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이은숙
◎ 작성일:2000.07.30(일)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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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이 긴요한 이유(3)
노동전선 1998년 8월호 '노동과 경제' 제3회
1998.7.28
정부·자본의 신자유주의적인 구조조정이 본격적으로 실행되면서 날이 갈수록 각 현장에서는 대응방안을 찾기 어려워지고 있다.
정부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전 산업에 걸쳐 전개되고 있다. 일반 사기업뿐만 아니라 공기업,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대기업, 제조업뿐만 아니라 서비스업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사정권에서 벗어나 있는 곳은 없다. 한마디로 말해서 사상초유의 자본합리화가 IMF 관리체제하에서 진행 중이다. 문제는 지금 진행중인 구조조정이 소위 신자유주의적인 것이라는 데 있다. 거의 무조건적으로 자본의 '경쟁력'과 '효율성'을 위주로 자본이 제 살 궁리를 하는 이 와중에서 노동자들이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아마도 이러한 자본의 한바탕 굿판이 마무리가 되면 거리로 밀려났던 노동자들 중에 '경쟁력 있는' 노동자들이 '자본의 필요'에 따라 하나둘씩 공장이나 사업장으로 복귀하게 될 것이다. 그때가 올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온다면 그렇게 될 것인 바, 노동조합은 무력해져 있거나 사라져 있거나 자본의 오른팔이 되어 있거나 셋 중 하나인 곳이 다반사가 될 것이고, 만신창이가 되어 일자리를 갈구하던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조직이 그와 같이 힘 없어져 있는 상태에서 전보다 훨씬 더 목소리를 낮춘 채 일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세계자본주의의 불안한 '환경' 때문에 언제 다시 일자리를 잃을 지 알 수 없는 매일을 조마조마하게 보내야 할 것이다.
현대자동차에서 극명하게 보여지고 있듯이, 회사측이 일방적으로 대량감원 계획을 발표하고 실행에 옮기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아무리 회사측 계획을 거부하고 반대하면서 투쟁을 해도 해고통지서가 발부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에서 그래도 내로라하는 노동조합이고, 더욱이 그동안 대응해오는 과정에서 '투쟁만이 능사가 아니다' 라고 보면서 꾸준히 '대화'와 '합리적인' 정책을 제시하면서 대응해왔지만 회사측은 계획대로 밀고 나갔다. 급기야 고공투쟁을 벌이게 되고 '투쟁이 능사'가 돼버린 실정이다. 그러나 길은 보이지 않는다. 회사측이 '회사가 살려면 어쩔 수 없다'고 버티기 때문이다.
투쟁은 때를 잘 맞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무엇을 확보하기 위해 투쟁하는지가 분명해야 한다. 회사측이 정리해고 계획을 슬그머니 흘리고 있었을 때, 아니 그 이전부터, 이제 증명이 되고 있지만 휴지조각이 될 '감원시 노조와 사전에 합의'한다는 내용의 '고용안정 협정서'를 주고받는 대신에 IMF 이전 가동률 수준에서 조합원 평균 노동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키고, 임금수준은 그전과 동일하게 유지되는 방향에서의 투쟁이 조직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비단 현대자동차에서만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1997년 임단협투쟁에서 민주노총 산하의 임단투 사업장 중 제일 많은 노조들이 '고용안정'과 관련된 내용을 요구했는데, 대부분이 '고용안정협정'이라는 방식으로 제기하였다. 전체의 18.8%인 175개 노조(제조업의 75개 사업장, 비제조업의 100개 노조)가 '고용안정' 조항을 두자고 요구했다. 그 중 165개노조가 '정리해고시 노조와 합의'를 요구했고, 43개 노조가 '고용안정위원회 설치'를 요구했었다(주1) 그러나 이러한 요구들은 자본측이 받아들인 곳도 적었지만, 설사 받아들였다고 하더라도 지금 공허한 메아리만 남아 있다.
무엇이 공염불이고 무엇이 공염불이 아닌 것인지 다시한번 직시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더더욱 그러하지만 그때 이미 '노동시간의 단축과 생활임금 쟁취를 통한 일자리 창출'이라는 요구투쟁이 바로 고용안정투쟁의 핵심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전국적인 투쟁전선도 사라져 있는 상황에서 개별 사업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직문제에 대한 대응방안은 그나마 더욱 협소해져 있다. 퇴출 금융기관 노동자들, 민영화/합리화 대상 공기업 노동자들, 퇴출대상 사기업 노동자들, 일부 재벌기업 노동자들은 직격탄을 맞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단협을 하고 있는 곳도 거의 없고, 완전히 아수라장이다.
