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이은숙
◎ 작성일:2000.07.30(일)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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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이 더욱 긴요한 이유(2)
노동전선 '노동과 경제' 임금과 노동시간(2)
1998.7.1
"지금 각 현장에서는 조업단축, 휴폐업이 빈발하고 노동시간은 줄이지 말자고 해도 마구 줄어들고 있다. 그런데 왜 우리가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해야 하는가? 그것도 떡줄 놈은 생각도 않고 있는데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이라니? 현실성도 없는 공염불이다."
현재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론은 중소영세규모 사업장 노동자들, 특히 부도/폐업/휴업사업장 노동자들에게 원망까지 섞인 반발에 부딪치고 있다. 당장에 길거리로 나앉게 생겼는데 한가롭게 웬 노동시간 단축 요구냐는 말이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노동시간 단축과 상관 없이 임금삭감이 일어나기도 하고 아예 체불당한 채 못받고 있는 일도 발생되고 있다.
대공장이나 대사업장 노동자들도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 요구를 분명하게 제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임금이 삭감되더라도 고용만 보장될 수 있다면 다행 아니냐는 생각이 보통이다. 생산성을 올려서 기업을 먼저 살려놓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들이 오가기도 한다. 고용보장을 해준다면 생산성 향상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아주 '양심적'인 것 같은, 그러나 픽픽 넘어져가는 중소영세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이나 혹은 퇴출대상이 돼서 강제로 일자리를 잃게 된 노동자들이 보기에는 아주 '배부른' 그런 생각들이 널리 퍼져 있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또, 원칙적으로는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하여 일자리를 보장받고 생활임금도 확보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다고 생각을 해도, 지금 현실에는 맞지 않는다고 인식하기도 한다. '경제위기' 상황이고 또 사업장이 하릴 없이 사라져 가고 있는 그 '현실' 때문이다.
그런데, 뒤집어서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노동자들이 임금삭감을 감수하거나 생산성협조를 하거나 노동시간을 심지어 연장해서 열심히 일하겠다고 결의하고, 더 나아가 '자본들이시여! 위기 탈출을 위해 정리해고도 마음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하면 지금 넘어지고 문닫고 생산을 줄이고 하는 기업들이 살아나거나 일자리를 늘릴 수 있을 것인지?
불행히도 자본측과 정부가 주장하는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니 뭐니 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지금 쓰러지고 있는 기업들이 살아날지 어떨지에 대한 확실한 보장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자본의 '경쟁원리'가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서, 더욱이 국내자본끼리만 어떻게 잘해보면 되는 게 아니고 전세계적으로 이윤을 쫓아 사방으로 얽히고 곪혀 돌아갔던 자본의 경쟁적 운동의 결과가 세계적 '경제위기'를 빚어내고 있는 '현실'에서, 지금의 위기를 불러온 바로 그 자본의 논리 그대로 간다면 그 종착역은 지금보다 더 심한 '위기'만이 보장되어 있을 뿐이다. 경쟁의 원리를 연대의 원리로 바꾸어 나가는 것, 그것도 잘 바꾸어 나가는 길만이 오히려 인류의 공멸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 요구는 바로 그런 내용을 담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우선,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 요구가 전계급적인 요구라는 사실을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당장의 자기사업장 현실을 들어 이 요구를 도외시하는 것은 현시기의 유력한 미래지향적인 노동자적 대안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이 왜 미래지향적이고 새로운 사회의 원리가 될 수 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노동시간을 좀 더 자세히 고찰할 필요가 있다.
노동시간은 필요노동과 잉여노동의 합계로 구성되어 있다. 이 필요노동과 잉여노동의 합계는 노동시간의 절대적 크기를 결정한다. 이것이 '노동일(working day)'이다. 통상적으로 노동시간이라고 할 때는 노동시간의 외연적 길이를 의미하는데, 노동시간에는 외연적 길이뿐만 아니라 내포적 길이도 있다. 노동시간의 내포적 길이가 바로 노동강도이다. 노동일은 노동시간의 외연적/내포적 길이, 필요노동시간과 잉여노동시간, 각각의 상호관계를 포괄하여 노동시간을 고찰하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외연적 길이만을 문제삼는 자본주의적 노동시간 개념보다 노동시간에 대하여 훨씬 정확한 시야를 제공한다.
필요노동은 노동자의 노동력 재생산(생활)을 위해 필요한 노동으로서, 노동력의 가치를 생산한다. 잉여노동은 필요노동을 넘어 그 이상으로 이루어지는 노동으로서, 자본에게 귀속되는 잉여가치를 생산한다.
