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간특별호: 한노정연 백서] 2007.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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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노정연과 나

현장에서 미래를  제종간특별호
강연자

한노정연과 나


1.

88박스에 달하는 연구소자료를 내보냈고, 진보평론도 50질 정도 배포했으니 사무실은 어수선하기도 하고 썰렁하기 이를 데 없다. 10여년을 몸담은 한노정연을 정리하고 있는 요즘 수많은 생각이 오간다. 나의 삶, 주변 인물들의 삶, 그리고 운동에 대해. 많은 회한이 있기도 하지만 난 의외로 담담하다. 아마도 2년 전 연구소가 아픔을 겪는 과정에서 진을 다 뺐기 때문인 것 같다. 그 때 난 연구소 문을 닫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당시와 비교하면 좀 나아진 면도 있고, 나빠진 것도 있는 듯싶지만 큰 변화는 아닌 것 같다.

대학 1학년 말 학생운동에 발을 디뎠으므로 운동과 인연을 맺은 지도 20년이 훌쩍 넘었다. 학교를 정리하고 공장에 들어갔다가 쫓겨나기를 거듭한 끝에 87년 우연히 서울지역인쇄노조에 함께 하면서 80년대 말과 90년대 초반을 정말 열심히, 바쁘게 보냈다. 그땐 재는 게, 사리는 게 없었던 것 같다. 인쇄노조를 정리하고 1달 정도 지난 91년 7월, 구로에서 서울노동자회관이라는 노동단체를 만드는데 함께 했다. 90년대 초반을 망해가는 구로공단에서 고용투쟁을 지원하며 사회주의권이 무너지는 것을 봤고, 백선본에도 참여했으며 주변동료들이 썰물처럼 운동에서 빠져나가는 것도 목격했다. 그들이 떠난 자리를 몇 년 지키다가 94년 말 서울노동자회관의 문을 닫았다. 해산식도 거창(?)하게 해서 서울노동자회관 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힘든 기억 때문에 그 날은 많이도 울었다.

서노회를 해산하고 3개월이 지난, 95년 2월 한노정연 준비위에 참여하였고, 그후 10여년을 한노정연과 함께 했다. 그리고 얼마 전 한노정연이 해산총회를 했다. 두 곳의 단체에서 문을 열고 닫는 데 함께 한 것이다. 우연이었겠지만 인쇄노조에서 영세사업장 사업을 했다면, 구로는 중소사업장에 대한 경험의 장이었고, 한노정연에선 대공장 사업에의 참여 기회가 주어졌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다양하고 괜찮은 경험을 살려 운동에 이바지해야 할 텐데, 나이는 들어가고 체력은 떨어지고, 몸이 생각을 따르지 못한다.

2. 연구소 활동

연구소에서의 첫 사업은 1995년 2월 ‘현대중공업 신경영전략과 노동조합’이란 프로젝트에 보조연구원으로의 참여하는 것이었다. 연구소 창립을 95년 7월인가에 했으므로 창립 이전에 이미 연구소 이름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이다. 연구소 전신이던 서노정연준비모임 시절 각종 연구세미나를 통해, 당시 작업현장을 잠식하고 있던 신경영전략(당시에는 이 용어에 대한 반발도 심했음)에 대한 이론연구성과가 상당히 축적되어 있었고, 한노정연은 이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현장진단을 해 들어갔다. 그 후 기아, 대자노조 등에서도 신경영전략이란 분석틀을 갖고 현장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연구소는 노동현장과 호흡을 같이할 수 있었다.
그 후 96년인가 심포지엄에서 진보진영에선 거의 최초로 세계화, 노동유연화 등 자본의 움직임에 대해 이를 신자유주의적 공세라 규정하였다. 물론 이 때도 신자유주의란 용어에 대한 이의제기가 많았다. 그러나 이후 진보진영은 물론이고 보수진영까지도 이 용어를 수용하게 되었고, 연구소는 그 이론에 준거해 자본의 움직임과 노사관계를 분석하는 데 선도적 역할을 담당했다. 대략 98년까지가 연구소의 전성기였다고 생각한다.
98년 IMF 이후 노동진영에는 사업장 내부 구조조정, 민영화(사유화), 비정규직, 산별노조건설 등 너무 중요하고 결정적인 쟁점이 있었지만 선도적 이론연구는 놓쳤고 사안별, 사업장별 투쟁에 결합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그 후 연구소는 세미나팀 운영으로 중심축이 옮겨졌다고 본다. 어쩌면 95,96,97년에도 세미나는 계속 운영되고 있었기 때문에 99년 이후는 정세분석과, 노동현장에 대한 이론연구를 놓쳤다는 것이 맞을 것 같다.

