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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22 21:20:55
박성인
[안병진] 영화 '어떤 나라'와 '동막골'의 차이, <프레시안>2005.09.21.
영화 '어떤 나라'와 '동막골'의 차이
안병진의 'X파일 이야기'<4> 강경파들이 불러오는 위기

안병진 창원대 교수(국제관계학)
<프레시안>2005.09.21.

  영화적 상상력과 냉혹한 현실을 혼동하면 위험하다. 최근 크게 히트한 '동막골'은 영화적 상상력을 잘 표현한 작품이다. 반면에 평양 상류층의 두 소녀의 매스게임 참가기를 다룬 '어떤 나라'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동숭 아트 센터 상영중)는 냉혹한 현실의 일단을 잘 보여주고 있다. '어떤 나라'를 보고난 일부 평론가들은 과거 황석영 작가가 방북기에서 표현한 것처럼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런 점에서 많은 이들은 북한군을 순수한 청년으로 그리고 있는 '동막골'이나 천진난만한 평양 소녀를 보여주는 '어떤 나라'가 같은 시선의 영화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필자는 전혀 다른 인상을 받았다. 오히려 필자의 인상은 "그곳에는 다른 인류가 살고 있었네"라고 말하고 싶다. 북한에서 가장 지적이고 유복한 평양 상류층의 소녀가 장군님을 열렬히 연모하며 야만적인 매스게임에 기계처럼 동원되고, 혁명 배반자를 응징하는 만화를 즐겨 본다면 그 밖의 계층들은 더 이상 논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반면 통일에 대한 포스트모던한 남한 신세대의 관념을 영화화한 동막골은 현재 남과 북의 시간대가 얼마나 다른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북한은 이번 6자회담에서 '루비콘 강'을 건넜나?
  
  그런데 '어떤 나라'를 보고나서 기분이 우울해진 필자에게 추석 명절에 날아온 소식은 놀라운 것이었다. 그간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권을 둘러싸고 결렬까지 예견되던 제4차 6자회담이 극적으로 타결되었기 때문이다. 한겨레 신문은 19일자 온라인 속보 기사에서 향후 쉽지 않은 과제가 남아 있다는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김정일 위원장이) 위협과 자해의 벼랑끝외교에 마침표를 찍을 뜻을 공개적으로 천명한 셈"이라며 감격해 했다. 이 글은 또한 김정일 위원장이 "루비콘 강을 건너는 전략적 결단"을 내렸다고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물론 북미간의 공존을 선언한 이번 회담은 한반도 비핵화를 향한 의미 있는 진전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한겨레 신문의 지나치게 오버한 감격은 왠지 '동막골' 영화의 분위기를 연상시킨다. 기자의 희망과 달리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벼랑끝외교에 마침표를 찍으려면 현 지형 하에서는 결정적 전제가 필요하다. 그것은 북한에 대한 미국의 표현을 거꾸로 사용한다면, 미국으로부터 '철저하고 검증 가능한' 체제의 보장이다. 그런 점에서 북한의 경수로 요구는 그 자체의 경제적 의미뿐 아니라 미국의 의지를 시험하는 정치적인 리트머스 시험지인 셈이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북한은 경수로 건설이 핵포기보다 먼저임을 분명히 하여 루비콘 강을 아직은 완전히 건너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반면에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여전히 북한의 '선 핵 포기'를 전제로 하고 있음을 누차 강조했다. 단지 카트리나 재난, 이라크전의 수렁 등 더 중요한 쟁점에서의 난관으로 부시는 일시적 봉합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비록 절대 금기시했던 경수로를 협상안에 포함시키는 양보를 했지만 '적절한 시점'의 의미는 대단히 가변적이다. 최악의 경우는 핵이 아닌 인권의 진전을 '적절한 시점'의 리트머스 시험지로 삼을 수도 있다.
  
