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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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06 15:55:20
leeus
[2000.4] 신자유주의의 본질과 성격
신자유주의의 본질과 성격



이은숙




1. 신자유주의란 대체 무엇인가?

신자유주의는 현대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에 의하여 발생하고 있는 자본의 축적위기를 노동자·민중의 착취·수탈구조 재편과 강화, 야만화 혹은 원시화를 통하여 벗어나고자 하는 자본의 전략이다. 그것은 이전과는 다른 하나의 자본축적전략이며, 가장 힘 센 자본에 의하여 요컨대 현시기에는 초국적자본에 의하여 주도되고 있는 전 세계적인 프로젝트이다.
그것은 단순히 자본측에 의하여 구사되고 있는 어떤 정책이나 정책들이 아니라 핵심적으로 국가권력을 동원하여 자본의 이해를 실현시켜 나가고 있는 총자본의 지배전략, 정치전략이다.
신자유주의에 의하여 동원되고 있는 정책수단들은 대개 ‘개방, 자유화, 작은 정부’를 모토로 하고 있고, 핵심적인 내용은 탈규제·유연화·민영화·복지축소·노조무력화를 기본으로 짜여져 있다. 이것들이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첫째, 자본운동에서 걸림돌이 되는 모든 제약들을 제거하고자 하는 자본의 지향성이 담겨 있다. 거기에는 정부나 법·제도적인 규제들뿐만 아니라 정부로 하여금 자본에 대하여 어떠한 규제들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던 사회적 압력들까지도 포함된다. 핵심은 자본의 움직임에 완전한 자유를 보장하라는 요구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자본의 운동이 요구하는 자유와 배치되는 모든 것들에 대한 강제적 규제와 억압은 더욱 강화하라는 요구이다. 이를테면 노동조합의 민주적·자주적 활성화와 그 대자본 투쟁력 강화는 자본의 요구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따라서 그러한 노동조합운동은 자본에 의하여 무력화의 대상이 되고 배척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한가지 주목할 점은, 신자유주의적인 노조무력화 수법은 과거와 달리 ‘경제위기’를 매개로 하여 자본의 논리를 전 사회적으로 전면화시킴으로써 전 사회적인 배척의 대상으로 간주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자본의 축적위기가 과거 자본주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극심한 지점에 도달하여 있다는 점이다.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자본주의의 현단계는 전 지구적 규모에서의 자본의 집중과 집적이 이루어지고 있고 그에 따라 거대화된 초국적 산업자본과 초국적 금융자본에 의하여 움직여지고 있다. 자본의 지구적 집적·집중과 함께 지구적 규모에서의 위기의 일반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세계적이건 일국적이건, 노동자계급에 대한 자본측의 대응이 전 사회적인 이데올로기적 포섭과 배제전략에 의거하지 않고는 통제불가능한 상황이라는 점이다. 자본측이 갖가지 회유책과 강압적 탄압을 번갈아 사용하면서 집요하게 노동조합운동을 제도화 내지는 체제내화시키려고 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상황에 처한 자본의 대응전략에 불과하다. 이러한 점을 간과하고 자본의 위기 심화 상황에서 예컨대 경제위기 폭발의 국면에서 자본측의 이를테면 국가경쟁력 강화 논리의 연장선에서 ‘정책참가’를 주창하는 등의 노동조합운동을 전개하는 것은 노동조합이 자본에 굴종하는 자본종속성을 자처하는 것이다. 노자관계의 그러한 성격은 자본의 지구적 운동의 전개와 초국적 자본의 세계 자본주의 지배가 강화되면 될수록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는데, 그 점은 자본주의의 생산구조 그 자체에서 발생되는 모순, 즉 ‘노동(자)을 필요로 하면서도 노동(자)를 끊임 없이 배제시키는’ 자본의 속성 때문이다. 그 점에 대해서도 뒤에서 좀 더 살펴보도록 하겠다.