만약에 모든 상품이 자신의 가치대로 교환된다고 하면, 노동력도 자기의 가치대로 교환될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판매하는 것이므로 노동력 상품의 가치에 상응하는 만큼의 노동시간만 일하면 될 것이다.(그러나 현실에서 자본은 필요노동시간과 잉여노동시간을 구분하지 않는다.) 거기에 해당하는 노동시간이 필요노동시간이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계속되는 노동시간이 잉여노동시간인 것이다. 필요노동시간 이상으로 계속되는 잉여노동시간에 생산되는 가치는 노동자에게 지불되지 않고 오로지 자본가의 수중으로 들어간다. 이런 의미에서 잉여노동은 부불노동이라고 하고, 필요노동은 지불노동이라고 한다. 이것은 자본주의사회에서 자본축적의 기초를 이루며, 이 잉여노동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자본은 자신의 존립근거를 상실하게 된다. 그러므로 자본측은 노동일을 필요노동과 잉여노동으로 구분하지 않으며, 노동시간을 외연적 길이만으로 파악하고 노동하는 시간에 대해 노동자에게 전부 대가를 지불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임금을 노동력의 가치가 아니라 노동의 가치, 노동의 가격이라고 주장하는 자본의 논리도 그런 맥락에 있다.) 이리하여,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자의 노동이 전부 지불노동으로 나타난다. 반면에 노예제사회의 경우 노예의 노동은 노예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노동까지도 부불노동으로 간주되어 자본주의 사회와는 정반대로 전체 노동시간이 부불노동으로 나타난다. 봉건제사회에서는 농노의 노동이 지불노동(농노 자신에게 귀속되는 노동) 부분과 부불노동 부분(영주에게 귀속되는 부역노동)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여하간에 노동시간은 필요노동시간과 잉여노동시간의 합계로서 그 절대적 크기가 결정되는데, 모든 상품은 그 가치대로 교환된다는 가정하에서 만일 일반 상품 같았으면 필요노동시간에 해당되는 노동력 상품의 가치만큼만 일하면 되지만, 자본주의의 사회관계·계급관계는 자본축적의 기초인 노동력의 상품화, 그에 따른 임금노동자의 존재, 그들에 의한 잉여가치의 생산, 그리고 자본가의 잉여가치 전유(專有)를 특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잉여노동과 그 취득에서의 자본가 전유라는 법칙은 이미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전제를 이루고 있다. 즉 부불노동은 자본주의의 내재적인 조건인 것이다. 이를 통해 자본가는 잉여가치를 취득하고 그것을 자본의 축적기반으로 삼아 더 큰 잉여가치를 찾아다니게 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의 자본간 경쟁이란 다른 자본을 밟고 일어서지 않으면 자기가 밟히는, 말하자면 자본에게는 하나의 생리적 현상으로 관철되고 있다. 자본의 세계화(그로 인한 세계시장의 통합력 강화)와 경쟁의 격화 및 블록경제권 형성의 모순된 현상과 함께 한 나라의 경제가 위기에 처하면 다른 여타의 나라로 급속하게 위기의 여파가 파급되어 동시적 위기를 드러내게 되는 불안정 구조가 심화되고 있는 것은 모두 자본의 잉여가치 취득과 그것을 둘러싼 경쟁 논리의 산물인 것이다.
자본은 노동력 상품을 구입하여 생산과정에 투입함으로써 이미 부불노동(잉여노동)을 통하여 잉여가치를 획득하는 동시에, 또한 노동력의 가치 그대로 지불하지 않는 방법을 통해서도 잉여가치를 취득하고 있다.
여기서 잠깐 노동력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지나가자.
