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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동차 업종 노동운동 연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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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19 10:30: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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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라 |
 [연대와실천] 독일 완성차업체의 기업재조직화와 노동조합의 대응: 90년대 중반이후 폭스바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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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연대와실천>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앞의 2글과 이어지는 글입니다.
<200406>독일 완성차업체의 기업재조직화와 노동조합의 대응: 90년대 중반이후 폭스바겐
이상호 / 독일 브레멘대 경제학과 박사과정
5.1 들어가며
이미 지난 호에서 간략히 살펴본 바와 같이 90년대 초반 독일자동차산업, 특히 폭스바겐은 일본 경쟁업체들의 추격으로 인해 기업위기상황에 빠지게 되고, 이를 벗어나기 위한 노사간의 합의가 바로 우리에게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나누기로 알려진 1993년 "산업입지와 고용보장을 위한 단체협약"이었다.
노사간에 고용안정과 기업경쟁력향상의 교환이라는 성격을 지닌 이러한 노사간의 타협은 이후 자동차산업의 경기가 일정하게 회복됨으로써, 부분적으로 예상되던 부정적인 효과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94년에 들어서면서 폭스바겐의 최고경영진은 "전환기경영(Transformationsmanagement)"이라는 이름 하에 그동안 미루어왔던 기업조직의 재편을 강력하게 추진하게 된다(Haipeter 1999, 312쪽).
"유연적 대량생산체제"를 뒷받침할 수 있는 기업구조로의 재조직화라는 목표 하에 추진된 기업구조조정은 이후 폭스바겐의 노사관계에 있어 핵심적인 화두로 떠오르게 된다. 이 글에서는 90년대 중반을 전후로 폭스바겐에서 추진된 기업구조의 재조직화과정을 중심으로 노사간의 대립지점과 협상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를 추론해보고자 한다.
5.2 산업입지보장을 둘러싼 노사간 쟁점
5.2.1 95년 폭스바겐의 단체협약
95년 폭스바겐의 노사간에 새롭게 체결된 단체협약의 목표는 93년 "산업입지와 고용보장을 위한 단체협약"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었다. 경기호전과 고용인력의 자연감소라는 호조건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인 고용안정을 위해서는 협약노동시간의 단축은 지속적으로 유지되어야 했다. 초과노동은 부분적으로 늘어났지만, 주당 총노동시간이 30시간을 넘지 않도록 노사가 공동으로 노력하였다.
하지만 95년도 단체협약에서 주 4일 28.8 협약노동시간을 계속 유지한다는 상호간의 기본합의에도 불구하고 임금인상폭과 고용보장의 세부규정을 두고 노사간의 갈등이 촉발된다. 사측은 산업입지와 고용안정을 위한 전제조건으로서 비용절감과 생산성향상을 강조하면서 노조의 임금인상자제를 요구하였고, 노조는 지난 2년 간 유보한 실질임금의 보전을 강력하게 제기하고 있었다.
95년 9월 노사간에 합의된 새로운 단체협약의 내용은 우선 93년 산업입지와 고용보장을 위한 단체협약의 중심내용을 그대로 승계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주당 28.8 협약노동시간을 유지하고 97년 말까지 기업경영상의 이유로 인한 정리해고를 금지한다.
둘째, 기업경영상의 필요에 의한 초과노동을 노조가 일정하게 수용하고 초과노동분에 대한 금전보상은 주당 총노동시간이 35시간 이상인 경우로 제한한다. 즉 초과노동분은 자유시간으로 대체되는 것을 기본원칙으로 하고, 노동시간계좌에 이를 적립하여 이후에 휴가연장이나, 조기퇴직시 사용하도록 한다.
셋째, 현재 견습공들의 정규직고용을 보장하고 이들의 임금을 단계별로 정상화한다.
넷째, 전체 폭스바겐노동자의 임금을 4% 인상하고 천 마르크의 일시급을 지급한다.
