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이은숙
◎ 작성일:2000.07.30(일)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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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총파업투쟁의 전개과정과 역사적 의의
성신여대 교지 원고(1997/4/30)
1. 들어가는 말
작년 12월16일부터 올 1월에 걸쳐 전개된 노동자 총파업투쟁은 노동운동뿐만 아니라 나라의 민주적 발전을 추구하는 모든 세력들에게 실로 많은 교훈을 남겨주었다. 이번 총파업투쟁은 한국전쟁으로 분단이 고착화된 이후 최초로 전국적·전산업적으로 전개되었으며, 노동자의 투쟁력이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발휘되었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의를 획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총파업투쟁의 과정은 노동자계급이 진정한 민주주의 실현의 주도세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이러한 역사적 의의를 가짐에도 불구하고, 이번 총파업투쟁을 총괄적이고 전면적으로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운동진영에서는 총파업투쟁을 아직 끝나지 않는 투쟁으로 보고 있으며, 올 임금·단체협약 투쟁과정과 연계지어 6월 총력투쟁을 예고해 놓고 있는 상태이다. 이것은 직접적으로 노동자 총파업을 불러오게된 노동관계법 날치기개정은 철폐되었지만 지난 3월 국회에서 재개정형식을 빌어 이루어진 법 역시 철저히 자본측의 요구를 수용한 개악으로 마무리됨으로써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정리해고제 및 변현시간제로 대표되는 정부와 자본의 '탄력적' 노동시장정책과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새로운 규제 정책들로 나타나고 있는 자본측의 '신자유주의'적 공세가 이번 개정노동법의 주요 골간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의 총파업투쟁으로 폭발되었던 노동관계법을 둘러싼 노자간의 대립과 갈등이라는 것은 자본측의 '신자유주의' 공세에 대한 노동측의 대항투쟁이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개정노동법이 공포된 이후 시작된 올 임단협투쟁은 단순히 예년과 같은 임금인상 및 단체협약 갱신 투쟁이라는 시각에서 볼 수 없고, 개정노동법이 내포하고 있는 전면적인 노자관계 재편 의도의 한가운데서 그러한 의도를 무력화시켜야 한다는 노동측의 긴박한 요구가 배경에 있다는 점에서 예년과 크게 다른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즉 올 임단협투쟁은 필연적으로 총파업투쟁의 연장선에 자리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총파업투쟁은 올 임단협 투쟁과정과 그 이후의 상황을 기각시키고서는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작년 12월16일부터 1월18일까지의 시기를 중심으로 하여, 우선 총파업투쟁의 배경이 되었던 정부의 '신노사관계 구상'과 '노사관계개혁위원회' 활동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면서 총파업투쟁 전개과정과 그 역사적 의의를 새겨보고자 한다.
2. 총파업투쟁의 배경
96-97년 총파업투쟁은 작년 5월에 김영삼정권이 제기한 '신노사관계 구상'에서 직접적으로 기인하였다. "참여와 협력의 노사관계"를 슬로건으로 하여 내걸어진 이 '신노사관계 구상'은 김영삼 정권이 출범 초기부터 '세계화'로 표방된 개방정책과 국가경쟁력 논리의 연장선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는 80년대부터 미국과 서구 제국을 중심으로 하여 나타난 '신보수주의/신자유주의' 정권(이를테면 미국의 레이건 정권 및 영국의 대처 정권) 및 정책들(이를테면 사회복지정책의 후퇴와 노동에 대한 공격, 그리고 시장지상주의)과 함께 세계자본주의의 시장경쟁 격화(이는 80년대 이래 GATT체제가 무력화하여 파산을 맞이하고 우루과이라운드를 거치면서 등장한 WTO체제로의 재편과정에서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다)라는 사정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정책의 핵심은 자본에게는 이윤추구운동에 대한 무한한 자유 보장, 노동자에게는 실업의 자유 보장(!)이다. 유럽에서의 10%를 훨씬 넘기는 실업률과 미국에서의 노동시장 분단 등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세계자본주의의 흐름 속에서 김정권은 '세계화'를 내걸고, 작년에 OECD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인 자본간 경쟁 속에 우리나라를 편입시키게 된다. 그 일환으로 제기된 것이 '신노사관계 구상'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신노사관계 구상'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자본의 '무한경쟁' 논리에 노동을 일방적으로 편입시키기 위한 준비작업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신노사관계 구상'에 의해 청와대 직속 자문기관으로 설치된 '노사관계 개혁위원회'(노개위)의 활동은 그런 점에서 당초부터 '국가경쟁력 강화론'에 입각하여 노동측으로 하여금 자본의 논리에 협조하도록 규정받고 있었기 때문에 그 활동의 한계라는 것도 명약관화한 것이었다. 자본측은 노개위 활동을 통하여 '합법적으로' 그리고 여론몰이를 통해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노동측이 양보해야 한다'는 논리를 관철시키려고 하였고 노동측은 처음부터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던 정리해고제 도입 의도 및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족쇄 마련 의도를 저지하고자 하였다. 결국 5월부터 11월까지 노사정 및 소위 '공익' 위원들로 구성되어 활동했던 노개위는 노동관계법 개정(안) 합의에 실패하였고, 급기야 '공익위원안'으로 개정안을 마련해 정부에 제출하게 된다. 그러나 그 '공익위원안' 마저도 정부와 자본측이 볼 때 미흡했던지 이를 수정하여 국회에 상정해버리게 된다.
