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이은숙
◎ 작성일:2000.08.17(목)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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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자본주의에서 공황의 본질과 현상
한양대학교 한대신문(1998.11.16)
한국경제가 공황상태에 빠진 작년부터 부쩍 '경제위기' 혹은 '공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론적으로뿐만 아니라 현실이 공황상태이기 때문에 그것은 여느 때와 달리 일상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올 들어서는, 단지 한국경제 상황만 그런 것이 아니라 아시아 및 유럽은 물 론 미국도 포함하여 전세계적으로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현실화되면서 세계가 대공황국면에 진입한 것이 아니냐는 논의가 점점 설득력을 얻어가는 중이다. 그것은 지난 97년 여름 태국에서의 경제위기 폭발이 동남아시아 각국의 경제위기로 이어지고 일본과 중국, 한국을 포함하여 아시아에서 확산되는 데 그치지 않고 러시아를 거쳐 중남미, 그리고 유럽과 미국까지 뒤흔들고 있는 현실이 풍부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위와 같은 세계적인 경제상황, 그리고 세계 자본주의의 불안한 운동과정은, 단지 일시적이 거나 단기간에 마무리될 수 있는 성질의 현상이 아니라는 데 문제의 본질이 있다. 이것은 바로 현대 자본주의 각국이 부딪쳐 있는 넘을 수 없는 딜렘마로서, 자본주의경제체제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모순의 발현인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 세계경제는, 통합성·상호의존성 증대와 불안정성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흔히 '글로벌 경제'라고 이야기되는 현대 세계경제는 위 두가지 특징이 모순적으로 작동되는 구조이다. 세 계경제가 이와 같은 특징과 운동을 하게 된 배경은, 역설적이게도, 2차대전 이후의 '눈부신' 생산력 발 전과 과잉축적(*)모순의 첨예화에 있다.
(*) '과잉축적'이란 자본이 '정상적으로' 자신을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이윤(잉여가치)를 생 산·실현시키지 못할 만큼 낮은 이윤율밖에 확보하지 못하는 상태로서, 가변자본(노동 력)에 비해 불변자본(특히 생산수단)이 비대해짐으로써 발생한다(이것을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라고 한다).
2차대전 이후 약 25년간에 걸친 장기적 호황(고성장·저실업으로 표상되는 그당시는 '황금기'라고 불리웠다. 물론 그 과정에서 자본주의경제의 경기순환 - 호불황의 주기적 순환 - 은 계속되었지만 1 차대전 및 2차대전에 앞서 폭발한 것 같은 세계적인 공황은 없었다는 점에서 70년대 초반까지의 시기 를 누구나 장기적 호황기로 본다)을 누린 자본주의 세계경제는 1970년대 중반부터 '스태그플레이션'(*) 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면서 '황금기'를 마감하면서 저성장·고실업의 불황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 스태그플레이션이란, 보통 인플레이션은 경기의 활황 내지 호황기 현상으로서 간주되었 던 부르주아 경제학의 통념이 70년대 중반부터 고인플레이션과 불황이 겹치기로 나타나 자 이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이다.
이러한 세계경제 상황은, 세계경제를 주도하고 질서지워왔던 선진자본주의 국가들, 특히 미국과 영 국 경제의 파산적 상태(재정적자 누증, 저성장, 고실업 등등)에서부터 출발하였는데, 그랬기 때문에 그 들이 주도해온 세계경제질서 자체도 당연히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70년대말과 80년대 초에 미국에서 레이건의 경제정책과 영국에서 대처의 경제정책은, 그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 한 '신보수주의' 혹은 '신자유주의'라고 불리우는 프로젝트이다. 그것들은 대외적으로 경제의 개방화· 국제화 요구, 대내적으로 사회복지관련 예산삭감을 축으로 한 재정지출 축소 및 민영화, 자본의 운동 에 걸림돌이 되는 모든 규제의 완화 및 폐지, 나아가 그 일환으로서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격(노동조건 악화, 노조활동에 대한 다양한 내용과 수준에서의 제약과 규제'강화')이 취해졌다. 현시기에 김대중정 권이 추진하고 있는 '경제구조개혁'은 이러한 내용들을 전적으로 수용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신자유주의' 정책들은 한마디로 말하면 자본축적의 위기(즉, 경제위기-공황-으로 폭발하는 그것)를 타개하기 위해, '황금기' 동안 계속되어왔던 계급타협체제를 해체하는 것을 중심으로 축적조건 을 재편하고자 한 것이었다. 때문에 철저히 자본의 축적논리가 우선시되었고, 노동자·민중을 배제하 는 전략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이러한 자본의 '신자유주의전략'은, 생산현장에서는 80년대에 이 른바 '포드주의-포스트포드주의' 논란을 거치면서 소위 '일본식 생산방식'(도요타주의)과 결합하여, 노 동력 이용에서의 '유연성'(flexibility) 추구를 내포하게 되었다. 