다섯째, 고용보장을 위해 투입되는 기업비용증가분을 일정하게 상쇄하기 위해서 간접부서 종사자는 주당 1.2시간 더 일하고, 직접부서 노동자는 시간당 휴식시간을 2.5분씩 줄인다.
여섯째, 재산형성기금형태로 매달 기업이 노동자에게 지불하던 52 마르크를 기업연금형태로 적립한다. 이러한 노사간의 합의에 대해 임금인상과 고용보장에 있어 사용자가 양보하고, 비용절감과 노동시간의 유연성에 대해서는 노조가 기업경쟁력을 위해서 사용자의 안을 수용하였다고 요약할 수 있다(IG Metall Bezirk Hannover 1996, 30쪽 이하; Haipeter 1999, 344쪽 이하).
이와 같이 93년 기업위기를 경험한 폭스바겐의 노동자와 노동조합은 고용안정이 보장될 수 있다면, 사측이 요구하는 생산합리화조치들을 일정한 정도에서 수용할 수밖에 없다고 평가하였던 것이다.
이들은 자동차산업의 역동적인 경쟁상황을 주어진 조건틀로 인식하고 이러한 상황 하에서 폭스바겐의 산업입지들간 내부경쟁을 줄이고, 이를 통해 발생할 수 있는 지속적인 고용불안정을 최소화하는데, 노동조합 및 사업장평의회의 활동이 맞추어지게 된다. 즉 고용안정을 위한 다양한 전제조건 중에서 산업입지의 유지와 보장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는 판단 하에 생산현대화에 동참하게 된다.
한편 폭스바겐 최고경영진은 기업내부의 경쟁 활성화 및 조직최적화를 통한 효율성향상을 생산조직측면에서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었다. 이러한 최적화경영조치는 플랫폼통합과 신조달전략 등을 통해 전지구적으로 통합적이고 유연한 생산조달망을 구축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이를 위해서 경영진은 폭스바겐의 전 세계 산업입지들을 포괄하는 유연적 생산체계를 구성하고 이들 산업입지의 기업역량을 강화시키고자 하였다. 이러한 경영진의 산업입지전략은 구체적으로 플랫폼통합, 산업입지간 생산 및 투자의 할당과 분배를 통해 구체화된다.
5.2.2 산업입지보장을 둘러싼 노사간 갈등영역: 플랫폼통합, 생산배분 및 투자할당
폭스바겐의 새로운 최고경영자 페르디난트 피에치(Ferdinand Piech)는 플랫폼통합전략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 이는 7-80년대까지 유지되어온 "동종부품전략"이 시장 및 고객의 취향과 기호를 따라갈 수 없다는 경영진의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그 첫 번째 시도가 중형 파사트(Passat)모델과 아우디(Audi 80/100)모델의 플랫폼을 통합하는 B-플랫폼전략이었다. 이러한 경영진의 새로운 생산전략에 대해 폭스바겐의 사업장평의회는 제품다양성과 생산유연성을 담보한 상태에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플랫폼통합의 기본발상에 동의하면서도, 폭스바겐의 어려운 경영상태와 투자여건 하에서 플랫폼통합을 위해서 투입되는 새로운 시설투자로 인한 발생하는 비용부담으로 인해 기존의 생산라인이 외주화되고 사업영역이 해외로 이전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Haipeter 1999, 354쪽).
이러한 문제의식에 따라 사업장평의회는 일차적으로 경영진이 추진하는 플랫폼통합전략이 미치는 비용 및 산업입지에 대한 영향도를 자체적으로 평가하고 이와 대응하는 독자적인 방안을 제안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폭스바겐의 경영진과 사업장평의회는 플랫폼의 연구 및 개발, 플랫폼의 생산 및 조달을 모두 포함하는 플랫폼역량(Plattformkompetenz)이라는 콘셉트를 개발하고 고유상표에 따라 플랫폼역량을 재배치하는 것을 합의하게 된다.
