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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
2006-01-03 15:38:35
leeus
소백산
1.

자고로 낮건 높건 사시사철 어느 때건
산에 갈 땐 준비가 철저해야 되고,
혼자 가는 게 아니면 서로들 점검도 필요하고,
의식주 적당히 빵빵해야 되고....

2.

"연말연초 산에 가야지" 하고,
누구랑,
어떻게,
어디로,
어쩌고 짬나는 대로 꼽고 있었는데,
하루는,
없으면 안되는 인물 중 하나인,
쥐랄뇬이,
"언니 연말에 산에 안갈래?"
촐랑, 묻길래,
응? 갈껀데...
그래, 누구랑 가냐?
하니까, "지영언니랑" 한다.
좋다. 같이 가자..
"어디로 가지?"
나는 지리산 가고 싶은데...
"지리산 안돼... 시러..." 어쩌고...
그럼 소백산으로나 가든지...
해서 소백산으로 정해졌다.

3.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자,
이렇게 저렇게 쥐랄뇬이,
누구도 또 누구도 꼽더니만,
당일 최종 다섯인가? 했더니, 막판에 옥순이랄뇬이,
누구랑 같이 오겠다 한다.
자리가 없을껀디~ 허니, 자리가 있다는,
우리의 당찬 옥순이랄뇬!
그래서 결국 홍5청1이 1월1일 1시를 넘겨서 서울을 떴다.

4.

소백산은 지금까지 한 너댓번쯤 간 것 같다.
무난하고 넉넉한, 그러나 좀 지루한 산이라고 생각했다.
하긴 서울근교나 작달막한 산이 아니면
웬만한 산은 거의 다 지루한 면은 있는 것 같다.
지리산은 말할 것도 없고, 월악산도 조금 지루했던 기억이다.
한번은 당찬길에서 소백산 갔다가
막걸리에 취해 중간에서 잠자고 있는 동안
일행들이 정상까지 갔다가 돌아와서 델고 내려온 적도 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기 언젠가는,
아지랭이 내리는 게 보일동 말동 하는 날이었는데,
소백산에서,
지리산에서나 봄직한 구름과 능선들을
맑은 햇빛과 함께 훤히 보았던 기억도 있다.
올 여름에는 친구들따라 소백산 자락만 밟다말고 온 적도 있다.
그런데 이번 소백산은 힘들어서 죽을 뻔했다.

5.

서울서 소백산까지 별로 멀지는 않았다.
중부고속도로 타고 나가다가 호법인가?에서 영동으로 갈아타고
얼마 안가서 그게 어디더라? 거기에서 중앙고속도로로 한시간 남짓
해서 총 세시간도 안걸리는 와중에 도착한다.
그래서, 세벽 3시 30분부터, 풍기 희방사 매표소를 통해 가기로 길을
잡았다.
처음에 얼마 정도는 김빠지는 포장도로.
그 뒤로는 완전히 눈길, 눈밭이었다.
밤중에 별 뜬 날 눈길 산행은 이번이 두번째다.
한번은 태백산, 광년이를 알게 된 산행이었다.
광년이랄년은 무지하게 바쁜지 뭣이 너무 속상한지,
아무튼 요새 통 소식이 없는데,
그 또한 훌륭한 인물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다.
당찬길방(아직 여기로 다 퍼올려오지 못한 당찬길방)에는 그때 그 태백산행기도 올라가 있는데...
(광년이는 이 싸인을 보면 얼렁 연락좀 했으면...)
태백산에서는 전혀 힘들지 않았건만...
아무튼 어두컴컴하고 히여멀건한 눈길을,
김이 서리는 바람에 안경도 첨서부터 빼고
걷기 시작했다.
얼마 못가서부터 아니,
요 인물들이,
나는 듯이 가는 것이다.
딴에는 나도 열심히 걸었지만,
나도 이젠 맛이 갔구나...
못 쫓아 가겠다....
나는 뒤쳐지기를 거듭하기를 여러 차례...
잘 생각도 안난다...
다른 때랑 달리,
이번에는 산에서 입맛도 없고,
여름이건 겨울이건 주로 마시던 물도 두어모금밖에는 안마시면서,
하여튼 40도짜리 백로주도 맛있기는 했지만 별 감흥이 없는 채,
들이키고,
아무튼 더 자세한 것은 옥순이랄뇬이 올렸
는데,
생전 잘 넘어지지도 않았었건만,
이번에는 서너차례 눈밭에서 미끄러져 넘어지기까지...
참 나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구나...
그러나, 지영이랄뇬도 쌩~쌩 달려,
청1이뇸도 지친기색도 없이 쌩~쌩~ 달려,
홍1 홍2 홍3 홍4가 모두 하염없이 야속하더라.
같이 가~~~
쉬자~~~
이게 어느적 뉘기 소리여.
소백산에서의 내 소리여.