3. 총파업투쟁의 전개과정
이렇게 하여 1996년 12월26일 새벽 신한국당 단독으로 날치기해버린 노동관계법 개정은 그날부터 즉각 노동자 총파업이라는 파장을 불러왔다. 연말연초이기 때문에 누구도 그토록 강력한 투쟁이 벌어지리라고 상상하지 못했지만 노동자들은 시기상의 어려움쯤은 간단히 돌파하였던 것이다. 최소한의 형식적 민주주의도 담보하지 못하고 '날치기'했다는 사실이 노동자들과 민중 전체를 들끓게 하였다.
12월부터 1월에 걸친 총파업투쟁 국면을 시기구분해보면 4국면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전초단계로서의 제1시기는 12월3일 정부가 '정부안'으로 노동법 개정안을 확정한 때부터 12월25일까지이다. 이 시기에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총파업결정을 내리고 파업준비에 들어갔으나 각각 파업결정을 유보하는 조치를 취하게 된다. 제2시기는 12월26일 새벽 신한국당이 단독으로 노동법개정 정부안을 날치기 처리하고 전국적인 총파업투쟁이 시작된 때부터 1월1일까지이다. 제3시기는 노동자의 총파업투쟁이 확대되고 전민중이 그 투쟁에 동참하면서 김영삼정권에 대한 '불복종운동'으로 나아간 1월2일부터 민주노총이 전면파업을 중단하고 '수요파업'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한 1월17일까지이다. 제4시기는 1월18일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공동연대하여 여의도에서 대규모 집회를 연 날부터 1월말까지로 잡을 수 있다.
제1시기에는 노개위로부터 노사합의에 실패하고 공익위원안으로 제출된 노동법 개정안에 대하여 정부가 '노사관계 개혁 추진위'(노개추)를 국무총리 주관하에 구성하면서 공익위원안을 수정하여 정부안으로 확정(3일)하자 민주노총이 비상중앙위원회(6일)를 열어 파업일정을 논의하는 등 파업준비에 돌입한 시기이다. 민주노총은 3일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가 애초에 밝힌 노사관계 개혁의 기본방향과도 완전히 배치된 노동법 개악안을 내놓았을 뿐만 아니라, 방송법/안기부법/집시법/선거관련법/의료보험법 등을 개악하여 국민의 기본권을 결정적으로 침해하고 사회복지를 후퇴시키는 반개혁적 조치를 노골화하고 있는 데 대해 결코 현정권에게 개혁을 기대할 수 없음을 확인하고 광범한 국민과 더불어 강력한 대정부투쟁을 전개하지 않을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고 밝히고, 정부의 노동법 개악에 맞서 10일 경 전국적 총파업을 벌이겠다고 천명하였다. 한국노총도 3일 긴급 중앙집행위원회를 소집하여 파업일정을 정하고 성명서를 발표하여 "정부는 전체 노동자와 노동계가 끊임없이 반대해온 노동법의 모든 독소조항을 총체적으로 도입하려 획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5공 군사독재시기의 노동악법보다 더욱 간악한 조항마저 끼워 넣음으로써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는 어리석고 무모한 작태를 시도하고 있다"면서 이수성 내각 총사퇴를 주장하고, 정부가 노동법 개악을 포기하지 않을 경우 16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할 것임을 경고하였다.
