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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07 15:06:45
진보평론
진보평론 26호(2005년 겨울호) 발간
이번호 진보평론 특집은 ‘생명공학과 민중운동의 새로운 과제’이다. 황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연구결과가 신기원을 연 것으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고 있을 때, 그 연구가 지니는 문제성과 그로 인해 파급될 문제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기념비적 연구에 흠집을 내려는 딴지걸기 정도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줄기세포 추출을 위한 배아복제 연구에 사용된 난자 가운데 일부가 사실상 매매 거래된 것이었다는 사실, 게다가 국제적인 윤리 규범상 금지되고 있는 연구 종사자의 난자가 제공된 사실이 확인되면서 상황은 급반전되었다. 황우석 교수는 사실을 실토하고 윤리적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 순수 연구직 이외의 모든 공직을 사퇴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사실 이번의 난자 거래 및 제공과 관련된 소동은 어떤 면에서는 예견되었던 일이다. 걱정했던 일이 현실로 드러났을 때의 당혹스러움이란…….

이로써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관한 여론과 일반의 시선이 과연 급반전하였을까? 언뜻 보기에는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와 함께 찬사일변도로 나아갔던 언론의 뜨거운 분위기에 난자제공 사실을 밝힌 PD수첩의 보도는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요동치는 여론의 파고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일관된 관심사가 이 연구를 둘러싼 논의를 관통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른바 국익의 논리다. 이라크 파병 때도, FTA 협상체결과 관련해서도, 그야말로 모든 사안마다 언제나 등장하는 바로 그 논리다. ‘앞으로 십년 후면 황우석 한 사람이 전 국민을 먹여 살릴 것이다’, ‘33조원의 경제효과를 가지고 있다’는 말들이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바와 같이 이 연구에 대한 찬사의 속내는 사실상 경제적 효과에 대한 기대심리였다. 난자제공 과정의 윤리적 문제가 불거진 상황에서도 그 문제 자체의 심각성이나 그것이 함축하고 있는 복합적인 문제의 성격에 주목하기보다는, 그로 인해 연구에 어떤 차질이 빚어질 것이며 따라서 국익에 손상이 오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가 더 앞서고 있는 것이다. 국익을 지키기 위해서 사실 보도를 막고, 더 이상의 논란에 대해 말을 못하게 하며 협박까지 하는 분위기에 이르러서는 조국의 이해관계와 의학 발전을 위해서 생체실험도 마다하지 않았던 나치즘적 광기마저 느끼게 한다.

우리 현실의 이러한 사정은, 난치병의 치료와 인류복지를 위한다는 생명공학이, 횡포한 자본의 논리에 무방비 상태로 내맡겨지는 현실에 대해 언론과 일반 사람들이 별다른 문제의식을 지니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런 무지 가운데서 ‘사소한’ 윤리적 문제는 쉽사리 감춰지거나 무시되어 왔던 것은 아닐까? 그러나 그 계기가 어찌되었든 윤리적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은 천만다행이다. 차제에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포함한 제반 생명공학 연구에서의 윤리적 규준을 확립하는 것은 물론, 그와 같은 과학적 연구성과들이 자본의 지배하에서 그 목적하는 바와 달리 어떤 파괴적인 결과로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줄지 예측하고 대안을 마련하고자 하는 공론이 활발히 일어나기를 기대해본다. 󰡔진보평론󰡕은 일찍이 이 특집을 기획하고 준비해왔는데, 때마침 윤리적인 논란이 제기되어 시의적절하게도 그 논의에 기여를 하게 되었다.

특집의 서두에는 김영식의 “노동자의 시각으로 임신-출산(생식) 기술의 문제를 바라보자”를 배치하였다. 그것은 난자제공 과정상의 윤리적 문제가 쟁점이 되고 있는 현재의 시의성을 반영한 것만은 아니다. 난자매매 문제에는 배아복제 문제와 인공수정 문제, 그리고 인간게놈기술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기에 유전의학의 성격과 그 문제를 이해하는 길잡이로서 이 글을 총괄적 서론으로 삼았다.
김옥주ㆍ황상익의 글은 <뉘른베르크 연구강령>에서부터 최근 연구윤리심의위원회의 정착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살핌으로써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윤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뉘른베르크 연구강령보다 더 진전된 의료윤리의 지침을 담고 있는 <헬싱키 선언>의 내용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는 황우석 교수의 고백은 우리 현실에서 연구윤리의 취약성을 드러내주고 있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이 글의 진가를 알게 해준다.
한재각은 매우 단도직입적으로 “황우석은 무상의료와 양립 가능한가?”라고 묻는다. 의료산업화를 추구하는 정부의 정책과 시장화된 보건의료체계 안에서 황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부자의 과학’의 길로 들어섬으로써, 사회적 양극화를 의료 영역에서도 재생산해내면서 의료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킬 것을 우려한다. 한재각이 매우 구체적인 우리 현실의 사회적 관계 안에서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야기하는 파괴적 효과에 주목하고 있다면,
최형록은 기계론적 환원론에 입각한 유전학적 의학의 내적 구조를 규명하고 그것이 당대의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어떻게 거대한 산업으로 발전하고 있는지를 밝힘으로써 현대 의학과 자본의 결합구조를 거시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해준다.
김은진은 유전자조작 농작물의 개발 현황을 개괄하면서 그 문제점을 꼼꼼히 지적하고 있는데, 무엇보다 그것이 자연환경 및 인간에게 미칠 영향을 확실하게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꼽으며 그 안전대책 수립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최형묵은 최근 생명윤리 논의의 중요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기독교계의 논의가 추상적인 생명현상에 대한 이해에 집중하는 반면 구체적 현실의 불평등한 사회적 관계 안에서 벌어지는 고통의 문제를 소홀히 하고 있는 까닭이 무엇인지 반문하면서 그 이면의 동기를 들추어내고, 나아가 진일보한 생명윤리 논의 구도를 제안하고 있다.