6.

그래도 눈꽃이 버언하게 보인다.
쥑여준다.
이번 산행에서 백미는 완전히 눈으로 뒤덮여서
너나할 것 없이 나무며 풀들이 모두 눈옷을 입고
천연덕스레 다른 모습으로 나서 있던 그 모습이다.
봄여름가을겨울 사시사철 다른 모습이 그저 그 모습이고,
자태가 곱고 의연하다.
잠시간의 둘러봄이 그저 아쉽지만,
어여 길을 재촉해야지...
나는 나, 내길을 가고,
너희는 여기 남아서 여기 하늘과 여기 새들과
여기 냄새로 살고지고...

7.

상념도 금방 비척거리는 발걸음 속으로 녹아들어가더니,
결국에는 첫번째 봉우리, 천머시깽이(연화봉?) 못미쳐서
일행을 놓쳐버렸다.
눈보라 휘날리는 어스므리한 새벽녘에 그 봉우리에서
우로 꺾어져야 되는 비로봉길을 놓치고,
천둥 쪽으로 내려서버린 것이다.
500미터는 족히 내려가다보니 아무래도 이상하여,
올라오고 있는 사람들에게 물은 즉,
비로봉요~?
오신 길로 도로 올라가서 봉우리가 나오면
왼쪽으로 꺾어지세요~
쯧쯧...
아이구 죽겄고만 이 길을 도로 올라가야 하나??
이걸 못하겠나, 하면서 다시 길을 되잡으니,
배로 더 힘들구나...
다시 봉우리에 다다르니 그제서야 이정표들이 눈에 들어온다.
내가 내려갔던 길은 천둥 길,
우측으로 꺾어돌아가는 길은 비로봉길,
좌측으로 꺾어돌아가는 길은 국망봉길,
딱 세가닥으로 돼 있는 길에,
이정표까지 있었건만, 그걸 못보고...

8.

열심히 내달려(마음이었지, 실지로는 거의 터덜터덜 걸어서)
비로봉으로 쫓아가다 보니,
두갈래 길이 나오는데,
연신 눈보라가 치는 황량하게 뻥 뚫리다시피 낮은 나무들만 있는
별시리 스산한 벌판 같은 데에 나 있던 그 길은
두어걸음씩 가서 한 계단 올라가는 식의,
폭 넓은 낮은 계단으로 돼 있었고,
딱 한 사람이 내 뒤로 걸어오다가 스쳐지나가는 것을,
이리 가는 게 비로봉 길이요?
하니,
이리 가도 되고 저리 가도 되는데,
이리 가면 곧장 비로봉으로 가고,
저리 둘러가면 대피소가 있고 이길과 만납니다. 한다.
그렇다면? 어찌끄나~~
요 인물들이 혹시 대피소에 들어가서, 지둘릴지도 모른다 싶어서,
도로 되짚어서 대피소로 가보니,
산장도 아니고, 변소도 없고, 그냥 아무 것도 없고,
잠깐 들른 사람들이 한 사오십여명 북적대고 있다.
그저 덩그마니 두칸짜리 빈 건물 식으로 짜놓은 영락 대피소다.
이리 둘어보고, 저리 둘러보고,
나와서 사방으로 다시 쳐다보고,
다시 들어가서 또 기웃거려 보았지만,
요 인물들이 한 톨도 안보이더라.
그래서 터덜거리면서 다시 비로봉 곧장 길로 들어가서,
열심히 걸으며 생각하니, 비로봉에서 삼머시깽이 쪽으로
내려가기로 하였으니, 천천히 가는 게 낫겠다고 가닥을 잡고,
천천히 걸었다.

9.