그리고 각 공장은 원칙적으로 두가지의 플랫폼(Zwei-Plattformen)을 구축함으로써 제품별 주문물량의 변동을 자체적으로 완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와 같이 사업장평의회가 각 자동차제품별로 "핵심공장(Leitwerk)"을 지정하고 이를 중심으로 한 플랫폼통합을 추진하게 된 이유는 플랫폼통합과정을 통해 발생할 수 있는 각 공장간의 경쟁과 갈등을 막고, 각 공장별 핵심역량에 대한 특화를 통해 기업경쟁력을 추동하기 위해서였다.
한편 사업장평의회는 플랫폼통합으로 인한 생산조직의 재편과정이 해당 노동자에게 불리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왜냐하면 플랫폼통합이 추구하는 유연적 대량생산체제의 구축이 다양한 측면에서 노동자의 임금 및 사회적 요구를 압박할 수 있는 기제로 작용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실제에 있어서 폭스바겐의 경우 플랫폼통합이 노동자의 강력한 참여권한에 기반하여 독일 내 산업입지를 혁신하고 장기적인 고용안정에도 기여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고 평가된다(Haipeter 1999, 358쪽).
하지만 이러한 기업구조조정과정은 폭스바겐의 사업장평의회가 기존에 행해왔던 노동자이해대변방식을 일정하게 수정하도록 만드는 새로운 도전이기도 했다. 이는 산업입지간 생산배분 및 투자할당 등을 둘러싼 갈등 속에서 더욱 더 분명하게 확인된다.
산업입지간 갈등은 각 공장별 노동자, 더 나아가 사업장평의회간 갈등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된다. 그 대표적 사례가 바로 폴로차종(Polo)의 생산을 둘러싼 산업입지간 경쟁상황이였다(Haipeter 1999, 359쪽 이하). 폭스바겐의 볼프스부르크 사업장평의회는 2종 플랫폼전략에 따라 90년대 초 기업위기 상황에서 생산물량을 스페인 제아트(SEAT) 팜프로나(Pamplona)공장으로 이전시켰던 폴로차종의 일부 생산량을 다시 독일 내 폭스바겐 공장으로 재이전할 것을 경영진에 요구한다.
경영진은 생산물량의 이전에 대한 전제조건으로 생산비용에 대한 균형(Kostengleichheit)를 요구함으로써, 이를 둘러싼 노사간의 갈등이 발생하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독일 폭스바겐 사업장평의회의 요구를 스페인 제아트 노조에서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달려 있었는데, 유럽사업장평의회에서의 논의를 거쳐 일정한 물량이전이 합의된다.
독일과 스페인 노동자간의 갈등이 최소화될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폭스바겐 유럽사업장평의회가 산업입지간 경쟁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추진해왔던 "연대적 고용균형원칙(Mertens 1994, 283쪽 이하)"을 각 산업입지의 노동자이해대변조직들이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생산물량의 배분을 둘러싼 산업입지간의 이견과 갈등은 신모델의 생산입지결정, 그리고 차종별 주문량의 변동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발생하였지만, 노동자이해대변조직들의 이해조정을 통해 큰 문제 없이 해소될 수 있었다. 이는 96년 팜프로나공장의 가동율저하로 인한 고용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 폴로생산물량을 다시 스페인으로 옮기는 것을 폭스바겐 사업장평의회가 동의한 것에서도 확인된다.
물론 이러한 폭스바겐 사업장평의회의 결정은 경영진이 골프 신모델과 치코차종의 생산을 독일 국내 볼프스부르크(Wolfsburg)공장에서 할 것이라는 합의 속에서 가능하였다.
생산물량의 배분문제 뿐만 아니라, 폭스바겐의 산업입지에 대한 투자계획도 노사간의 중요한 쟁점이었다(Haipeter 1999, 365쪽). 특히 폭스바겐의 사업장평의회는 경기가 회복되면서 기업위기의 상황에서 계속 유보되어 왔던 독일 내 기존공장들의 현대화 및 재투자를 경영진에 강하게 요구한다.