둘째, 초국적 거대자본의 이해관계에 종속적이지 않은 모든 자주적인 개인들, 집단들, 운동들, 나라들은 배척의 대상이 되어 배타적이고 폭력적으로 제거하겠다는 지향성을 가지고 있다. 이를테면 현대자본주의의 중심카테고리 가운데 하나였던 각 민족국가의 국경은 이윤을 실현시켜 줄 시장을 찾아 헤매는 초국적 자본의 ‘장벽제거’ 압력에 의하여 사라지고 있다. 그것은 자본간 경쟁이 국경과 관계 없이 전 지구적으로 극심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을 뜻하며, 우리가 요즘 흔하게 듣고 있는 ‘국경 없는 경쟁의 시대’ 운운하는 것은 바로 초국적 자본을 위시한 자본간 약육강식의 시장쟁탈전이 지구적으로 전면화되어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렇지만 국경이 완전히 사라져 ‘세계는 하나’라는 식의 논리는 현대자본주의에서 아직까지 허구이다. 자본의 ‘국경을 초월한 이윤추구’는 시대에 따라 양상은 달랐지만 자본주의 초기시대에서부터 있어온 자본의 운동양식 중 하나이다. 직접적인 식민지 쟁탈전이 2차대전을 경과하면서 쇠퇴하고 60년대 배트남전쟁 종식을 전후하여 거의 사라진 양식이라면 소위 ‘무역전쟁’이라고 이야기되는 시장쟁탈전을 통하여 국경을 초월한 자본의 이윤추구는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본은 국경을 자본의 축적논리에 맞게 늘 이용해왔는데, 특히 노동자계급 및 민중을 동원하여 자본의 논리를 강화하고 합리화하고 정당화할 때는 어김 없이 국경과 애국심과 국가주의가 동원되고 있는 데서 그 점이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축적전략을 전면화시키고 있는 현대자본주의체제에서도 그와 마찬가지로, 국경과 국가는 자본의 논리에 따라 노동자·민중을 동원하는 강력한 기제로서 기능하고 있다. 이 점은 현대자본주의하에서 국가가 총자본으로서의 성격을 더욱 강화하고 있는 점과 관련되어 있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축적전략이 지배적인 현대자본주의하에서 국가는 자본측의 최고 기관으로서 자본과의 유착을 전면화시키고 있다.
셋째로, 위와 같은 점들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것은 1995년에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를 대신하여 만들어진 WTO(세계무역기구)에서 최근 진행하고 있는 뉴라운드(밀레니엄 라운드) 협상이다. 그것은 당초 MAI(다자간 투자협정)라고 하여 OECD 내부의 비밀협상으로 추진되다가 97년부터 WTO로 이관되어 전세계를 대상으로 확대시켜 추진되고 있다. 뉴라운드 협상에서 각국간 이해관계는 각국 자본의 이해관계, 더 나아가서는 각국을 모국으로 하는 초국적 자본의 이해관계에 의하여 갈라지고 있는데, 그들의 이해관계와 무관하게 관철되고 있는 단 하나의 논리는 ‘투자 자유화’라고 하겠다. ‘자본이 가고자 하는 곳에는 원칙적으로 제약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거기에서 협상 대상은 각 자본간에 엇갈리는 이해관계와 충돌하는 운동방식을 제도적으로 조정하는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이를테면, 한국에 GM이 투자하려고 할 때 한국에는 외국인투자에 대한 퍼센트 제한이 없어야 하며 세금이 한국자본에 비해 많아서는 안되며 수출입에서의 관세적용도 내외자본간 차등관세가 없어야 하며, 등등등의 내용이 기본이고, 또 예컨대 뒤퐁이 투자하려고 할 때 환경문제를 이유로 해서 투자를 거부하거나 해서는 안되고, 더욱이 도로·항만·철도·수도 등등 공공부문에 대해서 외국인투자를 제한해서도 안된다는 내용들이 그것이다. 자본은 기본적으로 각국을 무대로 자국시장에서의 이윤추구를 기본으로 하여 축적기반을 늘려나가는데, 외자가 그 시장을 장악하려고 할 경우 각 국내자본은 우선적으로 안방의 시장을 빼앗기게 되므로 내외자본간 이해충돌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바로 그 점에서 이른바 자본간에도 ‘협정’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고 그 외화 형태가 WTO에서의 밀레니엄 라운드 협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2. 현대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앞에서 언급하였지만, 신자유주의는 초국적 산업자본과 초국적 금융자본에 의하여 주도되고 있는 현시기 자본의 지구적(global) 운동에서 내부논리를 구성하고 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는 특히 ‘착취·수탈구조의 원시화’를 통해 자본의 위기를 넘어가고자 하는데,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현대자본주의의 축적위기와 그것이 갖는 본질적인 성격의 맥락에서이다.