3. 노동연구소로서의 딜레마

연구소 초기 현장연구를 하면서 좌파는, 한노정연은 현장연구를 할 때 다른 연구소와 어떻게 다를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크게 세 가지 범주를 생각하며 대안을 고민했던 것 같다. 하나는 프로젝트의 발주처인 노동조합이라는 틀 내에서의 제도개선에 초점을 맞춘 정책생산이었고, 둘째는 일상활동과 일상투쟁 강화를 위한 방안을 고민하는 것, 셋째는 매 사안을 자본주의와 연결시켜 그 본질을 폭로하는 것이었다. 당시는 너무 앞선 것이었을 수 있지만 일상활동에 대한 강조는 당연히 노동자의 문화나 의식, 가족과 지역사회에 대한 노동조합의 활동영역을 확장이라는 요구와 맞물렸고, 현 시점에서 판단해도 매우 절실하고 중요한 제기였다고 생각한다.
다른 연구소들이 제도적 장치 마련에 중점을 둔 연구를 하였다면 제도개선은 우리의 대안에 있어 한 부분일 뿐이었고, 오히려 연구소는 노동조합에 다기하고 복잡한 요구를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이러한 요구가 노동조합으로부터 점점 외면을 받게 되었다는 점이다. 자신들이 발주한 보고서조차 소화하는 노조 간부들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맞긴 맞는 주장이지만 이를 구체화하려면 너무 복잡하다든지, 현실성이 없다든지, 원칙적 주장만 하는 곳이라든지, 투쟁만 강조하는 곳이라든지, 어쨌든 연구소는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이미지로 찍히게 되었던 듯싶다. 물론 우리의 주장, 대안을 현실화시킬 구체적인 컨설팅이 부족했던 것이나 다른 원인도 중첩되었겠지만 노동조합이나 연맹이 안정된 구조로 변해가면 갈수록 노조에 요구하는 것이 많은 한노정연은 노동조합에게 부담스러운 곳이 되어 버렸고 관계는 점점 더 멀어지게 되었다. 이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면서 한노정연은 노동조합 간부와의 괴리만이 아니라, 현장과의 분리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과정에서 한노정연과 인연을 맺었던 다수의 노동연구자들도 다른 장으로 옮겨갔다고 본다.
이 기간 동안 물론 한노정연은 노동운동의 쟁점에 대해 자신이 제시한 입장에 걸맞는 세부안을 내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산별노조 건설, 사회개혁 투쟁 등등이 그것이다. 산별노조 건설과 관련해서는 대산별 건설이라는 올바르고 원칙적인 입장이 있었지만 이를 실현시킬 세부안을 제출하지 못함으로써 내부적으로도 그렇고, 운동적으로도 많은 혼란을 준 게 사실이다. 사회개혁투쟁과 관련해서도 비슷한 느낌이다. 좌파는 본질적으로 사회변혁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개혁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 단지 사회개혁투쟁이 임단투를 대신한 온건함으로 국민의 지지를 얻자는 취지에서 제안되었다는 불순한 의도가 있다는 의심은 지울 수 없다. 그러나 사회개혁투쟁에 대한 반대는 자칫 노동자를 임단투 위주로 가두게 되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노동운동을 전 계급의 요구실현이 아닌 노동자계급만의 이기적인 운동으로 만들 소지가 있기 때문에 올바른 대응이 필요했다. 이 쟁점에서도 연구소는 적절한 대응을 했다고 보지 않는다.
이는 IMF 이후 제기된 쟁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가장 아쉬운 점은 비정규직 문제에 미흡한 대응에 있다. 90년대 초중반 단사 차원에서 진행되던 신경영전략의 주요 내용이 노동유연화였고, 이미 현장에서는 대의원의 동의 하에 3D직무를 중심으로 비정규직이 현장을 잠식하고 있었다. 이처럼 단사에서 시도되었던 노동유연화를 법적 제도적 차원으로 정착시키려 했던 것이 김영삼 정부 하의 노동법개악이었고, 노동유연화는 IMF 경제위기국면에서 노동진영의 동의 하에 정착되었다. 노동유연화의 문제점, 비정규직 확대 위험에 대해 신경영전략을 연구하던 연구소는 일찍이 파악하고 있었지만 비정규직 문제 대응에 총력을 기울이지 못했다. IMF 이후 구조조정 대응 투쟁도 비슷한 혼란을 겪었다고 본다. 물론 10여년의 세월 동안 한노정연의 주류는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통해 상황을 돌파하려 했었지만 이 또한 유의미한 성과로 귀결된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잘못하거나 아쉬운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위에서 열거하지 않았지만 노동운동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고, 이는 자타가 공인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새로운 출발이 있기에 성과보다는 주로 한계를 생각해 보았다.
미흡함과 아쉬움을 뒤로 한 채 한노정연이 문을 닫는 데 함께했다. 이제 새로운 어떤 것을 시작한다면 좀더 섬세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큰 그림을 그리는 데 이바지하되, 큰 그림이 현실의 대중과 만날 수 있는 지점을 고민하고, 이를 구체화해야 할 것이다. 나 또한 그 그림 속에서 작은 실천을 해 들어가길 바란다.
많은 혼란을 지켜보면서도 한노정연을 떠나지 않고 높은 회비납부율(?)을 자랑하던 회원들이 고마울 뿐이다. 회원들은 연구소의 주춧돌이었고, 현장에서 미래를 독자 또한 연구소가 큰 힘이었다. 새로운 장에서 다시 만나기를 기대한다.(진보평론 편집위원)

2007-01-18 19:4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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