이미 폭스바겐의 최고 경영진은 암묵적으로 미래투자를 신공장의 증설과 해외이전에 맞추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폭스바겐 사업장평의회는 독일 내 공장의 경쟁력과 고용안정은 새로운 시설투자와 생산현대화가 병행되지 않고는 장기적으로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이들이 보기에 신공장의 증설계획은 사업장평의회의 "연대적 고용균형"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을 뿐만 아니라, 93년 폭스바겐위기의 경험을 통해 독일 내 기존 공장에 대한 재투자와 생산혁신이 없이는 노동자의 장기적 고용안정을 보장받을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폭스바겐 사업장평의회는 경영진에게 특히 동유럽으로의 해외이전을 자제하고, 독일 내 구공장에 대한 재투자를 강력히 요구한다. 특히 기업위기로 인해 유보되었던 생산시설의 현대화는 물론, 새로운 생산방식에 부응할 수 있는 노동자의 숙련능력 및 직업교육에 대한 투자를 동시에 요구하였다.
초기에 이에 대해 난색을 표명하던 경영진이 입장을 바꾸게 된 것은 94년 경기회복과 함께 나타나기 시작한 생산량증가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 생산조직 및 생산과정의 혁신 없이는 장기적인 발전비전이 없다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경영진이 노사간의 "현대화연합(Modernisierungskoalition)"을 합의하게 된 또 하나의 이유는 폭스바겐의 "협력적 갈등극복방식(Kooperative Konfliktbewaeltigung)"의 유의미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폭스바겐 사업장평의회는 질적인 고용안정, 노동의 인간화, 참여적 구조조정, 생태친화적 생산이라는 목표 하에서 생산체계의 혁신과 개선에 동참하고 있었다. 문제는 항상 발생할 수밖에 없는 노사간의 갈등문제를 어떻게 서로 협력적인 방식으로 조정하고 이해균형을 맞추는가에 달려 있었다(Meine 2000, 214쪽).
5.3 조달방식과 기업구조의 재조직화
5.3.1 새로운 부품조달전략과 사업장평의회의 대응
93년을 경과하면서 폭스바겐의 부품조달전략은 새롭게 구성되고 있었다. 완성차업체와 부품업체간의 수직적 분업구조를 부가가치창출을 위한 조달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생각은 이미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제기되고 있었다(Altmann & Sauer 1989; Deiss & Doehl 1992 등 참고). 이러한 새로운 부품조달전략은 자체생산을 줄여서 비용 및 위험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점, 시스템 및 모듈부품업체와 완성차업체의 개발능력을 결합시킴으로써 기업간 장기적 협력관계를 내실화할 수 있다는 점, 부품조달망에 긴밀한 의사소통체계를 구비함으로써 연구 및 개발능력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 적기조달방식과 부품업체의 시스템화를 통해 완성차업체와 부품업체가 공동으로 해외진출을 할 수 있다는 점 등에서 완성차업체에게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이에 상응하는 문제점들도 존재하였다. 그 중에서 완성차업체의 노하우이전과 사업포기를 통해 발생할 수 있는 부품업체에 대한 의존성강화, 적기조달방식의 불안정성으로 인한 생산정지의 가능성증대, 조달관계에서 장기적 협력이 부품업체의 경쟁동인을 줄일 수 있다는 것 등이 문제시되었다(Goeudevert 1991, 99쪽 이하). 이러한 문제점은 부품업체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로 제기되었다.
먼저 노하우이전과 외주화를 통해 완성차업체가 조달업체의 부품개발능력에 의존될 가능성도 증가하지만, 역으로 장기적이고 배타적 거래는 부품업체의 몰입비용을 증가시키고 완성차업체의 주문 및 거래관계에 대해 의존성을 강화시킨다. 특히 이러한 불균형한 의존관계는 품질관리, 연구개발 그리고 로지스틱에서 유지되고 있는 완성차업체의 통제능력에서 잘 확인할 수 있다. 둘째, 기업간 분업구조가 망적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이러한 조달망에서 이루어지는 기업간 관계는 여전히 비대칭적이고 위계적인 형태로 분화되고 있다.
