 이뤄지고 그 과정에서 체제에 도전할 수 있는 힘이 창출된다는 것이죠.

이를테면 선주민 운동, 여성 운동, 동성애자 운동, 노동자 운동, 환경 운동, 실업자 운동 등등 서로 다른 운동들 사이에 자생적인 상호작용이 있다는 겁니다. 저는 하트와 네그리가 ‘다중’이라는 개념을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이 바로 이렇게 서로 다른 운동들 사이의 자생적인 상호작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둘째 공통점은 어떤 운동도 다른 운동보다 중요할 수 없다는 겁니다. 자율주의자들은 모두 고전적 맑스주의가 노동계급을 강조하기 때문에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하트와 네그리는 노동계급이 사라지고 있으며 따라서 더는 투쟁에서 중심적 지위를 갖지 못한다고 주장합니다. 노동운동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종류의 자율주의자들조차 노동운동은 다른 여러 운동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셋째 공통점은 자율주의자들이 때때로 말하는 ‘운동들의 운동’이 동력을 모은다면 권력을 잡지 않고 국가를 전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홀러웨이의 책에서 매우 분명히 드러나 있습니다. 그는 군대 병사들과 경찰들도 다른 모든 이들과 마찬가지로 체제의 희생자들이기 때문에 만일 우리의 운동이 계속 나아간다면 그들이 자생적으로 체제에 반대해 돌아설 것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을 조직할 필요도, 우리의 무장력으로 국가 권력에 도전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죠. 결국 홀러웨이는 이 체제 하에서 모든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고, 그들이 이미 체제에 맞서 자생적으로 결속돼 있기 때문에 체제는 자연히 붕괴할 것이라고 말하는 셈입니다.

마지막 공통점은 더는 운동에서 정당이 설 자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율주의자들은 스탈린주의의 경험과 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부의 경험이 보여 주듯이, 만일 운동 안에 정당이 있다면 그 정당이 운동을 지배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또 전략, 조직, 그리고 다른 여러 운동에 대한 특정 운동의 중요성 같은 것들이 없이도 운동이 자생적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것이기 때문에 정당은 더는 필요 없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자율주의 사상은 특히, 과거에 스탈린주의나 개량주의 사상을 받아들였던 사람들 사이에서 매우 광범한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3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매우 위계적인 스탈린주의 조직인 공산당이나 마오쩌둥주의 조직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이 거기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제 자율주의 사상을 받아들여 NGO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자율주의자들 가운데는 스탈린주의나 사회민주주의 등 낡고 이미 죽어버린 전통에 대한 반발로서 자율주의를 받아들이며 운동에 새롭게 입문한 건강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율주의자들은 대중이 참여하고, 대중이 연루되고, 대중이 활동하는 아래로부터의 활동이 중요하다는 점을 이해합니다. 그러나 지난 6년의 경험은 자율주의적 관점이 안고 있는 심각한 오류를 보여 줍니다.

첫째, 서로 다른 운동들이 자동으로 단결하지는 않습니다. 예컨대 프랑스에서 우리는 여성 억압에 반대하는 여성들이 무슬림 억압에 반대하는 무슬림들과 단결하지 않는 상황을 목격한 바 있습니다. 심지어 매우 중요한 일부 여성단체는 프랑스 정부를 지지해 무슬림 여성을 비난하기도 했지요.

실업자들과 취업 노동자들이 자동으로 단결하지는 않습니다. 실업자들은 취업 노동자들을 원망하며 그들 때문에 직장을 갖지 못했다고 비난할 수 있습니다. 취업 노동자들은 실업자들을 기생충이라고 비난하며 실업자에 대한 지배계급의 공격을 지지할 수도 있습니다.

유럽에서 억압받는 흑인들이 억압받는 무슬림들과 자동으로 단결하지는 않습니다. 노숙자 운동과 실업자 운동, 장애인 운동 들이 매우 전투적일 수 있지만, 그들 가운데는 흑인과 아시아인을 경멸하는 인종차별 사상을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중남미 볼리비아나 에콰도르 같은 나라의 선주민 운동을 보면, 그 운동에 참가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그들과 다름없이 가난한 백인들을 적으로 여깁니다.

모든 운동 속에 단결을 위해 투쟁하는 조직된 사람들이 없다면, 단결은 결코 저절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예컨대 영국에서 우리는 무슬림들이 반전 운동의 일부가 될 수 있도록 반전 운동 내에서 투쟁해야 했습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실업자들과 취업 노동자들의 연대를 구축하기 위해 사람들이 투쟁하고 있습니다.

