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이은숙
◎ 작성일:2000.07.31(월)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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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위기'의 구조적 배경과 의미
동덕여대학보 원고(1998.9.3)
현시기 한국경제는 외환(달러)부족사태를 축으로 하여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 금융(자본)시장의 극도의 경색과 주가 폭락, 그리고 원화가치 대폭락이 지난 10월부터 불과 한 달 사이에 급속도로 전개되면서 12월3일에는 급기야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끌어들이는 데까지 이르게 되었다. IMF의 구제금융은 경제의 '신탁통치'라고 이야기되는 것처럼 그 지원조건이 한국경제 전체의 판을 재구성하고 재편하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 이러한 현재의 상황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모든 경제주체의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그것은 당장 현실적인 삶의 조건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점 때문만이 아니라, 이후의 한국경제, 나아가서는 한국 사회의 총체적인 사회관계의 변화와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먼저 현재의 한국경제 파탄상황이 일국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1973년 세계적인 대불황을 겪으면서 제2차 대전후 약 25년에 걸친 장기적 호황이 막을 내린 세계자본주의는 70년대의 나머지 시기를 거치면서 1980년대부터 '케인즈주의의 파산에 대한 새로운 자본축적운동 전략'으로서 '신보수주의/신자유주의'적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미국과 영국을 축으로 하여 1980년대를 풍미했던 신보수주의 프로젝트는 그러나 8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이미 그 한계를 노정시켰다. 이후 몇 차례의 작은 호황은 있었지만 2차대전후의 엄청난 생산력발전(그 주된 동인은 생산수단의 엄청난 양적 증대와 질적 변화에 따른 노동생산성의 폭증)에 비하면 대단히 미미한 것이다. 1970년대 위기(공황)는 엄청난 생산이 실현될 수 있는 시장의 더 이상의 팽창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짐으로써 발생한 '과잉생산/과잉축적'의 위기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세계자본주의의 축적위기를 타개하고자 하는 세계자본의 전략이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우르과이라운드(UR) 협정과 그 결과로 1995년에 설치된 WTO(세계무역기구)이다. WTO를 주도하고 있는 것은 미국인데, 전세계적인 시장개방과 '자유무역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엄청난 시장쟁탈 경쟁(이른바 '무한경쟁')과 국경과 국적을 초월한 자본의 이윤추구운동의 다른 표현이 바로 WTO인 것이다. 현재의 한국경제 상황은 이러한 세계자본의 공격의 일환이다.
그 공격은 UR에서부터 전면화되었다. 그런데 한국경제는 주지하다시피 UR과 WTO 비준국으로서 세계자본운동의 '신자유주의' 흐름에 적극 편입해들어가는 정책을 취해왔다. 김영삼정권은 1993년 '신경제정책'을 내놓고 이어 소위 '세계화'를 전면에 내걸음으로써 결국 세계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격에 대한 방어막을 형성할 의사가 전혀 없었음을 보여주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7월부터 시작된 동남아시아 통화위기를 계기로 하여 세계자본운동은 동북아시아를 포함한 아시아 시장 확보에 전면적으로 나서게 되었고, 지난 4월의 기아사태를 거치면서 금융시장 경색이 시작된 한국경제에 대한 전면적 공격을 가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IMF는 그러한 세계적인 초국적 자본의 현현체에 불과한 것이지 별다른 그 무엇도 아니다.
그런데, 물론 현재 한국의 상황이 일국적인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국내적 조건이 경제파탄을 앞당긴 점이 또한 지적되어야 한다. 이점을 IMF 지원조건을 통해 살펴보자.
전체적으로 보아 IMF가 요구하는 것은 한국경제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이다. 통화주의에 입각하여 초긴축정책을 펼 것을 강조하고 있는 한편, 시장경쟁원리의 전면적 도입이 그 축을 이루고 있다. 또한 IMF는 한국경제를 전혀 일국적으로 사고하고 있지 않다. 다시 말해 IMF는 전세계 자본의 운동(특히 세계자본운동을 지배하고 있는 초국적 자본의 운동)이라는 맥락에서 움직이고 있다. IMF의 지원 조건은 독점자본위주의 경제구조를 일면 개선할 수 있는 긍정적 계기를 제공할 수 있다. 연결재무재표 작성과 회계처리제도 개선 등 기업활동의 투명성과 관련한 요구들이 이에 해당된다. 관치금융과 정경유착, 관권의 개입으로 인한 비경쟁적(비시장적) 경제운용은 한국의 독점자본이 '재벌'이라는 구조를 형성하고 또 자기자본비율이 마이너스 1천%인 기업들이 사회의 지배적 자본분파로서 자리잡을 수 있게 하는 온실이기도 했다. 1990년대 들어 김영삼 정권이 재벌위주의 경제구조를 미봉적으로나마 개혁하려고 소유와 경영의 분리 정책등을 모색했으나 실패로 돌아갔던 것은 이미 엄청나게 비대해져서 그것이 망해버리면 사회전체가 흔들리게 될 만큼 사회적 힘을 획득해버린 그러한 재벌 위주의 한국경제의 구조 때문에 재벌에게 섯불리 칼을 들이대지 못했던 사정과 관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IMF의 지원조건은 이러한 재벌위주의 한국경제를 재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IMF가 요구하는 것의 본질은 앞서 말했듯이 초국적 자본운동의 조건을 한국에서 보다 탄탄하게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은 한국의 노동자와 민중에게 자본운동에의 더한층의 종속을 요구하고 있으며, 세계자본주의가 처한 과잉축적의 위기를 초긴축과 실업으로 받아내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노동시장을 유연화시키라는 요구는 자본운동을 위하여 필요한 만큼 충분히 실업자를 만들어내라는 말과 동의어이다. 또한 국내자본의 운동이 그동안 '비효율'이었다고 바꾸라는 요구는 보다 '효율적'인 외국자본이 들어올 수 있는 문을 열라는 말과 동의어이다. 즉 국민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노동자와 민중의 생활파탄을 전제하고 있다. 따라서 IMF의 지원조건이 가지고 있는 '긍정성'이라는 것을 노동자와 민중의 생활파탄을 동반하지 않을 때만 의미를 갖는 매우 제한적인 긍정성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IMF 상황에서 한국은 그동안의 독점자본 위주의 경제구조를 바꿀 수 있는 계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얼마만큼 민생파탄의 방향에서 추진되지 못하도록 방어해 낼 수 있을지가 가장 큰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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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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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9/ 'IMF 위기'의 구조적 배경과 의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