이러한 위계적 조달피라미드의 발전으로 인해 부품업체의 권한과 능력이 증가하기보다는 그들의 책임과 부담이 더 늘어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래서 완성차업체의 새로운 조달전략으로 인해 부품업체의 자율성이 강화되기보다는 종속관계가 재구성되고 있다고 해석하는 이들도 존재한다(Pohlmann 1995, 134쪽 이하).
이러한 상황에서 93년 3월 폭스바겐의 "생산최적화와 조달"부서 이사로 새로 부임한 조세 이그나시오 로페츠(Jose Ignacio Lopez)는 경쟁력을 지닌 생산구조, 핵심영역에 대한 집중, 부품업체의 노하우 활용을 위한 방안으로 "근접화된 생산망"을 추진한다.
"내주화(In-Sourcing)"의 한 변형태로 일컬어지는 이러한 부품조달방식은 기존의 부품업체들을 기업역량과 개발능력 등을 기준으로 분류하고 핵심부품업체들을 최종조립공장에 최대한 근접시키는 생산공정재편전략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었다.
한편 이러한 부품조달전략은 폭스바겐의 사업영역별 비용책임과 이윤관리를 위임하는 기업분산화전략(비용 및 이윤센터)과 연동되어 추진되었다.
이러한 경영진의 부품조달전략에 대해 사업장평의회는 몇 가지 문제를 제기한다. 그들의 고민은 기업의 핵심역량을 어느 사업영역까지 포함할 것이며, 외주화영역이 어느 선까지이고 그 선택기준은 무엇인지, 그리고 부품업체들을 조립공장내부로 들어오게 할 것인지에 놓여 있었다.
결국 총사업장평의회는 경영진의 새로운 부품조달전략에 대해 다음과 같은 입장을 제시한다.
먼저 새로운 조달전략이 고용안정 및 산업입지보장협약의 내용을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점, 부품조달방식의 결정과정에서 사업장평의회의 정보공유, 협의 및 공동결정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점, 외주화로 인해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 있는 인력조정을 사회계약적(Sozialvertraeglich)방식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점, 완성차의 생산 및 조립기능을 폭스바겐의 핵심영역으로 확정하고 외주화하지 않는다는 점, 폭스바겐 산하 부품업체들의 시스템부품업체로 육성해야 한다는 점, 외부 핵심부품업체의 근접화를 인정하지만, 조립공장내부로의 이전은 반대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경영진의 새로운 조달전략에 대한 사업장평의회의 대응원칙은 아래에서 살펴볼 세 가지 현안을 통해 보다 더 구체화된다.
5.3.2 글로벌 및 전방위조달
93년 후반 산업입지 및 고용보장을 위한 노사간 단체협약이 체결되기 전에 경영진과 사업장평의회간에 "글로벌 및 전방위조달(Global- und Forward-Sourcing)"에 대한 기업협정(Betriebsvereinbarung)이 합의되었다.
이미 사업장평의회는 이 협정에 대한 협상에 앞서 부품외주화를 결정하기 이전에 폭스바겐 내부 부품업체들에게 외주화에 대한 대안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점, 사업장평의회의 공동결정권이 제품개발 초기부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 등을 분명히 한다.
공동결정권의 확대에 대한 노사간 이견에도 불구하고 93년 10월 13일 체결된 조달방식에 대한 기업협정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먼저 글로벌, 전방위, 그리고 내부조달로 구분할 수 있는 조달형태에 대해 구체적으로 개념정의하고 있다.