자율주의 사상의 둘째 오류는 첫째 오류와 관련이 있습니다. 운동이 성장하고 운동의 단결 문제가 중요해질수록 어떤 운동에서든 자연히 이데올로기의 분화가 일어납니다. 예컨대 미국에서 9·11 테러가 발생한 직후, 반자본주의 운동 안에서는 ‘테러와의 전쟁’을 반대해야 할지 말지를 두고 심각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에콰도르 선주민 운동은 정부를 타도할 수 있는 수준까지 성장했습니다. 그러자 운동 안에서 자생적으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한 쪽에서는 우리가 더 나아가 선주민과 노동자들의 정부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다른 한 쪽에서는 새 정부를 선출하기 위해 다음 선거 때까지 기다리자고 주장했습니다.

미국과 에콰도르의 경우 모두에서, 전에는 단결돼 있고 모든 점에 동의하는 듯했던 운동 안에서부터 이데올로기의 분화가 발생했습니다.

셋째로, 운동이 국가 폭력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둘러싼 문제들이 항상 제기됩니다. 홀러웨이는 국가를 무시하라고 얘기하지만, 만일 운동이 자본주의에 도전할 만큼 강력해진다면 국가는 결코 우리를 무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의 동지들은 광주민주화항쟁의 경험을 통해 국가 폭력이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더 소규모로 보자면, 이 토론장에 있는 몇몇 분들은 바로 몇 년 전만 해도 단지 사회주의 사상을 전파했다는 이유로 투옥된 경험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지난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중남미에서 우리는 엄청난 규모의 국가 폭력을 목격했습니다. 칠레에서는 1만 명의 사회주의 활동가들이, 아르헨티나에서는 3만 명의 활동가들이, 중미에서는 아마도 10만∼20만 명의 활동가들이 국가 폭력에 살해당했습니다.

지난 5년 간 운동은 그처럼 대규모의 국가 폭력에 맞닥뜨린 적이 없었던 듯합니다. 그러나 운동이 자본주의에 심각하게 도전하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국가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회피할 수 없을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국가를 무시하라고 말했던 사람들도 선택에 직면합니다. 왜냐하면 국가가 여러분을 살해하려 드는 상황에서 여러분은 거기에 대응해 무엇인가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운동이 결국 국가를 해소시킬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좋은 조언이 되지 못할 겁니다.

그렇다면, 국가를 개혁할 방법들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거나 아니면 국가를 전복할 방법들을 찾아야 한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자율주의자는 개량주의자가 되거나 혁명가가 돼야 한다는 선택에 직면합니다.

우리는 지난 여름 볼리비아에서 이러한 선택에 직면하게 되는 것을 목격한 바 있습니다. 노동자 운동이 볼리비아 자본주의의 힘에 도전할 만큼 성장하자, 볼리비아 의회는 우익 정부가 들어서 노동자 운동을 완전히 박살낼 것이라고 위협했습니다. 대중 운동 내에서는 즉시 두 가지 경향이 발전했습니다.

한 쪽에선 우리가 이제 운동을 멈추고 의회를 통해 조만간 선거를 치러 어떻게든 우익 정부가 들어서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자율주의 경향을 띠었던 볼리비아 운동의 가장 중요한 지도자들 가운데 한 명인 에보 모랄레스가 이러한 입장을 취했습니다.

다른 한 쪽에선 노동자와 농민이 권력을 잡을 수 있도록 조직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국가에 대한 질문에서 결국 어떤 태도를 취한다면 여러분은 전략에 대한 질문을, 특히 어떤 사회세력이 국가 권력을 잡을 능력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맑스주의자들이 노동계급을 얘기하는 이유입니다.

노동계급이 다른 사회 집단들보다 특별히 더 고통받지는 않습니다. 제3세계 도시의 수많은 실업자들은 취업 노동자들보다 훨씬 더 고통받습니다. 노동을 제공해 자본가들로부터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보다 굶주리는 농민들이 훨씬 더 고통받습니다. 자신의 성 정체성 때문에 폭행당하는 동성애자들은 엄청나게 고통받습니다. 이 모든 집단들은 고통받지만 자본주의를 분쇄할 힘을 갖고 있지는 못합니다.