1) 현대 자본주의의 모순구조와 축적 위기의 양상

(1) 과잉축적 모순의 심화
현대 자본주의의 축적위기는 다음과 같은 세계 자본주의의 전개과정 속에서 파악될 수 있는데, 그 과정은 신자유주의의 태동과 맥을 같이 한다.
세계 자본주의체제는 2차대전 이후 비교적 장기에 걸친 ‘호황’을 구가하다가 1970년대 중반부터 만성적 불황을 노정해왔다. ‘자본주의의 황금기’라고 이야기되는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세계 자본주의는 생산수단의 급속한 양적·질적 축적을 이루어냈다. 이는 급속한 생산성 상승과 ‘숨막히는 성장’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그 과정은 자본주의의 과잉축적 모순 심화과정이기도 하다.
과잉축적이란 자본이 자기를 재생산할 수 있는 수준의 이윤율을 실현하지 못하는 자본과잉 상태를 말한다. 이것은 생산수단의 급속한 팽창과 그로 인한 자본의 유기적 구성 고도화에 따른 이윤율의 저하로 인하여 발생한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미국, 캐나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영국)의 제조업 총 고정자본 스톡은 1952년 680.9에서 1973년 1903.7로, 1987년에는 3003.9로 늘어난 반면, 제조업 순이윤율은 1952년 30.2에서 1973년 22.1, 1987년 15.9로 절반 가까이 떨어지고 있었다. 이는 세계적인 과잉축적의 모순의 심화양상을 알 수 있게 한다.
이러한 축적의 가속화와 이에 따른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노동력에 비한 생산수단 증대량을 보라)는 동시에 실업·반실업자의 누적과 과잉축적의 심화과정이기도 하다. 1952년부터 1973년까지 고용은 29% 증가한 반면 생산수단의 스톡은 같은 기간에 250%가 늘어났다.
한편 자본축적의 가속화와 호황은 일시적으로 산업예비군을 축소시켜 자본이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상대적 과잉인구(실업 및 반실업 인구)의 규모를 감소시키게 되는데, 그것은 자본주의적 생산에서는 축적조건의 악화를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자본의 근원적 생산원천인 노동자(노동력)에 대한 자본의 통제가능성이 마음대로 고용했다가 해고할 수 있는 노동력(실업·반실업 노동력)의 부족으로 인하여 매우 줄어들게 되고 그에 따라 노동력 공급자인 노동자와 그 조직체인 노동조합의 교섭력이 크게 증대하기 때문이다. 자본은 이윤증대를 위해 항상적으로 노동조건의 하락을 추구하는데, 노동자계급의 교섭력 증대는 그러한 자본의 운동방식이 노동자계급에게 통할 가능성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자본의 입장에서 보면 축적조건의 악화이다. 더욱이 자본의 유기적 구성 고도화와 과잉축적의 심화는 자본 자체의 재생산조건을 악화시켜 노동자계급의 높아진 교섭력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을 초래한다. 이는 자본주의적 생산구조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모순으로 인한 것이다. 어쨌거나 그것은 70년대말과 80년대에 걸쳐 미국과 영국에서 레이건과 대처에 의하여 감행된 복지축소, 민영화, 노동조합 무력화 등의 신보수주의·신자유주의 정책들의 배경이다.
더욱이 자본간 경쟁의 격화와 거대자본에의 중소자본의 통폐합 등이 진행되어 자본의 집적과 집중이 거대한 규모로 전개되게 되어 초국적 자본의 형성과 지구적 이윤추구활동의 일반화를 가져와 세계적인 시장통합성이 증대되는 한편으로, 다른 한편에서는 시장쟁탈과 새로운 시장 확보를 위한 자본주의 각국의 움직임으로 인하여 지역별 블록경제와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는 모순적 전개를 보이게 되었다. 이 과정은 결국 2차대전 후의 세계자본주의의 발전을 지탱해온 미국(과 영국) 중심의 GATT체제 붕괴와 WTO로의 세계자본주의구조 재편으로 이어지게 된다.