둘째, 조달업체의 선정과정을 네 단계로 나누고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내외부업체의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고, 조달방식의 결정에 있어 피고용인의 인사 및 사회적 측면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한편 이러한 과정을 총괄하는 노사공동위원회로서 기업조달위원회(Corporate Sourcing Committee)를 구성하고 사업장평의회가 여기에서 결정권을 행사한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기업조달위원회가 최종결정을 하기 전에 폭스바겐 내부 부품업체에게 마지막 기회(Last Call)를 부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외부업체가 잠정적으로 결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부품업체의 비용 및 가격조건에 상응하는 부품을 내부 부품업체가 자체 생산할 수 있는지를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묻는다. 내부 부품업체에 대한 우선권은 부품업체의 선정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노사간 사전 만남(Pre-Meeting)에서 외주화가 고용 및 산업입지의 안정성에 미치는 부정적인 효과를 면밀히 점검하는 과정에서도 강조되고 있다.
셋째, 사업장평의회는 조달업체의 선정과정에 있어 단계별로 자신의 의견과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다. 외주화품목의 선정, 신제품개발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입수하고 자체 생산의 타당성여부를 충분히 검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조달업체의 결정과정에서 공동결정권을 직접 행사한다. 그 외에 생산공정 그 자체의 기술조직적 형성과정에서 협의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다(Dalessio & Oberbeck 2000, 108쪽; Haipeter 1999, 382쪽).
한편 조달방식에 대한 기업협정에는 "산업입지심포지움(Standortsymposien)"이라는 노사협의체를 구성하도록 규정하고 있다(Volkswagen AG, 2000, 14쪽). 이 기구를 통해 폭스바겐 각 사업장의 노사는 제품개발 및 생산전략을 보다 구체적으로 상호 논의하고 고용 및 산업입지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문제해결책을 찾을 수 있었다.
실제로 폭스바겐 노사 모두 부품업체 선정 및 조달방식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문제 및 사실연관적인 실용주의"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업기본법이 보장하고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공동결정권을 사업장평의회에 부여할 수 있었다. 폭스바겐의 경영진은 기업내부의 최적화경영을 실현하기 위한 일 주체로서 노동자이해대변조직의 권리를 인정하고 이들의 적극적인 조형자적 역할을 자연스럽게 수용하였다. 하지만 사업장평의회의 이러한 역할에 대한 평가는 상이하다.
기업의 경영전략이 입안되는 초기과정부터 노동자의 이해를 관철시킬 수 있기 때문에, 생산과정의 재편을 혁신적이고 노동친화적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장점을 가지게 된다고 보는 입장이 있는 반면, 사업장평의회가 기업이 자신의 경영합리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윤활유와 같은 역할로 전락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부류들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스바겐의 조달방식에 대한 기업협정에 한정하여 평가해볼 때, 사업장평의회가 경영진의 하부기관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사업장평의회는 산업입지보장과 고용안정이라는 독자적인 목표 하에 생산합리화를 평가하고 그 의사결정과정에서 자신의 공동결정권을 강력하게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달방식의 핵심적인 비용절감원칙은 사업장평의회로 하여금 기업 및 노동자간 경쟁논리에 스스로를 빠지게 만드는 위험을 유발시킨다(Gehrke 1997, 294쪽 이하). 실제로 이러한 비용절감원칙으로 인해 사업장평의회의 경영통제기능이 약화되고 생산성향상을 위한 경영기제화됨으로써, 외부업체 노동자와의 갈등과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는 지적은 주목해야 한다(Haipeter 1999, 387쪽).
조달방식에 대한 사업장평의회의 세밀한 개입전략에도 불구하고 기업합리화를 통한 생산성향상은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고용창출효과를 상쇄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업장평의회는 폭스바겐 노동자의 장기적인 고용안정을 위해서는 조달방식에 대한 새로운 요구, 즉 내주화(In-Sourcing)가 추진되어야 한다고 판단한다.