자본주의가 돌아가게 해주는 것은 모두 노동계급이 만들어 냅니다. 노동계급은 또한 자본주의를 분쇄할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노동계급은 국가의 억압 기구들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게 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국가 기구들은 순찰과 항공관제소, 도로망, 철도 등에 의존하는데, 이 모든 것을 관리하고 유지하는 것이 노동자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바로 이것이 대중적 노동운동이 테러리스트가 설치한 어떤 강력한 초대형 폭탄보다 자본가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물론 서로 다른 부문의 노동자들을 단결시키기 위해 조직하지 않는다면, 그들을 한데 모으지 않는다면, 단결을 위해 노동계급 안에서 이데올로기적으로 논쟁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노동운동은 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노동계급 속에서의 전략적 역할을 이해하는 문제와 관련해 다시 정당 문제로 돌아가야 합니다.

어떤 운동에서든 단결을 원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분열이 생겨난다면, 우리는 운동의 단결을 원하는 사람들을 하나로 결속시켜야 합니다.

정당과 관련해 우리는 과거의 경험에서 비롯한 잘못된 개념을 포함하는 사상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옛 스탈린주의 의미의 정당들은 노동계급에 명령을 하달하는 소그룹들을 뜻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맑스주의가 말하는 정당은 매우 다릅니다.
이것은 매우 간단한 관찰에 기초한 것입니다. 자본주의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받습니다. 이 이데올로기들은 TV와 신문 등을 통해 노동자들을 통제하는 구실을 합니다. 이를 통해 노동자들 스스로 사회를 운영할 능력이 없다는 사상이 사람들의 머리 속에 주입됩니다.

예컨대 어떤 파업에서든 여러분은 세 가지 경향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첫째는 자기 나름의 경험을 통해서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충분히 떨쳐낸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사용자들에 맞선 파업과 투쟁을 정말로 원하는 사람들입니다. 다른 한쪽 끝에는 사용자들의 사상을 완전히 받아들이면서도 동료 노동자들의 지탄을 받기 싫어서 어쩔 수 없이 파업에 참가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중간엔 이 두 극단을 오락가락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중간 부류는 때로 많을 때도 있고 매우 소수일 때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오직 운동의 자율성만을 믿는다면 여러분은 이 서로 다른 경향의 사람들 사이의 차이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종차별적 노동자와 그렇지 않은 노동자 사이에 아무 차이가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또, 그것은 성차별 사상을 가진 남성 노동자와 성차별을 끝장내기 위해 노력하는 노동자 사이에 아무 차이가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정당 건설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사용자에 맞서 가장 단호하게 싸우는 노동자들과 인종차별에 맞서 가장 단호하게 싸우는 노동자들, 성차별에 맞서 가장 단호하게 싸우는 노동자들, 그리고 노동계급 자신이 사회를 변화시킬 능력이 있다고 굳게 믿는 노동자들을 한데 모으겠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많은 자율주의자들이 안고 있는 비극은 그들 자신이 성차별에 반대하고, 인종차별에 반대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운동에 개입해 자신과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과 논쟁하기 위해 효과적인 정치세력으로 조직할 필요를 거의 느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반면, 자본가들은 우리 운동에 개입하는 데 조금도 망설이지 않습니다. 날마다 그들은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의 파업 참가 호소를 무시하라고 말합니다. 만일 그들이 파업을 막지 못할 때는, ‘극단주의자’라고 그들이 딱지 붙인 사람들을 무시하고 온건한 지도부 편을 들라고 노동자들에게 말합니다. 온건한 지도자들은 자본가들이 운영하는 자본주의를 전폭 받아들이는 가장 후진적인 의식을 가진 노동자들을 조직할 것입니다.

따라서 혁명가들이 가장 선진적인 노동자들을 조직해야 할 필요성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제가 말한 정당 개념은 이 같은 방식으로 정당을 조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당이 운동을 조종하려 한다는 의심과, 즉 정당이 노동계급 운동과 대립되는 것이라는 의심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우리의 정당 개념은 자신과 사상이 다른 나머지 부분의 노동계급을 설복하려는 노동계급의 일부로서 정당을 건설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현존하는 모든 작업장, 모든 대학, 모든 중고등학교, 모든 끔찍한 혹사공장에서 정당을 건설하기 위해 노력하고, 이 정당의 지지자들이 동료 노동자들·학생들과 이 끔찍한 사회에 맞서 싸우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토론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건설하려는 노동계급 운동은 결코 다른 운동들과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거듭 밝히고자 합니다. 제3세계의 많은 지역에 있는 농민들이 진정으로 해방을 이룩할 수 있는 방법은 자본주의를 끝장낼 수 있는 세력과 함께 연대하는 것뿐입니다. 노동계급이 제3세계의 거대 수도에서 자본주의를 뒤흔들기 시작하면, 가장 끔찍한 상태에 있는 농민들도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에 맞서 싸울 가능성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대규모 노동자 투쟁이 있을 때, 예컨대 남성 노동자들이 먼저 투쟁에 나서고 그 투쟁이 승리하게 되면, 그 힘을 본 여성 노동자들은 자신들도 투쟁을 시작하면 여성 해방을 이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투쟁이 체제 전체를 뒤흔드는 힘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가 노동자 운동을 중시하는 것은 결코 노동자들을 미화해서가 아닙니다. 그 이유는 노동계급이 낡은 사회를 뒤흔들 힘과 능력을 갖고 있음을 이해하기 때문이고 그 과정에서만 그들을 억압하는 모든 사상들, 모든 반동적 사상들을 뒤흔들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율주의자들 가운데 진지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싸워서 얻고자 하는 것과 완전히 똑같은 것을 얻기 위해 당신은 싸우고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그 투쟁을 이해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전통에 서 있는 진정한 맑스주의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입니다.