(2) 자본의 지구화와 블록화의 동시적 전개
WTO(World Trade Organization : 세계무역기구)는 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GATT-우르과이 라운드의 최종합의문서에 서명한 세계 120개국 이상의 정부 합의로 1995년 1월에 발족한 국제기구이다. WTO가 GATT를 대체한 것은 GATT를 주도해온 미국의 주도력이 점차 쇠퇴하면서 EC를 축으로 한 블록화 경향이 강화된 데 기인한다.
그 배경은 첫째로, GATT가 내세웠던 자유·무차별·호혜·다각주의가 처음에는 영국의 ‘스털링 블록’을 해체시키면서 미국의 시장확대에 기여하는 한편 무역의 자유화를 급속하게 진전시켜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자본축적의 진전과 생산력 발전을 추동하였지만, 동시에 미국을 제외한 서구 선진자본주의 국가와 일본, 그리고 아시아 신흥공업국의 생산력 수준을 크게 높여 놓았던 것과 관련되어 있다. 이로 인해 미국 자본의 시장과 이윤율은 압박을 받게 되고 미국은 이들과 경쟁해야 하는 입장에 처하게 되었다.
둘째로, GATT의 기본원칙이 지켜지는 한 관세율 인하와 수입수량제한 철폐가 GATT 가입국 모두에게 적용되므로 경제의 블록화가 일어나기 어렵지만, ‘농업문제’를 예외조항으로 두고, 자유무역지역이나 관세동맹을 조건부로 인정함으로써 EC의 발전 등 지역주의가 대두하는 한편, 개발도상국 적용 예외 등으로 GATT의 기본원칙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역주의에도 불구하고 세계자본주의는 일개 지역별 독립성 강화가 아니라 세계시장의 통합성을 더욱 요구하게 되었다. 그것은 과잉축적으로 인한 이윤율 저하와 함께 더 낮은 생산비와 새로운 시장을 찾아 해외생산기지를 찾아 이윤율을 보전하고자 한 거대한 초국적 생산자본과, 생산자본과의 결합 속에서 생산자본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투자처를 찾아다니게 된 거대한 초국적 금융자본, 그리고 생산자본으로부터 유리되어 떠돌아다니게 된 국제 투기자본의 형성에 따라, 그들의 국경을 넘는 탐욕스런 시장확보 경쟁에 의해 더욱 촉발되었다.
이로써 세계시장의 통합성 강화와 지역블록주의는 동전의 양면처럼 현대 세계자본주의의 모순적 구조를 형성하고 있으며, 따라서 블록주의는 자본의 지구적 운동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구화의 또다른 표출양태로서 세계시장에서의 격화된 경쟁의 산물이다.

(3) 불안정성의 증대
초국적 자본에 의한 세계시장의 통합력 증대는, 세계경제의 상호의존성을 심화시키는 동시에 불안정성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일국 경제는 세계경제와 불가분의 관계에 놓이게 되어 한 나라의 경제상황이 악화되면 곧바로 그 나라와 관련된 나라의 경제에 파급되는 구조가 강화되었다. 이와 같은 구조는 초국적 자본이 거대한 자금력을 배경으로 각국의 금융 및 외환, 그리고 산업에 대하여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세계경제를 지배하게 됨에 따라 심화되고 있다. 초국적 자본은 특정한 산업이나 특정한 지역에 집중적으로 투자함으로써, 산업간 및 지역간 불균등발전을 격화시키는 한편으로, 거대한 자본투기에 종사하여 증권 및 외환의 매매차익을 쫓아 이동하면서 세계 각국의 시장을 교란시키고 있다.
국제 투기자본의 규모는 외환거래량을 통해 추정된다. 전세계의 하루 외환거래량은 1973년 1,500억 달러, 87년에는 1,900억 달러였던 것이, 95년에는 무려 1조100억 달러가 급증하여 1조2,000억 달러에 이르고 있다. 이들이 전세계를 휩쓸고 다니면서 세계자본주의의 불안정성은 크게 증대되었다.
