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이은숙
◎ 작성일:2000.07.30(일)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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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이 긴요한 이유(1)
노동과 경제 : 임금과 노동시간(1)
1998.5.28
우리는 현재 심각한 고용 및 실업문제에 당면하여 노동시간 단축을 주장하고 있는데, 실은 노동시간이 어떻게 단축되어야 고용안정을 그나마 확보할 수 있는가에 대해 각이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 또 노동시간 단축을 핵심 구호로 하고 있으면서 임금삭감 반대까지는 외치지만, 임금삭감과 동일하게 영향을 미치는 '생산성'이나 '노동강도'의 증대·강화 주장과 되물릴 때는 다시 혼동에 빠진다. 그러므로 임금, 노동시간, 생산성 및 노동강도가 서로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 어디서 그 분절점을 찾아야 할지, 먼저 가닥잡아 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노동과 경제]란에서는 앞으로 당분간 '임금과 노동시간'을 주제로 하여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이 왜 현시기에 더욱 긴요한 것인가,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의 논리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자본측은 왜 임금삭감을 전제로 하고서야 비로소 노동시간단축이 가능하다고 하는가 등등의 문제들을 다루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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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왜 지금시기에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이 긴요한지를 살펴보자. 결론부터 간단히 말하면 세계적인 과잉축적 모순의 한국적 돌출인 현시기의 한국경제위기가 대량해고와 고용불안정을 통해 노동자와 민중의 위기로 전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생존권을 방어하고 나아가 지금까지 축적된 '사회적 부'를 재분배함으로써 자본의 '경쟁의 원리'에 의한 사회가 아니라 노동자의 '연대와 단결의 원리'에 의거하는 사회로의 진보의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경제 위기의 본질을 규정하고, 또 자본의 위기를 노동자와 민중의 위기로 전화시키고 있는 문제의 소재, 즉 세계 자본주의의 현상황을 간략하게 개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현대자본주의는 과잉축적의 모순에 처해 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세계적으로 자본은 소위 '신자유주의적'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현대 세계자본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의 이른바 '황금기'를 경유하면서 엄청난 수준의 생산수단을 축적해왔다. 1952년부터 1973년까지 고용은 29% 증가한 반면 생산수단의 스톡은 같은 기간에 250%가 늘어났다. 급속한 축적은 대량의 프롤레타리아를 창조함으로써 축적의 존재조건 자체를 약화시킨다. 이를테면, 1960년대 중반, 선진 자본주의 주요국의 실업률은 3% 이하로 떨어져 거의 완전고용이 달성되었지만, 이는 자본이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상대적 과잉인구(실업 및 반실업 인구)의 규모가 줄어들어 노동자계급의 교섭력을 증대시켰다. 이는 자본이 항상적으로 이윤증대를 위해 추구하는 노동조건의 하락을 노동자계급이 잘 방어하게 되는 것을 뜻하므로, 자본의 입장에서 보면 축적조건의 약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선진자본주의 국가(미,캐,프,독,이,일,영)의 제조업 총 고정자본 스톡은 1952년 680.9에서 1973년 1903.7로, 1987년에는 3003.9로 늘어난 반면, 제조업 순이윤율은 1952년 30.2에서 1973년 22.1, 1987년 15.9로 절반수준으로 하락하고 있어 세계적인 과잉축적의 모순이 심화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과잉축적에 따른 이윤압박으로 인해 자본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시장확보를 위한 자본주의 각국의 움직임은 2차대전 후의 세계자본주의 발전을 지탱하게 했던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1945년 성립) 체제를 무너뜨리면서 WTO(세계무역기구. 1995년 성립)체제로 재편되기에 이른다. 그런데, WTO는 세계적으로 심화되고 있는 과잉축적과 독점자본간 경쟁의 격화를 배경으로, 유럽, 아시아, 중남미 등등을 필두로 확대일로에 있던 지역주의와 역내무역 증대(지역블록화)에 대응하여 지구적 규모의 시장통합을 노리는 미국,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를 경계하는 EU, 세계시장 확대를 목표하는 아시아 국가들의 '동상이몽'이 빚어낸 합작품으로서, 80년대를 풍미한 영미 중심의 '신자유주의'적 조류를 체현하고 있는 기구이다.
한편 IMF는 초국적 자본의 첨병으로서, '구제금융 이행조건'에서 드러났듯이, 초긴축 재정·금융정책, 노동시장의 유연화, 시장경쟁논리를 앞세운 경제운용, 민영화 등등 철저하게 신자유주의적 처방을 한국에 강요하고 있다.