7월초 정부와 자본측이 가졌다는 '정책간담회'에서 자본측은, 기업구조조정에서 '임금을 삭감하면서 가급적 정리해고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고 한다. 구조조정에 따른 실업문제가 '심각'해서 사회불안요소가 된다며 그들이 내놓고 있는 대안 역시 '노동시간 단축'밖에 없는 모양이다. 그러나 '임금 삭감'이라니? 노동자들의 노동시간 단축요구가 나올 때마다 들고 나오는 '임금삭감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평소의 '자본의 지론' 그대로 아닌가? 그것은 노동시간 단축의 비용을 그대로 노동자들보고 부담하라는 자본의 탐욕에 찬 요구이다.
더욱이 시절이 지금보다 좋다고 하더라도 "단축되는 시간만큼 임금을 삭감해야 한다는 자본측 주장은 총노동의 입장에서 보면 노동시간 단축이 아니다. 왜냐 하면, 그것은 똑같은 길이의 총노동시간과 똑같은 임금총액을 가지고 더 많은 노동자를 사용하는 데 불과하기 때문에, 사회적 부의 재분배는커녕 '고용·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 … 자본의 주장대로 '임금삭감이 전제된 노동시간 단축'이 이루어지면, 노동자는 부족한 소득을 충당하기 위해 다른 일자리를 또 구해야만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실상 전체 노동자가 함께 일하기 위해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진다. 즉 그 사회의 생산력 수준에 의한 총노동시간은 정해져 있는 상태에서 한 사람이 두 세 개 직업을 가지고 일하게 되면 그만큼 다른 사람이 일할 여지가 없어질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실질노동시간은 오히려 더 길어질 수 있다. 왜냐하면 노동조건이 악화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경우,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취업노동자수 증대 효과는 전혀 없어질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전체 노동자의 노동조건은 하락하고, 노동시장은 노동자끼리 싸움을 벌이는 구직경쟁의 도가니가 되어버릴 것이다. 사태가 그렇게 되는 것은 요컨대 자본측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효과를 거두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 지금 자신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상대적 과잉인구의 폭력적 양산). 둘. '노동자간 구직경쟁으로 인한 임금인하 효과와 인건비 절감'. 그러므로 만일 임금삭감과 잔업시간유지를 인정하면서 노동시간을 단축한다면 그 실효성은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한다. 노동시간의 단축은 법정 노동시간의 획기적 단축과 잔업금지 조치를 통하여 이루어져야 하고, 임금삭감이 있어서는 안된다."(주2)
'법정노동시간의 획기적 단축과 생활임금 보장' 요구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방향을 바꾸라는 요구이다. 즉 노동자의 일자리를 기존대로 보장하면서 임금을 유지 혹은 인상시키라는 요구이기 때문에 그로 인해 추가되는 사회적인 비용을 국가가 담보하면서 구조조정을 하든지 어쩌든지 하라는 요구이다. 국가가 자본들로 하여금 기금을 내게 해서 조성하든지 아니면 불로소득세를 대폭 증액하여 조성하든지(애꿎은 공무원 월급을 깎아서 마련한다거나 혹은 서민에게 전가시키는 징세방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전체 노동자의 일할 권리와 생활임금을 보장하면서 구조조정을 하든지 하라는 것이다.
한편, "진정한 의미에서 노동시간 단축은 노동생산성과 노동강도가 불변인 상태에서 일어나야 한다. 그것은 모든 계급·계층으로 노동을 보편화시킨다. 이때 노동시간 단축이 의미하는 것은 바로 잉여노동시간의 단축이다. …… 그러나 자본의 논리에서 보면 잉여노동시간의 단축은 자본가가 취득할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 그렇기 때문에 자본은 이러한 의미의 노동시간 단축, 즉 노동생산성과 노동강도의 증대강화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거부하는 것이다."(주3) 그리고 또한 '노동시간 단축시 임금 삭감'을 주장하는 것이다.