자본측은 12월6일 노동법을 연내 개정해야 한다고 정부에 촉구하고 나섰다.
노동계의 반발이 확산일로에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12월10일 노개추의 노동법 개정안을 수정한 후 국회에 제출하자 노동자들은 총파업준비에 돌입하였고, 각급 노조조직에서는 파업찬반투표에 들어갔다.
그런데 10일과 16일에 각각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결정하였던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각각 12일과 15일, 파업을 유보한다고 발표하였다. 대신에 민주노총은 명동성당에 투쟁본부를 설치하고 16일부터 무기한 삭발농성을 시작하였으며, 한국노총은 6천여명이 삭발식을 갖고 노동법 개악에 대비한 투쟁에 들어갔다. 이 파업유보 결정에 대해서는 수많은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여하간 12월17일까지 예정되었던 제181회 정기국회에서는 노동관계법이 국회에 상정되지 않았고 12월18일 정기국회가 폐회된다. 이로써 노동관계법은 연내 처리될지 여부가 매우 불분명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정기국회가 폐회되고 난 2일 뒤인 20일, 신한국당은 12월23일 임시국회 소집 요구서를 제출하였고, 노동관계법 등의 날치기 움직임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투쟁을 유보하였던 노동계의 허를 찌르고, 성탄절과 연말연시를 기화로 하여 노동법을 개악하고자 한 것이다. 23일 임시국회가 개회되자 민주노총은 다시 26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할 것을 결정하게 된다.
결국 12월26일 새벽 노동관계법과 안기부법 개정안이 날치기 통과되었다. 노동계는 26일부터 전면적인 총파업투쟁에 돌입했다. 이 1단계의 정기국회 시기에 노동계가 당초 결정하였던 총파업 일정을 유보하였던 것에 대해 엄밀하게 평가할 여유는 없었다. '날치기'가 현실화하고 더 이상 투쟁을 유보할 수 없게 된 노동계가 곧바로 투쟁에 들어갔고, 그 투쟁은 1월을 넘기면서 계속 확대되었기 때문에 날치기날 이전의 투쟁과정에 대한 엄밀한 평가는 수면 아래의 차후 과제로 넘겨졌던 것이다.
제2시기는 12월26일 새벽 날치기가 이루어지고 민주노총이 '무기한 총파업 돌입 긴급 투쟁지침'을 발표하고, 반나절만에 88개 단위노조 14만 5천여명의 조합원들이 파업에 참여함으로써 시작된다. 한국노총은 이날 지침을 내어 12월27일 하루 총파업에 돌입한다고 발표하였다. 이때부터의 투쟁은 명백히 민주노총이 주도하여 이루어지게 된다.
12월27일 민주노총의 172개 노조 21만2천명이 파업에 돌입하고, 여의도에서 수도권지역 총력집회를 열었다. 한국노총도 이날 31일까지 시한부파업에 들어가겠다고 발표하고, 1시부터 총파업에 돌입했는데 4백 86개 사업장의 15만6천여명의 조합원을 동원하여 규탄대회 및 가두홍보전을 전개하였다. 12월28일부터는 서울지하철 노조 등 공공부문 노동자가 파업에 합류했고, 29일에는 부산지하철도 파업에 들어갔다. 연일 수십만명 규모의 파업참가를 조직하면서 투쟁을 전개해온 민주노총은 30일, 기자회견을 열어 1월2일까지 날치기를 백지화하지 않을 시 1월3일부터 투쟁을 재개한다는 방침을 발표하고 일단 지하철 등 공공부문의 파업을 풀었으며, 31일에는 신정연휴 동안 파업을 중단하겠지만 3일부터 단계적으로 파업규모를 확대하겠다고 발표하였다. 한국노총도 31일, 파업을 일시 중단하고 1월11일부터 2단계투쟁에 돌입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하였다.