토론 요약

베네수엘라와 관련한 질문이 제기됐는데, 베네수엘라의 활동가들은 대부분 실제로 자율주의자들입니다. 베네수엘라의 자율주의자들은 국가를 전복하기 위해 조직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않고, 노동자들이 차베스보다 더 나아가도록 조직하는 것도 전혀 얘기하지 않습니다.

베네수엘라 정부가 석유를 이용해 노동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개혁들을 제공하긴 하지만, 과거의 자본가·군대·경찰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이들을 그대로 남겨 두면 이들은 결국 자신들이 제공했던 개량을 중단하고 과거로 복귀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린다는 것을 역사는 가르쳐 줬습니다.

자율주의자들이 사용하는 용어들을 설명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첫째, ‘탈집중적 네트워크’라는 용어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서로 연결돼 있고, 이 연결망은 컴퓨터 네트워크와 같아서 중앙집중적 조직 없이도 집중된 정보를 얻기에 충분하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많은 경우에 우리는 이런 연결망을 통해 정보를 얻고 그에 따라 대응합니다.

그러나 대규모 계급투쟁에서 지배계급은 중요한 순간마다 중앙집중적 방식으로 행동합니다. 이 때 여러분의 연결망이 여러분에게 무언가를 말해 줄 때까지 여러분은 기다리고 있을 수 없을 겁니다. 여러분은 정보를 집중하고 지배계급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중앙집권적으로 결정해야 합니다.

둘째, ‘비물질적 정보노동’이라는 용어입니다. 이것은 하트와 네그리가 사용하는 용어로, 그들이 말하는 ‘비물질적 정보노동’이란 컴퓨터 프로그램과 관련된 일 등을 말합니다. 그들은 현존 자본주의에서 중요한 일들 중 갈수록 많은 부분을 정보노동이 처리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하트와 네그리는 현대 자본주의에서 노동이 더는 특정 시간에 특정 장소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더는 노동시간이 중요하지 않게 됐다고도 합니다.

이러한 주장들은 작업장에 아무런 중요성도 부여하지 않을 것입니다. 네그리와 캘리니코스가 파리에서 토론을 했을 때, 네그리는 우리가 매순간, 심지어 꿈 속에서도 자본주의와 싸운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청중석에서 “당신은 꿈속에서도 자본주의와 싸운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정말 꿈일 뿐이다” 하고 말했습니다.

네그리가 무시하는 가장 중요한 사실은 오늘날 유럽에서 광범하게 퍼져 있는 반자본주의 운동이 소수 노동자들, 매우 많은 학생들, 학생 출신 활동가들, 지식인들 등등 특정 배경을 가진 사람들로 이뤄져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반자본주의 운동이 아직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사무실 바닥을 청소하는 사람들, 콜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처럼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노동을 하는 대다수 노동자들에게까지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심지어 네그리는 오늘날의 반자본주의 운동을 지나치게 칭송한 나머지 우리가 체제에 도전하고 또 그것을 전복하는 데 노동자들의 힘이 필요하냐고 반문하기까지 합니다.

청중석에서 한 분이 자율주의 사상이 만연하는 데 학자들이 기여하고 있다고 주장하셨습니다.

자율주의에는 심각한 모순이 있습니다. 많은 자율주의자들은 매우 활동적입니다. 그들은 매우 용감하게 투쟁합니다.

그러나 만일 운동이 자생적으로 단결해 체제를 전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러면 나는 가만 있어도 되겠네’라는 결론에 도달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학 교수가 돼 책도 쓰고 강단에서 열심히 지식을 전달하기는 하지만, 사회 변화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자율주의는 학술적 맑스주의자가 될 수 있는 길을 사람들에게 활짝 열어 줍니다.