" … 전체 사회적으로 보면, 노동시간의 연장과 노동강도의 강화, 생산성 증대는 '타인의 노동으로 살아가는 특수한 계층'을 구조화시키고 일정수준까지 확대시키는 반면, '정상적인 노동강도'와 '정상적인 노동생산성' 하에서 노동시간의 단축은 '노동의 보편화'를 추구한다. 노동시간의 단축은, 수많은 경우의 수가 있지만, 그것이 노동강도의 강화와 노동생산성의 증대를 통하여 만회시켜지는 경우 '노동의 보편화'가 아니라 '임노동의 유지 및 고착화'이며, 노동자는 강화된 노동에 함몰되고 잉여가치와 노동력 가치의 상대적 격차는 계속 벌어지며, 사회의 사용가치의 양이 많아짐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노동자의 임금은 점점 작아져 노동자계급의 상대적 궁핍화가 심화된다. 이러한 과정은 전체 사회적으로 보면 사회적으로 소비되어야 할 사용가치의 절대적·상대적 과잉, 자본의 과잉축적으로 귀결되고 궁극에는 공황으로 나타나게 된다. … 노동시간 단축 요구에 대하여 자본측이 임금삭감을 주장하는 것은 가장 원초적인 자본의 반발이다. 즉 노동시간의 단축은 잉여노동시간의 감소로 인하여 명백하게 잉여가치의 축소를 가져올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필요노동시간(노동력 가치)을 폭력적으로 줄여 잉여가치를 보전할 목적으로 노동력 재생산비인 임금을 삭감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자본의 입장에서 가장 '합리적'으로 임금을 삭감시키는 방법은 생산성 증대와 노동강도 강화를 통한 것이지만, 그것이 작동되기 어려운 과잉축적공황의 시기에 자본은 노동자에게 급기야 억지를 쓰게 된다. 명목임금조차 삭감하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더욱이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할 때 자본은 더욱 심하게 임금을 삭감해야 한다고 반발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눈에 보이는 자본의 반발은 더 교묘한 자본의 의도를 은폐시키는 역할도 수행할 수 있다. 그것은, 노동강도의 강화와 생산성 증대를 통해 잉여가치를 보전하고 확대하려는 그들의 프로그램이 동시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노동시간 단축에서 임금삭감 주장을 펴다가 그것이 노동자계급의 힘에 밀려 불가능해지는 시점에서 그러한 자본의 기도는 노골적으로 전개될 것이다."(주4)
어쨌거나, '법정 노동시간의 획기적 단축'과 '생활임금 보장' 요구는 불가분의 관계이며, 현시기의 대량실직과 실업·고용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동시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과제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개별사업장 차원에서, 혹은 산별 연맹 차원에서, 혹은 전국 중앙조직 차원에서 '교섭'을 통해, '협정'을 맺어서, 이루어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일괄적으로 현시기의 법정 노동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1997년 기준 초과노동시간을 포함하여 실질노동시간이 약 48시간에 달하므로, 적어도 9시간 이상(주5)하고, 생활임금을 보장(1997년 현재로 도시근로자의 근로소득 평균 25% 인상(주6)하는 국가의 법적 조치가 필요한 것이다. 요컨대, 본질적 맥락에서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의 단축' '생활임금을 보장하는 노동시간 단축'이란, 엄밀하게 말하면 바로 잉여노동시간의 단축을 의미하며, 그것은 즉각 자본의 이윤(잉여가치) 몫의 축소를 의미하게 된다. 그러므로, 자본이 그러한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것을 '자발적으로' 수용하기는 전혀 기대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노동시간 단축운동은 '국가적 수준'의 운동이기도 하다. 이러한 수준의 법정노동시간 단축 조치는 현시기 우리나라의 실업문제 해결을 위해, 그리고 불안정성의 극을 달리고 있는 세계자본주의의 현실에 맞서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서 대단히 긴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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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주
1) 이와 같은 개별사업장에서의 '고용안정' 요구가 내포하고 있는 함정에 대해서는, 이은숙, [97임단투는 무엇을 보여주었는가], {현장에서 미래를}, 1997년 9월호, pp. 74-77, 관련된 대응방안에 대해서는 pp. 80-84를 참조할 것.
2)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노동정책연구팀, {경제위기와 고용·실업}, 도서출판 현장에서 미래를, 1998.7., pp.169-170.
3) 위의 책, p. 161.
4) 위의 책, pp. 167-168.
5) 이 계산에 대해서는,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노동정책연구팀, 위의 책, pp. 170-175를 참조할 것.
6) 이에 대해서는 위의 책, pp.180-184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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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8/ '노동과 경제' 제3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