어떤 상품의 가치는 그 상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 측정된다. 노동력 상품의 가치도 노동력을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 결정된다. 그런데 노동력이라는 상품은 일반상품과 달리 살아 있는 인간의 몸 속에 들어 있는 노동할 수 있는 능력이므로, 노동력 상품의 가치(=노동력 재생산비)는 노동력 상품의 재생산에 필요한 생활수단들의 가치, 즉 의식주·교육·문화·자녀양육 등에 소요되는 생활수단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하여 정해지게 된다. 이 생활수단의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시간이 필요노동시간인 것이다. 이와 같이 노동력의 가치는 노동자의 가족을 포함한 생활에 필요한 생활수단의 가치로 계산되는데, 그것을 화폐형태로 보여주는 것은 현재 각급 노조에서 제출되고 있는 생계비 임금 모형이다. 그런데, 주지하는 바와 같이 현재의 임금수준은 전국전산업 '평균적으로' 생계비의 약 70% 남짓한 수준에서 지급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을 자본측은 고임금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노동시간문제로 돌아가자. 노동자가 노동력의 가치와 동일한 가치만을 생산한다면, 그것은 필요노동시간만큼만 일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때는 자본가가 취득할 수 있는 잉여가치는 형성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만일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 가치만큼의 가치만 생산한다면 자본가는 노동력을 구매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때는 잉여가치가 생산되지 않으므로 어떤 이윤도 획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잉여가치를 생산하고 그것을 자본화시킴으로써 축적을 진행하는 것이 자본의 목적인데 그 원천이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적 생산의 조건은 노동시간(노동일)이 필요노동시간과 잉여노동시간으로 구성되는 것이라고 하겠다. 이 때 주어진 일정한 시간에, 이를테면 8시간 동안에, 노동자가 노동을 통하여 자신의 노동력 가치를 생산하는 시간(필요노동시간)이 많이 걸리면 자본가가 취득할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시간(잉여노동시간)이 줄어들게 되고 따라서 노동력 가치보다 잉여가치가 적어지게 되고, 반대로 필요노동시간이 줄어들고 잉여노동시간이 많아지면 노동력 가치보다 잉여가치가 늘어나게 될 것이다. 자본은 당연하게도 후자를 추구하는데, 그들이 필요노동시간을 줄이는 방법은 생산성과 노동강도(이것은 앞서 언급했듯이 노동시간의 내포적 길이, 즉 외연적 길이는 변함이 없는데 노동력 지출량을 증대시킴으로써 노동시간 연장의 효과를 거둔다는 의미로서의 내포적 길이이다)를 증대강화시키는 방법과 함께 임금을 노동력 가치 이하로 지불하는 방법인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요구는 노동일 중에서 필요노동시간을 줄이라는 것이 아니라 잉여노동시간을 줄이라는 요구이다.(노동일은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가변량이다. 노동일의 두 부분 중 필요노동시간은, 노동자의 재생산을 위해 필요한 부분으로서 주어진 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자본주의적 생산의 동기 및 목적이 잉여가치의 취득에 있고 따라서 잉여노동의 증대에 있는 이상, 노동일 전체의 길이는, 잉여노동의 길이와 함께 변동한다.) 이러한 노동시간 단축요구는 두 가지를 동시에 의미하는데, 첫째는 필요노동시간에 해당되는 노동력 가치부분을 제대로 지불하여 노동자의 생활을 보장하라는 것(생활임금 보장), 둘째는 잉여노동시간을 줄임으로써 실업노동자들을 일할 수 있게 만들자는 것이다(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고용·실업문제 해결).
이 요구는 현재의 심각한 고용·실업문제의 근원이 세계적인 과잉축적·과잉생산으로 인한 자본축적의 위기에 있기 때문에 더욱 긴요한 것으로 제기되고 있다. 즉 현상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기업의 연쇄도산과 '일자리부족'의 원인은 본질적으로 자본이 전유하는 너무 많은 잉여가치의 생산(그에 기반한 자본의 과잉축적)이다. 그런데 그로 인한 '경제위기'를 극복하자며 자본이 내놓고 있는 대안이라는 것은 위기를 불러온 그 근원들을 보다 더 철저하게 관철시키자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를 주장하면서 정리해고제와 파견노동제를 도입한 것, 그리고 현재 추진 중인 금융산업 구조조정 및 공기업 민영화 방안들, 그리고 '재벌개혁'(실은 재벌'개선'이지만)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정부와 자본의 정책들 근간에 흐르고 있는 것은 '경쟁' '시장' '효율' 등등이고, 노동자와 민중의 생존권은 그러한 자본의 논리에 철저하게 종속적으로 위치되고 있다. 그래서 현재 대량의 실업과 실직, 불안정한 고용, 임금(노동력 재생산비) 억제삭감 등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들 논리들을 합드려서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전략'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그러한 과정을 거쳐서 그 최종적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정부와 자본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좀 나아지나 했더니 일본 엔화가치가 폭락해서 또 문제가 생기고 … ' 라고 대통령이 한숨지었던 것은 현시기의 경제위기라는 것이 일국정부 혹은 일국 자본의 의지나 혹은 결의에 의해 해소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처방'에 의한 위기극복책이라는 것이 얼마나 불확실하고도 불안한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줌과 동시에, 자본의 비애를 또한 보여준다.
이에 비해, 잉여노동시간을 줄여서 전 사회적으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나아가 노동의 보편화를 향해 나아갈 목표를 가지고 전개하는 생활임금 보장과 노동시간 단축운동은, 경쟁의 논리에 철저히 입각하고 있는 '자본의 비애'와는 달리 단결과 연대를 기본으로 하는 노동자의 논리에 입각하여 새로이 열어갈 미래상을 그려나갈 수 있는 대안이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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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7/ '노동과 경제' 임금과 노동시간(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