제3시기는 노동자 총파업투쟁이 전국민 투쟁으로 확산되는 시기이다. 3일 오전 8시를 기해 시작된 2단계 총파업에는 민주노총 소속 자동차연맹, 금속연맹, 화학노협 등 44개 노조 9만여명이 일차로 참가하였다. 6일부터는 현총련 등 대형 사업장과 사무노련 전문노련 건설노련 등 사무전문직 노동자들이 가세하였고, 7일에는 병원노련과 방송사 노조가 무기한 전면파업에 돌입함으로써 최대의 파업규모를 이루게 된다. 이 시기에 국제자유노련이 김영삼 대통령에게 항의서한을 전달하는 등 국제연대가 활발해지고 각국에서 한국 노동자의 총파업투쟁에 대한 지지연대활동이 이루어졌다(영국노총, 이태리노총, 대만노총, 스리랑카노총, 미국상업노조, 미국일반금속노조 등 연대지지사 발송). 또한 이 시기에는 전국 36개대학 법학교수 62명이 성명서를 내어 날치기 법은 법적 효력이 없다는 입장을 발표하였으며, 환경운동연합 경실련 등 14개 시민단체도 8일 기자회견을 여는 등 노동자 파업투쟁에 동참하였다. 이시기에 종교계, 학계, '보통주부' 등의 성명서가 잇따르고, 노동자 총파업투쟁은 1월15일 최고조에 이른다. 민주노총이 3단계 전면총파업투쟁으로 천명한 1월15일에는 재차 지하철과 병원노련 등 공공부문을 포함하여 화물운송, 자동차, 현총련, 금속, 화학, 방송사 신문사 통신사 등을 포함하여 사무전문기술직 노조들이 모두 파업에 들어갔다. 민주노총 자체 추산으로는 413개 노조 37만여명이 총파업에 참가하였다. 한편 14일부터 2단계 파업을 벌인 한국노총의 경우에도 자체집계로 1월15일 현재 15개 산별 1,650개 노조 40만 여명이 파업에 참가함으로써 최대의 파업이 이날 이루어진 것이다.
이러한 투쟁과정 중에 민주노총은 1월17일, 투본 대표자회의를 개최하여 3단계 전면 총파업을 일단 마무리하고 2월18일 재차 총파업에 돌입하되 그 이전에는 전면파업을 중단하는 대신에 매주 수요일만 총파업의 날로 정하여, '수요파업'으로 전환하고, '장기전 준비에 돌입한다'고 발표하였다. 또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이날 공동투쟁 방침을 내고 앞으로 투쟁에서 공동보조를 취할 것을 결정하였다. 이로써 1월18일 여의도에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8만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공동집회를 개최하게 된다.
1월18일 집회 이후에는 총파업투쟁이 사실상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그 주부터 예정되었던 '수요파업'은 1회에 그쳤고, 이후에는 명동성당 농성장을 민주노총 사무실로 이전하고, 이후에는 노동관계법에 대한 정부의 재개정방침 표명, 그리고 노동법 재개정 논의는 이제 국회로 위양되게 되는 것이다.
제4시기인 1월18일 이후에는 여야 영수회담(1/21), 수요총파업(1/22), 민주노총 농성장 이전(1/24), 민주노총 2월18일총파업 연기결정(2/12), 민주노총 26일부터 4단계총파업돌입 결정(2/25), 민주노총 107개 노조 13만2천여명 시한부파업(2/28)로 이어졌다.
그러나 3월10일 국회에서 여야 단일안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동법 재개정안은 예상대로 날치기개정법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노동자 투쟁의 가장 큰 관심과 요구였던 정리해고제마저도 2년 유예 꼬리표를 달아 법에 명시적으로 도입되었으며, 변형시간제, 선택적 근로시간제 등 근로기준을 악화시킬 소지가 많아 노동자들의 거센 반발을 받았던 내용이 모두 도입되었다. 교사·공무원의 단결권 보장은 완전히 무시되었고, 그리고 이에 더하여 노동조합 활동을 옭아매는 각종 독소조항들이 속속 도입되거나 보강되었다. 이를테면, 파업시 대체고용 허용, 3자개입금지 존속, 해고자의 조합원자격을 종전에는 대법원 확정판결 때까지 인정하던 것을 이번에는 중앙노동위원회 재심판정까지로 축소,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파업중의 임금지급요구 금지(이른바 무노동무임금), 공익사업장 냉각기간 연장, 교섭권과 체결권 일원화 등등 일일이 꼽을 수 없을 정도이다. 여성노동 관련 보호조항들은 그대로 존속시켜 개선된 바 전무하다. 현재의 개정법하에서는 노동자의 파업권(단체행동권)이 대폭 제약되게 되어 있으며, 단결권과 단체교섭권도 크게 제약당하게 되어 있다. 다만 상급단체에 대해서만 복수노조가 허용된 것, 그리고 노동관계법 안에서는 노조의 정치활동 금지조항이 삭제된 것 등 부분적인 개정도 이루어졌고, 그 성과는 결코 폄하될 수 없는 것이지만, 워낙이 개악된 것이 많고, 그 개악내용이 향후 노동조합운동을 옭죌 이중삼중의 그물망을 이루고 있어 개정성과가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정이 이러하기 때문에 노동측은 올 임·단협투쟁을 총파업투쟁의 연장선에서 치러내겠다고 천명한 바 있으며, '개정노동법을 무효화시키는 투쟁'으로서 그 성격을 규정한 바 있다.