1994년 초에 총사업장평의회가 제안한 내부조달안은 먼저 내주화를 고용안정과 기업경쟁력강화를 위한 핵심적인 수단이라고 정의하고, 외주화된 부품의 내부화는 물론, 자체 생산부품의 외부 완성차업체에 대한 판매까지 포함하는 내부생산의 확장개념으로 발전하게 된다. 또한 이를 위한 노동조직의 재구성, 숙련교육의 편성 및 인력재배치 등에 대한 사업장평의회의 개입가능성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주목되는 점은 폭스바겐공장 내부에서 외부업체의 생산활동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사업장평의회의 내주화요구는 로페츠를 비롯한 폭스바겐 최고경영진의 기업구조의 분산화전략과는 맞물리기가 힘들었다.
경영진은 원칙적으로 기업의 경계를 넘어서는 생산조직화전략으로서, 폭스바겐에 부품을 공급하는 내외부업체의 근접화 및 상주화를 기획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문제를 둘러싼 노사간의 이견과 갈등은 결국 1995년 2월 "전략적 내주화(Strategic-Insourcing)"라는 기업협정을 통해 조정된다.
"글로벌 및 전방위조달"에 대한 후속협정이라는 성격을 지닌 이 협정을 통해 조달방식의 결정과정에서 내부생산의 우선권이 더욱 강화된 동시에, 부품 내부생산의 발전가능성을 진단하기 위한 "내주화 시범프로젝트(Pilotprojekt)"를 노사가 공동으로 추진하게 된다(Haipeter 1999, 391쪽 이하). 이 내주화프로젝트는 부품의 자체생산이 지닌 경쟁력에 그 목표가 맞추어져 있었지만, 부품사업의 다각화 및 부품판매망의 개척을 통해 유휴노동력의 퇴출가능성을 줄임으로써, 고용유지 및 안정에 기여를 하였다.
5.3.3 공장의 모듈화
폭스바겐의 새로운 부품조달전략은 기존의 포드주의적 조달구조, 즉 높은 수직적 통합과 부품업체와의 시장관계와는 공존할 수가 없었다. 점차적으로 제품개발 및 생산계획능력에 집중하게 되는 완성차업체는 그 예하에 연구개발역량을 갖춘 시스템부품업체들과 장기적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이들과의 부품거래는 적기조달 및 동시적 엔지니어링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시스템부품업체의 통합과 관리는 완성차업체의 입장에서 볼 때, 대단히 중요한 문제였다. 즉 경영진의 핵심영역에 대한 "전략적 내주화"는 시스템업체의 내부화를 위한 전초작업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업장평의회는 폭스바겐공장지대에 핵심적인 시스템부품업체가 이전해오는 것을 지역고용정책적 측면에서 환영하였지만, 내외부업체간 물리적, 공간적 경계를 유지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낀다.
왜냐하면 기업의 경계를 넘어서는 부품조달체계 속에서 진행되는 의사결정과정에 사업장평의회가 자신의 공동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법제도적 기초가 빈약했기 때문이다. 공동결정권의 법제도적 기초가 되는 "기업기본법(Betriebsverfassungsgesetz)"는 개별기업의 경영의사결정에 대해서만 노동자의 공동결정권을 보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동결정제도의 한계로 인해 사업장평의회는 공장지대로의 부품업체이전을 용인하는 대신, 공장내부에 부품업체의 노동자가 상주하는 것을 반대한다. 이는 기업소속이 다른 노동자들간에 발생할 수 있는 직접적인 이해충돌을 막고, 기업기본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기업단위"에 대한 법적 해석논란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였다(Haipeter 1999, 396쪽).
부품조달전략의 재구성과 함께, 폭스바겐 경영진이 추진한 생산재조직화전략은 "제조공장의 모듈화(Modulare Fabrik)"라고 정의할 수 있다. 모듈공장이라고 약칭할 수 있는 이 재조직화전략은 소위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기업단위들의 망적 결합형태와 연관된 개념으로, 경계가 존재하지 않는 기업개념과 유사하다.
애초에 경영진의 모듈화전략은 시스템업체 노동자들이 부품덩어리들을 모듈화하여 최종라인에서 직접 조립하는 것을 상정하고 있었지만, 이러한 외부업체에 의한 모듈화에 대해 폭스바겐의 사업장평의회는 강력하게 반발한다.
