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이은숙
◎ 작성일:2000.07.30(일)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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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우선해고문제에 대하여
여노회 1998.3.2
논의에 앞서 무엇보다 먼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는 것은, '여성이 우선적으로 해고된다'는 사실에서 '여성 우선'이라는 점을 강조하여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았을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남녀 노동자간의 성별 갈등을 스스로 인정하고 들어갈 수밖에 없게 된다. 지금 상황은 여자건 남자건 노동자에 대한 자본측의 '해고'가 법이나 제도의 제약이 거의 없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는 점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 여자건 남자건 모두 '정리해고' 대상이 되어 있는 현실, 거기에서 여자들이 먼저 해고되고 있을 뿐인 것이다. 이점을 우선 분명히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같은 노동자이면서도 누가 조금 늦게 해고되고 누가 조금 빨리 해고되느냐를 놓고 싸우는 꼴밖에는 되지 않는다. 지금은 누가 먼저냐 나중이냐 차이만 좀 있을 뿐 노동자들은 누구나 해고라고 하는 태풍 앞에 등불이 되어 있는 상황이다. 해고의 요건이 있기는 하지만, '경제위기'(공황) 혹은 '부도날 판'이라고 한마디만 하게 되면 만사형통인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자본측은 지금 특히 여자노동자를 먼저 해고하고 있다. 그리고 뿐만 아니라 비정규직노동자를 먼저 해고하고 있고, 미조직노동자들이 더 쉽게 해고되고 있으며, 외국인노동자들, 고령자들이 또 먼저 해고되고 있다.
자본측은 노동자를 수많은 층으로 구분(분할)하여 자신들의 필요에 맞추어 사용해왔고, 이제 공황을 맞아 또 자신들의 필요에 맞추어 일터에서 노동자들을 내쫓고 있다. 여자/남자, 비정규직/정규직, 영세기업/대기업, 고령자/젊은층, 미조직/조직, 저학력/고학력, 그리고 외국인/내국인 등등으로 수없이 분할(혹은 구분)되어 있는 노동자들 중에서 자본측은 지금 여자, 비정규직, 고령자, 미조직노동자, 영세기업노동자, 저학력노동자, 외국인 등 조직적 저항력이 약한 노동자들을 먼저 해고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은 지극히 비열하여 약한 자에게는 강하고 강한자에게는 약한 깡패같은 짓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반발이 쎈 쪽은 쉽사리 해고하지 못한다. 그래서 반발이 쎈 쪽(지금까지는 남자/조직노동자/정규직노동자/내국인노동자/젊은층 등등)까지 모두 자본측의 필요에 맞게 해고하려고 법을 만들어 강제하고 있다. 따라서 '정리해고제' 법이 국회를 통과한 것은 쎈쪽이건 약한 쪽이건 자본측의 공격을 '차별없이' 받게 된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자본측이 자신의 필요에 따라 노동자를 갈기갈기 분할해서 사용했다가 다시 자신의 필요에 따라 노동자를 하나로 묶어내고 있는 모순적인 행동을 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즉 필요할 때는 찢고, 필요 없을 때는 한덩어리로 묶어서 한꺼번에 내다버리는 그런 자본측의 농간에 이리휘둘리고 저리휘둘릴 필요가 노동자에게 전혀 필요하지 않다.
'여성노동자 우선해고'는 자본측의 비열한 생리를 있는대로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그나마 여성은 사회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어 사회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에 그것이 사회문제화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외국인노동자의 경우는 어떠한가? 말조차 통하지 않는 사회에서 가장 처참하게 짤리고 도둑맞고 추방당하고 있다. 자본은 국적을 떠나 똑같은 생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상기하면, 우리가 외국인에게 주는 차별은, 외국에서 우리에게 주는 차별과 멸시로 꼭같이 되돌아올 것이다. 또 비정규직(그 중 큰 부분이 여성이지만) 노동자 역시 노조가 없기 때문에 그들을 우선해고하는 것이 사회문제화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법이 없어도 내쫓기고 있는 85% 이상의 노동자들(현재 노조조직률은 약 13% 남짓)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이다. 그 조건을 자본측이 만들어주었다. 즉 '정리해고제' 법을 통과시키는 그 순간, 조직노동자와 미조직노동자간의 경계(벽)을 자본측이 허물어준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조직노동자건 미조직노동자건 남자건 여자건 대기업노동자건 중소영세기업노동자건 모두 '해고'라는 태풍앞의 등불이 되어 있고, 이 사실로부터 노동자의 새로운 단결을 이루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누군가가 얘기했다고 하지 않는가? 자본은 자신의 무덤을 스스로 파고 있다. 이 점에서 '여성노동자 우선 해고' 문제를 '여성'만의 문제로 한정시키거나, 남녀간 성차별(이건 구별이건) 문제로 환원시키거나 하는 것은 '여성노동자 우선해고'라고 하는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아무런 힘도 가져다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끼리의 경쟁과 불필요한 힘의 소모를 초래할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필요한가? 조직노동자들은 미조직노동자들이 짤려나갈 때 그것을 막아내려고 노력해야 한다. 정규직노동자들은 회사측이 비정규직 먼저 짜른다고 방침을 낼 때 이를 막아내야 한다. 남자노동자들은 여자를 먼저 해고할 때 이를 막아내야 한다. 내국인 노동자는 외국인노동자가 해고될 때 막아내야 한다. ..... 이렇게 말할 때 그건 원칙으로야 맞고 말로는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현실에서는 '내가 짤리 판인데 누구를 짜르지 말라고 하냐?'의 논리가 풍미하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지만 정규직은 만년 정규직이 아니다. 조직노동자도 조직이 강해져야 조직노동자로서의 힘이 있는 것이다. 여자노동자가 해고되고 비정규직화할 때 남자노동자의 사회적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남자노동자의 사회적 부담 증대는 그들의 조직력 역시 약화시킬 것이다. 전체적으로 노동자들의 사회적 힘은 약화될 것이며, 그것은 고스란히 자신들의 노동조건과 삶의 토대를 약화시키는 데로 귀결될 것이다. 이것은 역사상으로 보아 사실이다. 소위 선진자본주의국가인 프랑스에서 왜 실업노동자들이 그토록 거세게 투쟁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생각해보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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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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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3/ 여성우선해고문제에 대하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