따라서 올 임·단협투쟁은 이러한 귀결을 보인 개정노동법에 대항하는 투쟁으로 위치할 것을 요구받고 있으며, 당연하게도 총파업투쟁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는 올 임단협투쟁과정까지 포괄하여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2월에서 1월에 걸쳐 거세게 전개되었던 총파업투쟁의 역사적 의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4. 총파업투쟁의 역사적 의의와 한계 및 노동운동의 과제
96-97년 노동자 총파업투쟁은 우리의 노동운동 역사가 87년 이후 다시 한번 전환점을 맞았음을 드러내주었다. 87년이 '노동자의 인간선언'이었다면, 96년은 '노동자의 정치선언'이라는 평가(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현장에서 미래를』특별호. 1997.1.15)에서도 알 수 있듯이 87년 7~9월 투쟁은 노동운동의 대중적 진출과 민주노조운동의 새로운 흐름이 형성되는 시기였다. 그때까지 노동조합이라는 것은 결코 '대중적'이지 않았으며, 노조활동은 한국전쟁 이후 긴 휴면상태에 들어 있었다. 파업이라는 것도 역시 전혀 '대중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85년 대우자동차의 노조민주화세력에 의한 파업투쟁 이후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특히 87년의 대대적인 노조 조직화 및 민주화투쟁은 파업이 노동자의 투쟁무기로서 일상적으로 등장하였으며,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조직인 노동조합을 크게 확대하여 나갔고 노조활동도 활발해졌다. 이러한 성과는 90년 1월22일 전노협의 결성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후 95년에 민주노총이 건설되기까지 노동조합운동은 '민주노조 진영'을 형성하면서 노조의 민주적 관행을 정착시켜왔다. 이번 총파업투쟁은 이러한 민주노조운동의 전통 속에서 노동자 대중이 건실한 자신의 투쟁력을 유감 없이 발휘하였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앞에서 상세하게 살펴보았듯이, 지도부의 방침이 상당부분 부유하는 측면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총파업투쟁이 전개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이라는 민주노조운동의 조직적 실체가 계획적이고 조직적으로 투쟁을 지휘지도하지 못하였다면 또한 총파업투쟁은 가능하지 못했을 것이다.
총파업투쟁의 역사적 의의는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첫째, 이번 총파업투쟁은 한국전쟁 이후 최초이자 최대의 전국적인 정치적 총파업투쟁이었다는 점이다. 87년 대투쟁 이전까지 정권과 자본의 물리적, 이데올로기적 억압과 제도적 제약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해온 노동자들은 87년 투쟁을 거치면서 마침내 정치적/계급적 성장의 길을 열어내게 된다. 이번 총파업투쟁은 87년 투쟁이후 10년만에 실로 거대한 투쟁을 일구어냈다. 노동자들은 자신이 소속한 기업, 업종, 지역, 조직을 뛰어넘어 단일한 계급적 요구하에 하나의 노동자계급으로서 투쟁하였다. 노동자들은 '악법철폐'와 동시에 '신한국당 해체' '김영삼정권 퇴진'을 요구하였으며, 명백히 민주노조운동의 중추인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하여 한국노총까지도 투쟁으로 조직하는 놀라운 투쟁력을 발휘하였다.