얼마 뒤에 도착한 비로봉.
정상에서는 항상 정상주를 마셨는데,
오늘은 일행도 잃어버리고,
잠깐 숨돌린 뒤 바로 길을 서둘러 내려가다보니,
산에서 거의 뇨기를 느낀 적이 없는데,
물도 거의 안마셨지만 땀도 많이 났는데,
어째 오줌이 다 마려운고.....
에라 모르겠다.
눈바람 속에서 그냥 볼일을 봐버리니,
시원하기가 이루말할 수가 없구나.ㅎㅎㅎ
그러고 길을 잡아 좀 더 내려가니,
잘 먹었습니다... 또 좀 있다가 잘 먹었습니단가?
고맙습니다라던가... 하나씩 두엇씩 인사하는 소리가 나서,
혹시 이 인물들인가? 싶었는데, 소리가 탁 들어오지를 않고,
쪼매 낯설어서 그냥 가려다 보니,
저만치 웬 인물들이 서 있는데,
이짝으로 서 있던 홍3이가, 알은 채를 한다.
어, 나여....
하이고,
못만날줄 알았구만 보니까 너무 반갑더라.
뭐시 어쪄?
과메기에 소주라고?
아니 이 인물들이.....
"그 눈보라 속에서 이십분이나 덜덜 떨면서 기다렸단 말이야..."
"그러다 과메기 소리에 정신 팔았지만...." 어쩌구...
ㅎㅎㅎㅎㅎ
어쨌든 그때부터는 그냥 정신없이, 겨우겨우,
아무튼 죽으면 안됐어서 그냥 살았지, 원....
그러나 산에도 계속 다녀야 되고...
난망하더라.

10.

가도 가도 산길이더니, 어느새 날이 부옇게 밝았고,
드디어 동네 가까이 왔나보다...
생전 산에 가서 반갑지 않았던 포장된 길도 그나마 반가웠고,
그 지겨운 약 2키로쯤이나 될 것같은 길을 내려오니,
운치라고는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반가운 집이 나온다.
막걸리와 생두부로 요기를 하고,
얼굴이 추위와 막걸리 한잔에 불콰~해지고...
신발끈을 풀고 두겹으로 신었던 양말을 한꺼풀 벗겨내니
그제사 안심이 좀 된다....
소백산 검은콩 막걸리 맛에 폭 빠진 인물들....

11.

아니, 이번 산행은 왜 이렇게 힘들었는가?
나 진짜 다 됐나?
11월에 관악산도 갔다 왔건만...
다 된 것도 있지만,
준비 부족이 크지 않나....
우선,
눈덮인 산에 갈 땐 미리 눈길에 앞서 아이젠을 장착하고 출발해야
되고.
또, 밤길 산행에서는, 랜턴에 건전지를 잘 준비해야 되고,
또, 안경 관리도 잘 할 수 있게 준비하고,
또, 무엇보다도 평상시에 몸 관리를 잘 해야만 한다...
별 준비도 아닌데,
이번에 되게 당했다.
나로서는 1998년 이후로 왕 당했다.
그간 한 이삼년은, 큰 산을 건성건성 다닌 탓이려니 한다.

12.

하나 더 꼭 써붙여 널리 알려야만 하는 일이 있다.
쥐랄년이 요새 소화안된다고 소화제를 하루에 10알씩을 먹는다는데,
그게 말이 되는 일이냐고?
어찌고 저찌고.....
신경 정신과 치료라도 받아야 되는 게 아니냐,
대체 소화제를 하루에 열개를 먹는 뇬이 어딨냐,....
그러니 요 인물이,
"좋아, 그러면 나는 소화제를 안먹을테니까 언니는 술을 먹지마..."
이런 망할...
안돼. 차원이 전혀 다른 문제야.
일단 소화제를 먹지 말고 그냥 소화시켜!

13.

산에서 쫄쫄 굶는 바람에 남은 회비를,
알뜰한 옥순이랄뇬이 차곡차곡 챙겨서,
서울와서 뒤풀이는 1차를 아구찜/복매운탕, 소주, 볶음밥으로 맛있게,
2차는 닭고기넣은 중국호떡 같은 이상한 안주에 맥주 한잔으로,
이번에 만난 금강산씨 반가웠어요...
제가 "원래 말투가 그러세요?"라고 물어봐서 미안해요...
대신에 복 많이 많이 받으세요~~~.
그리고, 모두모두 새해 복 많이 많이 받아야 써!

끝.


심장으로 느끼는 시간  



   소백산 3부

고양이
2006/01/06

   맥주 마시고 다시 소백산 2부

고양이
2006/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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