‘단기유동성(단기자본) 부족’에 의한 외환·금융위기로 시작된 97년 아시아의 경제위기는 이러한 세계자본주의의 불안정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이다. 3,360억 달러(96년)에 달하는 투기자본이 아시아를 휘젓고 다니다가 빠져나가면서 각국의 자본시장을 뒤흔든 것은 아시아 경제위기의 촉발 요인 중 하나였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유동성 부족’은 80년대 후반기이래 급속히 늘어난 ‘세계적인 과잉유동성(자본과잉)’의 결과인 것이다.
그런데, 아시아를 휩쓴 경제위기는 외관상으로는 금융공황이지만, 금융이라는 표면 아래에 있는 경제 총체를 가로지르는 자본주의 경제의 기본적 모순에 의한 공황이다.
세계 각국의 경제를 항상적으로 위협하고 있는 통화·금융위기는, 자본의 세계화와 함께 형성된 초국적 자본에 의해 지배됨과 동시에 과잉생산·과잉축적과 경쟁의 격화로 특징지워지는 현대 세계자본주의의 축적위기가 터져 나오고 있는 증거로서 세계자본주의의 불안정성의 현상형태이다. 현대 자본주의의 위기가 금융공황 형태를 띠고 나타나는 것은 현대 자본주의 축적체제의 고유한 현상이다.

2) 현대 자본주의 축적위기의 본질적 성격

이와 같은 현대자본주의가 직면하고 있는 자본축적의 위기는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다. 이 두 측면은 모두 자본주의 생산과 자본주의 생산구조 자체의 본질적인 내용으로서 현대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과 그에 따라 발생하는 위기를 근저에서부터 규정하고 있다.
하나는, 생산력 발전에 따라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높아져서 경향적으로 이윤율이 저하됨으로써 자본 자체가 재생산 불가능 상황에 빠지는 ‘과잉축적’에 처하게 되는 데서 발생하는 위기의 측면이다. 또 하나는, 자본주의에서 모든 것의 근간이 되는 ‘자본’이 실은 실체가 ‘노동’에 의하지 않고는 형성되지 않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이 두 측면은 한 몸통이다.
즉 ‘자본’은 자기자신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만들어주는 ‘노동’을 필요로 하며, 그 노동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때문에 자본은 늘 자기를 만들어주는 노동을 찾아내야 하는데, 자본주의 시초에 엔클로우저 운동을 통하여 자본은 그러한 노동을 제공할 자, 즉 ‘임금노동자’를 대량으로 만들어냈던 것은 바로 그 점을 보여준다. 그것을 자본의 ‘시초축적’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임금노동자의 노동이 없이는 자본이 당초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드러내 준 역사적인 사실이다. 자본은 노동자를 ‘고용’하여 자신의 지휘와 통제하에서 노동하도록 하여 자기를 재생산하고 축적해 가는 것이다. 이때 자본에게 필요한 것은 자본을 형성시켜주는 고분고분하고 반항하지 않으며 생산성이 높은 노동력을 보유한 노동자이다. 자본의 실체는 바로 노동자가 만들어내는 ‘잉여가치’이며, 그것을 만들어내는 노동자는 물론 살아 있는 인간으로서의 노동자이다. 노동자는 살아 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기계나 원료 등 다른 생산요소들과 달리 그 스스로를 재생산해야 한다.
자본가는 타인(노동자)의 노동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노동자를 갖가지 방법으로 자본을 생산하도록 강제하는데, 살아 있는 사람의 노동을 빼앗아야 하므로 노동자와 대립·충돌할 수밖에 없다.
바로 그 점에 자본의 위기가 내재하여 있다. 즉 노동자가 자본의 끊임없는 이윤탐욕에 대하여 반대투쟁을 벌여 생산을 중단시키면 자본은 자기재생산을 중지당하기 때문이다.