복제 인간을 주제로 한 영화 ‘아일랜드’에서는 돈 많은 사람들의 치료를 위해 복제되어 사육되는 인간들이 결국 이를 깨닫고 인간 선언을 하면서 ‘오리지날’ 인간에게 반역하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이 지속되고 인간성에 대한 근본적 질문에 답을 가지고 있지 않는 한, 생명 공학의 발전이 어디로 귀결될 것인지를 그 영화에서 볼 수 있다. 복제 인간들에게 설파되는 파라다이스인 아일랜드는 복제인간들이 부자들에게 장기를 내주고 죽는 장소에 불과하였다. 좀더 많은 이윤이라는 관점에서의 ‘국익’만을 고려하고 보편적인 윤리기준을 무시하며 맹목적인 기술 발전만을 도모할 때, 지금의 우리나라 국민 대다수가 생각하는 파라다이스는 필경 오직 돈 있는 자들만이 무병장수를 누릴 뿐, 다수의 인간들은 이들을 위해 죽어가야 하는 ‘아일랜드’에 그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는 IT(정보 기술), BT(바이오 기술) 등이 새로운 미래를 열어 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반도체 칩, 핸드폰, 줄기세포, 자동차 이러한 것들이 우리의 목줄을 잡고 미래로 끌고 가고 있는 것이다. 1980년대 이래 극소전자혁명과 인터넷이 ‘멋진 신세계’를 열어줄 것처럼 이야기 되었으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아직도 모순에 가득 차 있듯이, 앞으로도 기술의 발전이 그 자체로 모순을 해결해 주지는 못할 것이다. 첨단 핸드폰을 들고, 복제 인간(및 동물)로부터 장기를 받아 장수를 하지만, 사회 구성원의 다수가 실업 상태이며, 생활고에 빠지고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자살하며, 살기 힘들어 아이도 낳지 않는 그러한 사회가 우리가 바라는 미래의 파라다이스는 아닐 것이다. 인간과 자연 사이의 생산력 문제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생산관계 문제를 경유해서만이 그 의미를 획득한다고 볼 때, 지금 우리 사회가 처한 모순을 분석하고 그것의 지양을 위한 운동논리를 발전시켜나가는 과제는 예나 지금이나 중차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진보평론은 앞으로도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논의의 장으로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해 나갈 것이다.


◈ 진보평론 26호 2005년 겨울호 목차 ◈

특집 : 생명공학과 민중운동의 새로운 과제
* 노동자의 시각으로 임신-출산(생식) 기술의 문제를 바라보자(김영식)
* 인체를 대상으로 하는 연구윤리의 발전: <뉘른베르크 강령>에서 연구윤리심의
  위원 회의 정착까지(김옥주󰋯황상익)
* 황우석은 무상의료와 양립가능한가?(한재각)
* 자본과 ‘생물학적· 유전학적 의학’을 넘어서(최형록)
* 유전자조작 농작물의 개발 현황과 문제점(김은진)
* 배아복제, 신의 영역 침범인가?: 배아줄기 세포 연구를 둘러싼 신학적 생명윤리
  논의에 대한 비판적 검토(최형묵)

▣ 시평 : 카트리나와 사회양극화(김연민)
▣ 정세 :
* 국민국가의 ‘민족주의’에서 유럽의 ‘문화적’인종주의로: 2005년 가을 프랑스 소요
   사태를 보면서(홍태영)
* 성노동자운동, 낯설지만 인정해야 할 ‘현실’(문은미)

▣ 발언대 : 스파르타의 벼랑 끝에서: 한국사회에서 장애아동과 그 부모로 산다는
    것 (박인용)
▣ 일반논문 : “권태는 반혁명적이다”: 상황주의자 인터내셔널의 유산(이승우)
  * 장애인운동의 전개과정과 그 특징: 2000년 이후 몇 가지 운동사례를 중심으로
    (고춘완)
▣ 논쟁 : 정보상품의 가치와 지대(류동민)
▣ 기획번역 : 통합된 세계자본주의와 분자혁명(펠릭스 가타리)
▣ 문예마당: 시를 찾아서 : 마당회식 외 2편(조영관)/ 지렁이의 죽음은 오해다 외
    2 편(정기복)/  가고 오다 외 2편(이종암)
▣ 주제서평 : 스콧 니어링: 사회주의자의 또 다른 삶(강수돌)
▣ 서평 :  피에르 클라스트르,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국가에 대항할 수 없는
              사회’로의 타자화(채수홍)
   * 김원, '여공 1970, 그녀들의 反역사': 당신에게 나, 은혜입은 거 없어!
              (이재성・김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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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07

   <마르크스주의연구> 4호가 출간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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