  이러한 난관을 돌파하는 유일한 방법은 잘 알려진 것처럼 행동 대 행동의 원칙이다. 즉 북한이 전면적 사찰을 수용하는 순간 미국도 동시에 경수로 등에 대한 협정 작업에 들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소위 '제3세계 불량국가'에 대한 미국의 뿌리 깊은 불신은 상상을 초월한다. 더구나 부시 행정부는, 상대적으로 온건파인 라이스나 강경파인 네오콘들 모두, 클린턴 행정부 말기의 행동 대 행동 원칙을 심하게 경멸해 온 것으로 유명하다. 비록 회담 말미에서 결렬의 비용을 고려하여 타협했지만 그들에게 경수로라는 당근은 아직도 유약하고 나이브한 리버럴들의 문제를 집약하는 상징과도 같다.
  
  미국의 매파는 늘 '완전한 굴복'을 원한다
  
  사실 행동 대 행동의 원칙은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미국이 쉽게 응해오지 않은, 많은 선례를 가지고 있다. 지금 우리의 관심사인 소위 '쿠바 미사일 위기'때 심지어 리버럴인 케네디 대통령으로부터도 이 원칙은 찬밥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그리고 당시 쿠바는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대한 창조적 해법을 가지고 미국을 압박하기는커녕 오히려 위기를 더 가속화시키고 말았다. 역사적 교훈이라는 점에서 이를 잠시 살펴보자.
  
  62년 10월 16일부터 극적으로 미사일 위기가 고조된 기간 동안 미국은 해상봉쇄라는 강압적 외교를 통해 소련의 굴복을 유도한 바 있다. 하지만 미국 행정부 인사들이 자인한 것처럼 '전쟁의 행위'(act of war)나 다를 바 없는 강경한 해상봉쇄에도 불구하고 쿠바섬에서는 중거리 미사일 두 기가 발사 가능한 상태로 전화될 정도로 소련과 쿠바는 미국과의 대결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다급해진 케네디 행정부는 향후 옵션을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우선 케네디 행정부는 3가지 옵션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첫째는 석유 등에까지 금지 품목을 확대하는 봉쇄 확장안이다. 둘째는 유엔을 통해 협상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공습과, 필요하다면 침공으로까지 이어지는 무력 해결안이다.
  
  이때 주목할 것은 러스크 국무장관과 스티븐슨 대사의 행동 대 행동 원칙 제안이었다. 러스크는 먼저 브라질을 매개로 한 비핵지대화 방안을 가지고 대타협을 이룰 복안을 제시했다. 왜냐하면 비핵지대화는 소련 측에서도 수년간 이야기해 온 사안이라 그들의 체면을 살려줄 수 있고, 유엔에서 미국이 정당성을 강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파인 국방부는 이러한 새로운 제안이 미사일 제거라는 당면의 목표로부터 관심을 분산시킨다는 명분을 들어 강력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군부의 본심은 회의에 참석한 테일러 합참의장도 언급했듯이 "파나마 (운하의) 문제와 혹시 남미에서의 대잠수함 작전상의 고려" 등 군사적인 것이었다 (May and Zelikow 19997, 456-457). 또한 러스크는 직접 카스트로에게 접근해 쿠바의 주권을 강조하며 강대국간 대결의 터전으로 삼는 소련과의 사이를 벌리는 이이제이 수법을 제안하기도 했다.
  