3) 신자유주의의 등장

2차대전 이후부터의 현대자본주의는 20세기 초반기의 노동자계급의 대(對)자본투쟁과 그때까지의 생산력 수준에서의 과잉축적 상황에서 소위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 프로젝트를 통하여 한편으로는 군수산업을 포함하여 국가주도로 과잉축적상황을 해소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민중에게 일정한 복지를 제공함으로써 반자본투쟁의 전면화를 봉합시켜왔다. 그러나 60년대 후반기를 경과하면서 케인즈주의는 자본주의의 모순 봉합에서 제역할을 끝냈다. 그 케인즈주의를 대체하고 나선 것이 소위 신자유주의이다.
케인즈주의가 일정한 수준의 복지·정부규제·노조인정·공기업확대 등을 특징으로 하였다면, 신자유주의는 핵심적으로 그점들을 파괴하고 케인즈주의 이전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역사반동적 프로젝트이며, 단순회귀가 아니라 자본의 국경을 파괴한 지구적 운동 속에서 더욱 심화되고 있는 자본주의 위기에 대응하는 내용을 갖는 회귀이다.
현대자본주의하에서 각국 자본주의는, 초국적자본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자본의 지구적 운동에 의하여 일국적 완결성이 크게 약화되었다. 자본간 경쟁의 세계적인 격화로 인하여 특히 선발자본주의 국가들을 축으로 한 중심부 자본주의 바깥에 존재하는 나라들의 경우는 물론이고 선발자본주의 국가들 간에도 ‘전쟁’이라고 불리울만큼 시장쟁탈전이 격화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간의 쇠고기분쟁과 바나나분쟁, 일본과 미국간의 철강분쟁 등 심심챦게 터져나오는 무역분쟁들은 자본간 격화된 경쟁의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하물며 중심부 자본주의 국가 바깥에 존재하는 나라들에 대한 선발자본주의 내지는 초국적 자본의 거센 시장개방 압력은 정치·군사적인 열세도 함께 작용하여 해당 국가들의 노동자·민중에 대한 자본측의 전면적인 공세가 도를 더하고 있는 실정이다.
선발자본주의 국가에서 신자유주의는 대표적으로 미국의 레이건과 영국의 대처 정권에 의하여 7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근본적으로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격을 핵심으로 하여 사회복지예산의 축소와 민영화가 대대적으로 전개되었다. 이른바 신보수주의·신자유주의 프로젝트를 통한 자본축적 기반의 재편이다.


3. 한국에서의 신자유주의의 전개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 ‘신자유주의’라는 말은 학계 일부에서만 소개되고 있었을 뿐 대중적으로 매우 낯선 것이었다. 그러다가 그것이 본질적으로 철저히 반노동자·반민중적인 정책들로 구성되어 있고 거기에 맞서 노동자계급이 반대투쟁을 전개하면서, 특히 96말-97초 노동자 총파업투쟁을 경과하면서 노동자·민중 일반에게도 낯선 용어가 아니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신자유주의는 자본측에 의하여 90년대 초부터 조금씩 주장되다가 본격적으로는 김영삼 정권에 의하여 총자본의 입장에서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아다시피 김영삼 정권은 소위 ‘세계화 구상’을 제기하고 ‘신경제정책’이라고 해서 경제의 개방, 정부 규제 완화, 공기업 민영화 등에 착수하였고, 노동부문에 대해서는 ‘신노동정책’을 내세우면서 ‘노사관계개혁위원회’(노개위)를 설치하고 우선 먼저 노동관련 법·제도를 자본의 요구인 ‘노동시장 유연화’ 맥락에서 바꾸어내려는 작업에 착수하였다.
김영삼 정권의 그러한 구상은 그러나 결정적으로 독점자본을 순치하는 데 실패하고 노동자계급을 순치하는 데 실패함으로써 결국은 무력화되게 된다. 국내 독점자본은 정권의 소위 ‘개혁 드라이브’ 요컨대 국내경제구조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에 대해 반발함으로써 이를테면 토지공개념과 금융종합과세 등 기본적 사항조차 도입에 실패하였다.
그 반면 김영삼 정권은 자본시장 개방 등 독점자본의 입김이 비교적 약한 부분에서는 자본측의 반발과 무관하게 ‘개방’에 속도를 냈는데, 이로 인하여 실질적으로 단기투기자본까지 별다른 제어장치 없이 드나들면서 노름판을 벌일 수 있게 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정권 말기인 97년 경제위기를 자초하게 되었다.