둘째, 노동자들은 전국민을 실질적인 민주주의 투쟁에 동참하도록 이끌어 냄으로써 민주주의 투쟁에서 주도체로 성장하였다. 즉 이번 총파업투쟁은 노동운동은 전체 사회운동을 주도하는 시대를 열었다고 할 수 있다. 노동자 총파업투쟁은 '날치기'라는 형식적민주주의마저 파괴한 지배권력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투쟁으로 묶어세움으로써 이 사회의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의 중심에 노동자계급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또한 이번 투쟁과정을 통하여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민주노조운동이 우리나라 노동조합운동의 전국적/조직적/투쟁적 구심으로서 확고하게 그 위상과 지위를 확보해냈다.
셋째, 이번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총파업투쟁은 우리나라 자본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전세계 자본의 '유연화전략', 전세계 총자본의 '신자유주의/신보수주의'의 노동에 대한 공격에 대응하는 저항의 전형으로 떠올랐다. 세계 각지의 노동자들이 이번 우리나라 노동자 총파업투쟁을 지지하고 국제자유노련(ICFTU), OECD노조자문위원회, 국제 금속노련 등지에서 방문하여 지원투쟁을 벌인 것 등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 의의를 가지고 있는 이번 총파업투쟁은 지난 10년간 노동자계급이 전개해온 투쟁의 성과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민주노조운동 진영은 87년 이후 노동악법 철폐투쟁을 전개해 왔으며, 노동악법의 철폐는 민주노조운동의 존립조건 자체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러한 의의 및 성과와 함께, 이번 총파업투쟁과정에서는 수많은 한계와 과제도 제기되었다. 무엇보다도, 위력적인 투쟁을 전개하면서도 노동자들은 자신의 정치적 발언을 보수야당에 의존해야 하는 한계를 노정하였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노동자의 정치세력화 문제가 현실의 커다란 과제로 다시 한번 제기되고 있다. 다음으로,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하여 조직적이고 일사불란한 투쟁이 이루어졌지만, 12월23일 총파업투쟁 연기라든지, 1월18일 '수요파업'으로의 전환이라든지 몇몇 중요한 국면에서 이루어진 전술변경에 대하여 '유연한 전술'이었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하부의 투쟁동력을 이완 또는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었다는 지적들이 나오는 등 전술방침에 대한 면밀한 평가와 극복방안도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 세번째로, 이번 파업과정에서는 실제 '생산중단'이라고 하는 '파업'의 기본구조가 다소 미진하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노동자들은 이번 파업을 '정치파업'이라고 규정하고, 개별 사용자와의 투쟁이 아니기 때문에 '개별기업 사용자와 부딪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광범하게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부분조업을 하면서 일부 조합원이 가두집회와 시위에 참가하는 방식이 취해졌는데, 이 부분과 관련하여 '정치파업'과 '경제파업'의 올바른 결합은 어떻게 가능한가, 노동자의 진정한 정치적 성숙이라는 것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가 하는 과제들이 제기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노동조합의 조직발전 전망을 새로이 열어가는 문제와 광범한 미조직 노동자의 조직문제가 노조운동의 사활적 과제로서 제기되고 있다. 개정법의 핵심적인 독소조항들은 현행 기업별 노조체계에서 신규노조 조직의 가능성을 크게 제약하고 있다. 특히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문제는 일차적으로 신규노조 조직을 가로막고 있다. 또한 변형시간제와 정리해고제, 그리고 선택적 근로시간제 등은 노조활동 자체의 기반을 뒤흔들어 놓을 소지가 큰 제도 들임과 동시에, 더 큰 문제는 '과로사' 등 과도노동에 노동자들이 그대로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노조활동이 더욱 활발히 전개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봉쇄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더욱이 현재 노조 조직률이 15% 남짓한 것을 감안할 때 나머지 85%에 해당하는 미조직 노동자들은 자본의 공세에 여과 없이 노출된다는 점은 더욱 큰 문제이다. 따라서 기업별 노조체계가 갖는 '회사주의' 내지는 '애사주의'를 탈피하고 기업의 장벽을 넘어 지역과 산업 차원의 조직을 건설하면서 광범한 미조직 노동자가 조직될 수 있어야 자본의 공세에서 최소한 전체 노동자의 노동조건의 악화를 막아낼 수 있으며, 노동운동의 발전 가능성을 새롭게 열어 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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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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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4] 노동자 총파업투쟁의 전개과정과 역사적 의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