자율주의와 아나키즘의 관계를 묻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별로 차이가 없지만, 자율주의자들은 아직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실제로 아나키즘의 역사를 살펴보면, 많은 영웅적인 투사들이 운동을 건설했지만 그들은 지도와 국가의 문제를 회피했습니다.
예컨대, 두루띠라는 스페인 아나키스트는 아마도 스페인 노동계급 운동의 가장 위대한 지도자들 가운데 한 명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는 국가 문제를 회피했기 때문에 1936년 스페인에서 혁명이 일어나자 결국 부르주아 정부를 지지하는 입장을 취하게 됐습니다.

그는 파시스트들이 조직되고 있다는 사실에 위협을 느꼈고, 파시스트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군대가 필요하고 군대를 갖기 위해서는 국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두루띠는 혁명정당과 함께, 노동자 평의회에 기반을 둔 노동자 국가 건설을 거부했기 때문에 결국 부르주아 국가를 지지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자율주의자들 중에는 매우 냉소적이고 투쟁에 헌신하지 않는 구 세대가 있는가 하면, 자율주의 사상에 호감을 갖고 운동에 뛰어든 청년들도 있습니다.

저도 처음 정치 활동을 시작할 때[1950년대 말 ― 옮긴이] 스탈린주의에 대한 강한 반감에서 심지어 잠시 스스로를 아나키스트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의 많은 청년들이 처음에는 자율주의 사상을 받아들이지만 나중에는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 그들 중 상당수는 자율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을 자율주의자로 여기지는 않습니다.

마지막 질문은 과연 노동계급이 최후까지 투쟁을 수행할 능력이 있는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자본주의 하에서 대부분의 시기에 노동자들은 체제에 맞서 싸울 힘을 발전시키기 힘듭니다. 만일 여러분이 매일 8∼10시간씩 일하고 아이까지 돌봐야 한다면, 여러분은 체제 변화를 고민할 충분한 여력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파업이 일어나면, 노동자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온 정신을 쏟아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더구나 정말로 커다란 투쟁에서는 이런 현상이 훨씬 더 보편적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대규모 투쟁이 개량을 획득하든지 아니면 분쇄돼서 결국 체제를 뛰어넘지 못한다면, 체제에 도전하는 시기는 그것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마음 속에는 자신이 어떻게 싸웠고 무엇을 얻었는지에 대한 기억이 남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수많은 노동자들은 하나의 계급으로 단결해 독재정권을 종식시키고 노동조건 개선을 비롯한 각종 성과들을 쟁취한 투쟁을 계속 기억할 것입니다.

만약 노동자들이 자본주의를 박살내고 사회의 부(富)를 모두 자기 생활조건을 개선하고 사회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히는 데 사용한다면, 그것은 얼마나 멋진 일이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우리가 러시아 혁명이나 그 전의 파리 꼬뮌을 다시 돌아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통해 어떻게 노동계급이 사회를 변화시키고 어떻게 그 과정에서 스스로 변했는지를 우리가 잠시나마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경험들은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습니다. 파리 꼬뮌은 물리적으로 완전히 파괴됐습니다. 러시아 혁명은 외부의 압력에 의해 질식했죠.

누군가가 외부의 압력으로 질식했다면, 만일 여러분이 누군가의 목을 조른다면, 그들은 결국 죽을 것입니다. 이윽고 그들의 피부색은 끔찍하게 변할 것이고, 심지어는 썩어서 구더기가 기어나올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들이 죽음에 또는 구더기 발생에 책임이 있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여러분은 그들을 교살한 자가 누구인지를 말할 겁니다.

그들이 죽었다는 사실이 그들이 생전에 활기가 넘쳤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것처럼, 러시아 혁명이 교살당했다는 사실이 러시아 혁명이 활력이 넘쳤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노동자들이 옛 국가를 파괴하고 과거와 완전히 다른 사회를 건설했으며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 자신이 변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진지한 자율주의자들에게 이런 것들을 설명해야 합니다. 그들은 한국과 그 밖의 다른 나라에서 사회주의 조직을 건설하는 과정의 일부로서 함께할 수 있고, 노동계급이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도록 이끄는 투쟁에 함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영수] '전진' 실천테제 비판, <해방>4호, 2005.09.

박성인
2005/09/29

   [장희수] 대공장에서 현장권력은 어떻게 무너졌는가, <사회주의노동자신문>창간호, 2005.09. [1]

박성인
2005/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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