요컨대 독점자본의 취약한 재무구조와 자본시장 개방 등을 필두로 한 국내시장 개방에 대한 자본측의 준비부족이 정권과 자본으로 구성되어 있는 총자본측의 내부 갈등구조를 형성함으로써 김영삼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경제 재편 구상은 절름발이 수준을 면치 못하였다.
또한 그 와중에서 자본측에 대해서는 별다른 ‘개혁’을 못하는 가운데 노동자계급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신자유주의 전략을 관철시키고자 하였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자본측과 정권이 노동자계급에 대해서는 완전히 일치된 입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결정적으로 노동자계급의 총파업투쟁이 일어났고, 그럼으로써 결국은 정권의 위기까지 자초하는 상황에 빠지게 되었던 것이다.
김대중 정권은 김영삼 정권 말기에 폭발한 한국경제의 위기상황에서 집권하여 김영삼 정권에 의하여 시도된 신자유주의를 전면적으로 정책화시키게 된다. 경제위기 국면은 김대중 정권의 그러한 정책에 유리한 정황으로 작용하였다. 김영삼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축적구조 재편기도는 핵심적으로 자본측(재벌)과 노동자계급을 정치적으로 포섭하는 데 실패함으로써 좌절되었던 반면, 김대중 정권은 ‘경제위기’ 국면을 철저히 한국자본주의 구조를 신자유주의적으로 재편하는 데 이용하였다.
김대중 정권은 세계 자본주의를 주도하고 있는 초국적자본과 그 이해 대변체로 기능하고 있는 IMF(국제통화기금)에 철저히 기대어 한국자본주의의 97년도에 폭발한 위기를 봉합하였다.
앞에서 설명하였지만, 현대 세계자본주의는 초국적 자본 주도의 각국 노동자·민중 배제적인 신자유주의 정치전략에 의하여 전반적으로 심화되어 있는 자본축적위기와 그로 인한 자본주의 체제의 정치적 위기 폭발을 일시적으로 봉합시켜내고 있다. 특히 선발자본주의 국가들에서의 과잉축적 위기를 전세계로 이관 내지는 퍼트림으로써 위기의 세계적 전개가 가속화되고 있는 동시에, 주변부 국가들의 노동자·민중에 대한 수탈체계와 수탈구조가 전면적으로 신자유주의 정치전략에 의하여 재편되고 있다.
김대중 정권이 신자유주의적 전략에 철저히 기반하여 경제위기에 대응하고 있는 점은 98년부터의 소위 ‘4대 구조개혁 과제’라고 하여 추진한 구조조정 정책에 의하여 이미 잘 드러난 바 있다. 노동자에 대한 대량해고를 법제화한 정리해고제 전격실시와 이른바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들, 자본시장 전면개방과 해외자본 적극 유치, 노동조합운동의 체제내화를 위한 노사정위원회 설치와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투쟁하는 노동조합에 대한 물리적 탄압과 배제가 지난 3년 동안 정책적으로 이루어졌다. 자본구조조정에서 핵심적으로 의제가 되었던 소위 ‘재벌개혁’은 매우 형식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재벌의 형식적 해체와 내용적 강화, 즉 독점자본의 강화와 그 휘하로의 중소자본의 재편이 산업정책 내지는 재벌정책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다.


5. 신자유주의의 귀결점

간단하게 신자유주의가 초래할 결과들에 대하여 몇가지 정리하고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앞에서 살펴보았지만 신자유주의는 철저히 자본에 의한, 자본을 위한, 자본의 지배전략이며 위기에 직면한 자본주의의 위기돌파전략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자본의 대극에 위치하여 적대적으로 대립하는 존재인 노동자계급에 대한 배제와 수탈구조 재편강화를 통해 자본의 위기폭발을 봉합시켜내면서 자본축적구조의 안정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자본의 배타적이고 폭력적인 정치전략이다.