또한 80년대 중후반 ~ 90년대에 걸쳐 자본이 세계적으로 채택한 '신자유주의' 전략은 70년대 초반까지 유지되어온 케인즈주의적 계급타협체제를 폐기하고 노동자와 민중에 대한 공격을 핵심원리 중 하나로 하여 자본주의의 본질적 모순이 가져오는 축적위기(공황)의 터널을 빠져나가려는 방향을 취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담론은 '규제완화, 탄력화, 민영화, 작은 정부, 개방화' 등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자본(특히 현대 세계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초국적 독점자본)의 운동에 걸림돌이 되는 모든 것을 제거하는 것'으로 모아진다. 특히 노동자계급의 조직적인 저항은 자본에게는 핵심적인 '규제'에 해당되므로, 노동운동의 무력화가 '규제완화' 혹은 '탈규제'의 주요한 내용이 된다. 전세계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중심 프로그램 중 하나가 노조를 비롯한 노동자계급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자본의 논리와 자본의 운동을 중심으로 사회를 다시한번 재편하고자 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를테면, WTO와 IMF, 그리고 '신자유주의 담론'은 현대 세계경제를 상징하고 주도하고 있는 세 축이라고 할 것이다.
한국경제의 위기와 그에 따른 IMF 관리체제가 이러한 세계자본주의의 흐름 속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한국경제는 90년대 들어 국제화·개방화를 모토로 시장개방을 적극화시켰으며(UR협정조인), 93년 김영삼정권 등장 이후에는 '신경제정책', '세계화'전략(96년 OECD 가입) 등으로 세계적인 신자유주의적 자본축적구조 재편에 본격적으로 동승하게 된다.
간단히 말해 현시기의 세계, 그리고 한국 경제의 위기의 본질은 과잉축적 심화로 인한 것이며, 이에 대한 세계, 그리고 한국 자본의 '처방'은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것이라는 점을 위에서 설명하였다. 그러나 그 '처방'이 과연 처방이 될 수 있는지는 매우 불투명하고 불확정적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80년대 초중반부터의 미국/영국을 필두로 한 신보수주의·신자유주의 전략은 그 '효능'을 의심받고 있다. 미국의 '비정상적' 호황과 일본의 '금융위기', 유럽의 '생산위기'(대량실업사태)가 공존하고 있는 불안정한 구조가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의 상반된 관측들(낙관과 비관)을 교차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위기'가 분출된 현시기, 국내외 독점자본은 그토록 불투명한 신자유주의 전략을 축으로 하여, 고용유연성, 임금유연성('노동시장유연성 제고')이 한국경제위기 극복의 필수조건인 양 다투어 이를 노동자계급에게 강요하면서, 저토록 불안정한 자본주의를 위해 저토록 불확정적인 자본의 논리를 수용하라고 강제하고 있다.
'유연성'이 노동자와 민중에게 의미하는 바는 자본의 이윤을 압박하는 조직된 노동운동을 하지 말 것, 그리고 '상대적 과잉인구'로 존재할 것, 즉 실업·반실업층으로 존재하라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자본이 자기재생산을 할 수 있는 이윤율을 보장할 조건을 만들어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본은 '경쟁논리'에 입각하여 다투어 생산수단을 폐기하고 있다. IMF 이후 우리나라의 생산설비 가동률은 60% 남짓으로 떨어져, 총 생산수단 중 40% 이상이 버려진 상태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노동자와 민중이 버려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현시기 고용·실업문제의 본질을 규정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노동자와 민중이 생존권에 위협을 받고 있는데도, 한쪽에서는 그동안 축적된 사회적 부가 버려지고 있는 이 부당한 현실은 자본의 '경쟁원리'가 초래한 필연적 현상이다.
이에 대해 노동자계급의 요구는, 한마디로 말해 '버리지 말고 사회화시키라'는 것이다. 노동시간의 획기적 단축과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 보장을 통하여 그동안 축적된 사회적 부를 살려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본의 자기파멸적일뿐만 아니라 노동자와 민중까지를 파멸시키는 경쟁의 원리를 인류의 진보를 위해 노동자계급의 '연대와 단결'의 원리로 대체하자는 요구이다. 이럴 때만이 현시기에 당면하고 있는 자본축적의 위기에 대한 진정한 극복의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축적된 사회적 부의 사회화'는,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현 시기의 생산력 수준에 맞는 생활수준을 영위할 수 있을 만큼 인상되는 내용을 포함한다. 거기에 소요될 '비용'은 총자본으로서의 국가가 부담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고통분담'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현시기에 노동자가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하는 것은, 자본의 축적위기에 대한 미래지향적 대안이자, 자본의 위기에 대응하는 노동자의 합목적적인 대안이며, 현재 정부와 자본이 주장하고 있는 '고통분담'의 진정한 내용을 확보해낼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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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5/ 노동과 경제 : 임금과 노동시간(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