  스티븐슨 대사는 위에 언급한 비핵지대화 방안까지 포함해 행동 대 행동의 단계별 일괄 타결안을 강력히 주창했다. 그의 문제의식의 핵심은 일단 1단계에서 미사일뿐 아니라 모든 무기 반입이나 기지 건설의 중단에 상응하는 조치로 미국은 동시에 봉쇄를 잠시 해제하는 것이다. 이는 문제 해결보다는 일단 위기를 진정시키는 동결(standstill)에 그 목적이 있다. 2단계에서는 대략 2주간의 보다 장기적 협상 과정으로 미사일의 철수와 기지의 해체에 상응하는 조치로 쿠바의 안전 보장과 터키나 이태리 미국 기지의 상응하는 해체를 시도한다. 러스크가 말한 비핵지대화도 이 단계에 포함될 수 있다. 스티븐슨은 강경파들을 고려해서인지 쿠바가 이후 남미에서 전복이나 침투 행위를 못하도록 하는 것도 패키지에 포함될 수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러스크나 스티븐슨의 창조적이고 유연한 행동 대 행동 원칙 제안에도 불구하고 당시 케네디와 행정부 다수는 무력안에 더 기울고 있었다. 특히 매파인 헨리 잭슨 의원이 추천한 맥콘 CIA 국장 등은 일괄타결안에 반발하며 봉쇄를 해제하기 전에 미사일이 먼저 제거돼야 함을 강력하게 강조했다. 그는 한번 봉쇄가 해제되고 나면 다시 가동하기도 어렵고, 또 해제된 속에서 과연 소련이 스스로 미사일을 제거할 것인지 의구심을 제기했다. 소련과 쿠바의 완전 굴복을 먼저 원했던 것이다. 흔히 위기 해소 후에 일관된 평화주의자로 칭송받아 온 케네디도 같은 의문을 제기하며 맥콘의 손을 들어주었다. 심지어 맥콘은 미국의 전략 목표를 핵 제거가 아니라 정권교체로 변경할 것까지 제안했다.
  
  물론 케네디는 최종 순간 강경파들의 분위기에서 벗어나 소련과의 (쿠바는 배제하고) 타협의 길을 다시 모색하면서 극적으로 위기를 돌파한다. 하지만 위기 내내 케네디가 보여준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대한 혐오는 냉전 시기 미국의 리버럴들이 갖고 있던 강경한 관점을 잘 보여준다.
  
  '벼랑끝 전술'은 과연 현명한 것인가?
  
  쿠바의 경우 또한 행동 대 행동의 창조적 해법 대신 극단적 벼랑끝 전술과 비현실적인 요구로 점철했다. 당시 카스트로는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나름대로 행동 대 행동의 해법을 제시하는 유엔의 유 탕트 사무총장 대행을 '제국주의의 하수인'으로 몰아붙이고, 자신 앞에는 오직 전쟁이냐 항복이냐의 극단적인 선택만이 남은 것으로 오판했다. 그러므로 그는 그렇지 않아도 인화물질로 가득찬 위기 말미에 미국 정찰기에 대해 격추 명령을 내렸다.
  
  그의 신중하지 않은 행보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갑자기 27일 새벽, 그 유명한 '선제공격 재촉 편지'를 후르시초프에게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국제법과 도덕을 어기며 쿠바를 침공하는 야만적 행동을 정말로 취한다면, 그것은 정당방어를 통해 영원히 그러한 위험을 뿌리 뽑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 해결책이 아무리 가혹하고 끔찍할지라도 다른 방법이 없다"고 호소했다.(개디스 2002,466).
  
  그 뒤 10월 위기를 회고하는 하바나 회의에서 그는 자신이 진정으로 선제공격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후르시초프에게 미국과 맞설 전투성을 심어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Blight et all 2002, 109). 하지만 비록 그의 주장이 맞을지라도 당시 후르시초프로서는 그의 편지가 선제공격을 주장하는 지극히 모험주의적인 언사로 읽힐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카스트로는 그 당시 편지 작성 중에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선제공격 주장의 여부를 묻는 소련 대사 알렉시이프에게 "난 그걸 직접적으로 말하고 싶지는 않소"라고 반쯤 긍정하고 있다 (Fursenko and Naftali 1997, 273).
  
  현 부시 대통령은 자신의 선제공격 독트린이 쿠바미사일 위기 시절 케네디의 선제 공격 검토처럼 선례를 가진 것이라고 변명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와 네오콘들의 광기어린 레토릭은 자유주의자인 케네디보다는 오히려 그가 증오하는 적인 카스트로의 어법을 더욱 많이 닮아 있다.
  