신자유주의의 본질과 성격이 이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필연적으로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요컨대 신자유주의의 끝에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첫째로, 신자유주의는 현대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모순에 대하여 해답을 주고 있지 못하다. 신자유주의는 현대 발달된 자본주의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과잉축적 모순을 자본의 지구적 전개에 의하여 전세계 미발달된 자본주의에 전가함으로써 선발자본주의의 축적위기를 전세계로 확대시킴으로써 일시적으로 위기폭발을 모면하고 있지만, 97년 아시아 각국의 경제위기와 그에 이은 러시아 경제위기 폭발, 그것의 중남미로의 확대 등에서 보여졌듯이 매우 불안정한 양상을 그대로 노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세계자본주의의 전개가 언제까지 파탄을 모면하고 전개될 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휩쓸려 가고 있다. 만일 세계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에서도 자본의 신자유주의 전략이 비교적 순항하게 된다면, 전세계적인 과잉축적구조의 심화와 세계 동시공황의 가능성이 더욱 커지게 될 것이다.
둘째로,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이미 여기저기서 이러저러하게 파탄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그것이 매우 배타적인 자본축적전략이라는 점에서 각국에서 드러나고 있는 것은 각국의 국내 자본의 집적집중의 심화와 함께 대소자본간 이중구조의 심화가 나타나고 있고, 국내 계급계층간 소득격차의 극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자본주의 내부적인 현상들에 대한 몇가지 중간적 대응들이 유엔 등에 의하여 전개되고 있는 ‘빈곤퇴치’ ‘기아·걸식 아동 구제기금’ 등등이다. 소위 비정부기구(NGO)들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은 그와 같은 모순들에 대한 자본의 위기의식의 반영이며, 자본에 의한 일시적 구제책이 불가피할 정도로 세계적인 자본주의 모순의 심화가 전개되고 있는 것을 역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3년 동안의 경제위기와 김대중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으로 인하여 소득격차가 극심한 상황이며, 빈민층이 1천만명에 달한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을 정도이다.
셋째로, 신자유주의가 자본의 정치전략이라는 점은, 전 사회의 가치기준 및 의식과 사람들의 생활구조 자체를 모두 자본의 축적전략과 이윤추구 논리에 의하여 도배하는 프로젝트라는 점과 같은 말이다. 그 점에서 신자유주의는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신자유주의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각 개인들이 자본주의의 운동 메카니즘과 자본의 이윤추구에 위기가 도래하였을 때 그 사회에 살고 있는 한 그 영향을 피하기 어렵다는 객관적인 존재조건으로 인하여 자본의 노동자·민중 배타적인 축적전략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거기에 즉각적으로 도전하고 반대투쟁을 전개하기 어렵다는 사정을 경과하여 노동자·민중으로 하여금 스스로 자본의 전략에 굴복하게 만들어가고자 하는 전략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이 점은 지난 3년 동안 우리나라 노동자·민중이 겪어온 과정들을 통하여 잘 알 수 있다. 98년 2월에 민주노총이 김대중정권의 ‘노사정위원회’에서 정리해고제와 노동자파견제를 전격 수용한 것과 그 이후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원회’ 참가여부를 놓고 수없이 갈등하면서 동요한 과정은 바로 그와 같은 점들을 말해준다.
현대자본주의의 구조와 특징, 그리고 한국에서의 현시기 자본(그리고 총자본)의 전략이 갖는 그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성격과 그것의 전개, 그리고 앞으로의 전망에 대하여 권력과 자본에 의해 주입되고 덧씌워진 허상을 걷어내고 노동자계급의 입장과 눈으로 철저히 재해석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거기에서부터 현재 한국자본주의가 놓여 있는 상황이 재인식되어야 한다. 총선을 즈음하여 집권 여당이 ‘세를 몰아주지 않으면 경제위기가 재발할 수도 있다’는 식으로 표를 모으려 했던 것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경제위기 재발 가능성을 정치적 눈속임으로 이용한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새로운 세계의 싹은 노동자계급의 현실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노동자계급의 현실 중에서도 자본에 종속되어 있는 ‘임노동의 사슬’을 유지하고자 하는 굴종적 현실에서가 아니라 그 사슬을 단단히 옭죄고자 하는 자본의 음모를 끊어낼 수밖에 없는 생존과 민주적 권리의 압살 상황에 대한 자각과 계급적 결집의 현실 속에서 새로운 세상의 전망이 움틀 수밖에 없다.(상지대학교 교지(󰡔상지󰡕) 원고/ 200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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