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간특별호: 한노정연 백서] 2007.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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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노정연을 역사 속에 남기며

현장에서 미래를  제종간특별호
손미아

한노정연을 역사 속에 남기며


어제 한노정연을 역사 속에 남기고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막차에서 그간 여러 동지들의 모습이 다시금 생각나서 방금 보고온 여러 동지들에게 참을 수 없이 또 다시 전화질을 해대었었다. 그 이튿날인 지금, 나는 밀린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서 숨을 못 쉬고 있는 상황에서도 나와 한노정연에 대한 생각에 일을 손에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은 도대체 왠 망령인지..... 그래서 할 수 없이 나는 오늘 다 쓰고 정리하지 못할지언정, 이 글을 시작하기로 했다.
우선, 내가 이렇게 가슴 저리게 섭섭해 하고 있는 것은 그놈의 '정 때문에'라고 생각하고 싶다. '정'을 제외하고, 그러고도 남는 무언가가 있다면, 김세균선생님의 말씀처럼, 그간 운동의 발전에 따라 생명체들의 그릇인 하나의 조직도 생성, 발전, 소멸해 나가는 것이 당연한 일이거늘.. 내가 이렇게 아쉬워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그것을 해명하고 싶었다. 무언가 잡을 수 없는 것 같은 그것, 그것이 무엇인가? 잠깐 그놈의 '정'을 떼지 못해 미련을 떨고 싶다. 좀 사설을 늘어놓으려 한다.

한노정연에 소속되어서 내게 가장 인상에 남았던 일은 기아 소하리 동지들을 만났을 때였다. 안양유원지 근처의 어느 장소에서 거의 며칠 밤을 새워가면서 내가 맡은 부분이랍시고 준비를 해가면, 50-100여명의 초롱초롱했던 눈망울들과의 만남 속에서 며칠 동안 밤을 새우고 축 쳐져서 간 나는 새롭게 살아나는 느낌을 받곤 했다. 그때 소하리 역 근처에 바람이 유난히 부는데.... 매번 추운 겨울에 우리는 갔었다. 나는 한노정연 보고서들을 너무나 잘하려고 내 딴에는 마음을 먹다가 예정된 마감일을 매번 훨씬 넘기기 일쑤여서 벌써 오랫동안 그런 애라고 찍혀 버린지 오래였다. 그래도 나는 나의 최선을 다했기에 사실 나 자신은 그런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았었다. 나는 노동자의 연구보고서는 최상으로 누구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의 것을 만들어야한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신념은 그 이후로도 2005년 현대자동차 노동강도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었다. 이 나의 엉터리였을지 모르는 신념(왜 엉터리냐 하면, 모든 사물에 완성의 지점이 있다면 또다시 새로운 시작지점이 있고, 해서 발전을 해 나가는 것을 그땐 모르고 너무 욕심을 부렸을지도 모르므로.....)을 그래도 받아주고 믿어주었던 한노정연 동지들이 너무 고마울 뿐이다. 기아 마지막 보고서 마감 몇시간 전에 그 보고서를 들고 한노정연 사무실로 들어갔을 때 강연자 언니를 비롯한 여러 언니들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미안하다. 나 때문에 이마에 주름살이 한개 더 늘지는 않았는지......

1996년인가 1997년인가? 안양 어느 작은 병원에서 산업보건전문의로 근무하던 나는 병원의 책상위에 기아자동차 소하리 동지들의 설문지를 온통 펴놓고 틈만 나면 작업을 해대다가 어느 날 나도 모르게 짤린 적도 있다. 그리고 갑자기 갈 곳도 없이 몇 개월을 헤매다가 결국 영국에 유학이랍시고 다녀왔다. 2001년 다녀왔노라고 인사를 하러 사무실로 가자마자 나는 이은숙 언니로부터 대우조선 노동강도 평가를 하자는 명(?)을 받고 대우조선을 내집처럼 드나들 때, 그때 나는 인생의 최고였고,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 속에 있었던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된다. 그때 후배들인 김건형, 고원진, 나승연이가 나 때문에 너무 고생을 했다. 그들은 겨우 본과 2학년, 아무것도 모르는 본과 2학년 학생들이었다. 나는 그들과 함께 대우조선, 철도노동자의 건강문제를 해결한다고 한겨울에 녹음기와 귤 박스를 들고 구로동, 독산동 철로를 건너던 때가 생각난다.

물론 그 이후로도 박우옥동지와 한노정연과 함께 한 여러개의 프로젝트가 있다. 교대제도 있고, 노동강도도 있고...... 기아화성동지들과 현대자동차동지들...... 모두들 고생이 많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숱한 날들을 화성과 울산을 오르내리지 않고 차라리 그곳에서 머물면서 살았으면 더 좋았을 것을.. 그러면 더 많은 동지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 것을 하는 생각도 든다. 지금도 5월 메이데이와 11월 노동자대회 때 항상 만나는 이들은 그때 만난 이들이다.
이렇게 같이 고생하며 그 당시에 최선을 다했고, 나의 모든 에너지를 100% 소모하면서 기뻐했던 그 곳, 그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정'이란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나 개인적으로는 어찌보면 나도 모르게 '한노정연'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안주하려고 했던 (나는 어느 모임에 가서나 한노정연 회원입니다, 라고 그렇게 하면 마치 면죄부를 부여받듯이 하곤 했다), 그러한 안식처를 과감하게 벗어나야 한다. 

'민들레처럼.....' 우리는 떠나야 한다.

여기까지는 '정'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제부터는 일이야기이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객관적 상황도 변화되었지만, 나도 많이 변화되었다. 그때 그런 현장노동자(아니 정확히 말하면 노동조합이다)에서 요구되는 연구들을 제안 받고 연구를 할 때는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때 그것이 최선이라고 알고 있었던 인식의 한계도 있다. 그 인식의 한계를 깨치고 다시 한 번 발전을 해야 할 시기이다.
이제 다시 생각해보니, 어제 한노정연의 마지막 회의를 마감하면서도 우리의 역사적 사명과 한계가 무엇이었는가? 에 대한 논의가 아직도 부족한 것이 아쉽다. 이제는 우리가 역사에 남긴 것은 무엇이었고, 또한 우리의 한계가 무엇이었는가? 를 이야기해야 한다. 앞으로도 이런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을까? 싶지만, 나는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마침 한노정연 백서가 나온다고 하니, 거기에 아마도 동지들의 많은 이야기가 실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생각은 '현장성'에 대한 접근을 좀 더 구체적이고, 발전적으로 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를 보면, 주로 노동조합과의 프로젝트 속에서 안주했고, 건강이라는 주제 속에 안주했고, 그것이 전부인 양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 관계를 넘어서는 관계가 형성되지 못했고,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면 물론 개인적인 친분이 남긴 했지만, 그것이 조직적으로 남지는 못했던 것..... 그리고, 항상 기술적이고 기능적인 측면에서만 머물게 된 것들...... 그것이 내가 이제 발전해야할 부분이다. 

아직도 현장성은 중요하고 유효하다. 오히려 이전에 한노정연이 했던 방식에서 더욱 발전적으로 현장의 노동자를 만나고 소통해야할 것이다. 그동안 그렇게도 소통을 못했던 내가 이제 진정으로 소통을 시작하려한다. (강원대 예방의학과 교수)

2007-01-18 19:4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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