  카스트로의 또 한 가지 어리석음은 위기 과정에서의 비현실적인 요구들이다. 그는 자신을 협상 테이블에서 배제하고 불가침 선언이라는 공허한 구두선언 하나로 물러서버린 소련에 대해 강한 배신감을 느꼈다. 물론 수면 아래에서의 터키 거래를 알았다면 그들의 분노는 더욱 컸을 것이다(소련이 쿠바에서 미사일을 철수하는 대가로 미국은 터키에서 미사일을 철수하는 비밀스러운 빅딜을 말한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주권이 미소 강대국들의 체스 게임으로 전락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터키 거래를 까맣게 모르는 상황에서 아무런 사전 통보도 못 받은 채 AP 통신을 통해 자신의 운명을 알게 된 카스트로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았다. 그는 비밀리에 타협을 해버린 후르시초프를 가리켜 "개**, 이 나쁜 놈, 개자식" 등의 욕설을 한참동안 퍼부었다. 카스트로는 그만큼이나 분노한 쿠바의 대학생들과 함께 "니키타, 이 동성애주의자야, 준 것은 다시 가져가는 것이 아닌 법이야"라고 외치며 거리를 행진하기 시작했다(Blight and Brenner 2002, 25).
  
  자신의 운명이 강대국의 손아귀에서 결정됨에 당혹감에 빠진 카스트로는 뒤늦게 5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그것은 첫째, 미국의 경제 봉쇄의 해제, 둘째, 모든 전복적인 행위의 중단, 셋째, 미국 기지로부터의 모든 '해적질 같은 공격'(piratical attacks)의 중단, 넷째, 쿠바 영공과 해상권의 존중, 마지막으로 관타나모 항의 해군 기지의 반환이었다 (Blight et all 2002, 23).
  
  하지만 이미 타결이 거의 성사된 상황에서 미국은 물론이고 누구도 그의 조건에 귀 기울이는 이는 없었다. 더구나 관타나모 기지 반환 요구는 주권국가로서 규범적으로는 타당하지만, 스티븐슨 대사가 그 대안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행정부에서 철저히 왕따 당할 정도로 당시 지형 하에서는 비현실적인 요구조건이었다. 결국 쿠바는 위기 해소 과정에서 미소 양국으로부터 철저히 왕따 당하고 오늘날 여전히 국제적 미아 신세로 남아 있다. 그리고 공산당 중앙위원인 조지 리스켓(Jorge Risquet)이 한탄한 것처럼 카스트로가 제안한 "그 5가지 조건이 향후 27년간 아직도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ibid., 24)
  
  강경파들의 불러오는 위기를 무엇으로 제어할 수 있을까?
  
  위에서 필자는 미국의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대한 뿌리 깊은 거부감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카스트로의 어리석은 대응이 미국 내 행동 대 행동을 선호하는 온건파를 강화하기보다는 고립시키고 어떻게 위기를 악화시켰는지도 지적했다.
  
  지금의 부시 행정부는 이념적으로 과거 케네디 행정부의 맥콘 CIA 국장과 같은 강경파들에 해당한다. 아직까지 이들이 이번 회담에서의 불가침 보장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대한 정권교체 욕망을 완전히 포기했다는 증거는 없다(사실 그들은 침공보다는 붕괴작전을 선호한다). 그리고 김정일 위원장은 이번 경수로 선결조건 요구에서 보이듯이 아직도 카스트로만큼이나 전투적이다.
  
  그런 점에서 향후 북미관계는 현 지형 하에서는 이번 제4차 6자회담의 획기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산 넘어 산일 가능성이 높다. 그 과정에서 부단히 붕괴론의 유혹에 끌리는 미국의 다양한 정권교체 전략이 나타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위기가 재연된다면 비록 카스트로의 극단적 선제 공격론은 아니지만 임계점 가까이 접근하는 북한의 또 다른 벼랑끝 외교 전술은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양자의 극단적 태도를 제어하고 행동 대 행동의 원칙을 강고하고 창조적인 국제적 합의안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남한의 지혜로운 대북정책이 요구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나라'에서 '동막골'로의 이행, 선군정치에서 영구평화론으로의 이행은 현재는 불가능해보이지만, 때로는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한반도의 역동성을 고려한다면 한번 꿈꿀만하지 않을까?



   [정웅재] 이종석 NSC차장 "HEU문제, 한국정부의 복안 있다", <민중의 소리>2005.09.29.

박성인
2005/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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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인
2005/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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