자본이 추구하는 노동력 이용에서의 '유 연성'이라는 것은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에서는 정리해고제/변형노동시간제/파견노동제 등등의 제도로 도입된 것들로서, 자본에게는 노동력에 대한 '자유이용권', 노동자에게는 '항상적 실업위협과 불안정고 용, 임금불안정성증대, 노동강도 강화' 등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하튼 대처정권과 레이건정권에 의해 일국적으로 시작되었던 '신보수주의·신자유주의' 전략은, 초 국적 거대자본의 비대화와 자본의 세계화(globalization)의 진전 속에서 전세계적으로(이를테면 80년대 에 경제위기에 직면한 멕시코, 칠레 등에까지) 확대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통합 성 강화로 인하여 일국적인 것으로서가 아니라 세계적인 차원에서 작동되게 되었다. 그 표현이 WTO 의 성립이다. 즉, 80년대를 거쳐 90년대로 넘어오게 되면, 이미 60년대부터 흔들리기 시작한 2차대전 이후의 세계경제체제인 'GATT-IMF체제'가 'WTO-IMF체제'로 대체되는데, WTO 가맹국은 그 국내 법보다도 WTO의 협정을 우선하여 국내법을 고쳐야 하게 되어 있다.(현대 세계경제의 모순구조 및 WTO와 IMF에 대해서는 {경제위기와 고용·실업},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노동정책연구팀, 도서출 판 현장에서 미래를, 1998, pp. 18-35를 참조할 것.)
그러나 이러한 자본의 '신자유주의' 전략에도 불구하고, 70년대 중반 이래의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만성적 불황은 해소되지 않았으며, 90년대도 후반인 현재, 세계경제의 모순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선 진자본주의 각국에서는 여전히 '저성장·고실업'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각국의 경제는 세 계경제의 통합성(상호의존성) 증대로 인해 일국의 공황이 일국에서 끝나지 않고 연쇄파급되는 불안정 성이 더욱 심화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실업률은 유럽의 경우 15%대, 미국의 경우 6%대라고 이야 기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모두 다 30%대에 육박하는 고실업현상을 보이고 있다. 다른 나라는 모 두 불황과 고실업에 허덕이더라도 호황과 저실업을 구가한다고 선전되어온 미국경제조차 이제는 세계 공황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되어 있다.
이렇게 된 것은, 자본의 신자유주의 전략 자체가 결국은 자본의 근본적인 모순을 더욱 심화시키는 방안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즉, 신자유주의전략에서 극악하게 강조하고 있는 '경쟁'과 '효율' 원리를 축으로 한 자본의 축적논리(결국은 이윤증대의 논리)가, 자본주의 경제에 본질적인 '생산과 소 비의 모순', 자본주의 생산의 '무정부성',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와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 에 의한 '과잉축적·과잉생산'을 더욱 촉진시킴으로써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세계적인 공황 상태는 이와 같은 맥락에서, 단순히 경기순환적인 일 시적 현상이 아니라 자본주의에 구조적 모순의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고, 또한 자본의 '신자유주의 전 략'은 그러한 모순을 전혀 타개해나오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심화시켜왔다고 할 수 있다. 그 런 점에서 '신자유주의'는 이미 파산선고를 받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데, 이는 세계자본 분파들 간에 서 신자유주의 전략을 주도해온 IMF가 최근 궁지에 몰리고 있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수출산업 중심으로 자본주의적 발전의 길을 걸어온 한국경제는 97년에 초유의 공황상태를 맞이하고 나서 위와 같은 '신자유주의' 전략에 적극 편승하는 정책을 중심으로 한 '구조조정' 와중에 있다. 그러 나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이 전략은 이미 세계적으로 그 효력을 의심받고 있는 죽은 전략일 뿐만 아니 라 '자본주의에 내재적인' 모순을 더욱 심화시키는 전략이기도 하다.
현대 세계경제는 그 모순의 격화에 의해 자본간 경쟁이 극도로 심화되어 있고 따라서 그 불안정성 도 극도로 심화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와중에서 더욱이, 세계경제의 상호의존성 때문에 일국의 경제정책은 그 효력면에서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사태가 이러하기 때문에 경제공황에 대한 대 응전략은 전적으로 다른 차원에서, 즉 자본의 논리(그 정점으로서의 신자유주의)와는 다른 맥락에서 모색되어야만 한다. 그것은 자본의 '경쟁의 논리'를 극복한 노동자의 '연대의 논리'에 기반하는 것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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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11/ 현대 자본주의에서 공황의 본질과 현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