결국 독일 국내공장 사업장평의회의 강력한 저항으로 인해 "생산의 모듈화"는 해외현지공장에서 우선적으로 적용되거나, 일부 국내공장에서 시범적으로 실시된다. 경영진의 모듈화전략은 기존의 기업개념을 위협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폭스바겐의 전지구적 재조직화전략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사업장평의회는 기업경계를 넘어서는 생산조직화의 새로운 의사결정과정에 조응하는 노동자의 "확대된" 공동결정권을 요구하는 동시에, 폭스바겐의 자회사인 내부 부품업체를 시스템 및 모듈업체로 육성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내부 모듈화"를 요구한다. 이러한 사업장평의회의 대응전략은 생산체계 내에서 동일기업 내 사업장간 의사소통이 소속을 달리하는 여타 업체와의 의견조정보다 비용과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Haipeter 1999, 400쪽).
모듈화를 둘러싼 노사간의 이견과 갈등은 1995년 초 "모듈공장(Modulare Fabrik)"이라는 생산조직모델로 발전한다. 경영진의 "모듈화"개념에 따르면, 먼저 공장의 각 조립단위는 공동목표에 따라 배치되고 구성된다. 외부로부터 운반되어진 부품 및 모듈은 팀작업형태로 각 조립단위에서 조립된다. 이러한 모듈공장의 운영과정은 린생산방식의 원칙에 따라 결정된다.
특히 쟁점이 되었던 것은 부품업체의 조립공장주변으로의 이전문제였다. 경영진의 생산근접화계획에 대해 사업장평의회는 먼저 외부 부품 및 조달업체의 임무를 모듈의 생산 및 공급에 한정하고 있다. 이와 함께, 사업장평의회는 이전해오는 외부업체의 임금 및 노동조건이 폭스바겐의 수준에 상응해야 하며, 노조활동이 보장되고 사업장평의회가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생산입지의 이전으로 인해 부품업체에서 해고가 발생해서는 안된다고 못박고 있다. 이러한 사업장평의회의 요구를 경영진이 받아들였기 때문에, 폭스바겐의 사업장평의회도 "모듈공장"이라는 새로운 생산조직화모델을 기존의 포드주의적 생산체계를 대체하고 새로운 노동형성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생산조직으로 평가하게 된다(Haipeter 1999, 403쪽).
폭스바겐 내 공장모듈화의 실험은 자회사 부품업체인 브라운슈바이게(Braunschweig)공장에서 처음으로 시도된다(Betz & Fritsch 2000, 76쪽 이하). 차축, 시동장치, 단순부품 및 공작기계를 생산하고 있던 이 공장은 90년대 초반에 들어오면서 단순부품 생산업체에서 시스템업체(Systemlieferant)로 거듭나야될 상황에 처하게 된다.
폭스바겐의 새로운 수직적 분업구조와 부품조달관계에 조응하는 총체적 기업역량을 지닌 시스템업체로 브라운슈바이게공장의 역할을 전환하는 과정은 경영진의 생산모듈화전략과 사업장평의회의 전략적 내주화전략이 서로 맞물리면서 타협된 결과였다. 이 공장을 종합적인 시스템업체로 키움으로써, 경영진의 입장에서 볼 때 폭스바겐의 연구개발역량의 유출을 막을 수 있었고, 사업장평의회의 입장에서는 모듈화를 둘러싸고 벌어질 수 있는 외부업체와의 갈등을 초기에 진화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모듈화과정으로 인해 완성차업체에 전속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위험부담 때문에, 시스템업체로의 전환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외부 부품업체들의 태도도 내부업체의 시스템화에 간접적인 동인으로 작용하였다.
기업구조의 분산화와 내부경쟁의 강화라는 경영진의 재조직화전략의 연장선상에 있었지만, 브라운슈바이게공장을 부품조달체계에서 핵심역량을 갖춘 "중심기업(Fokalunternehmen)" 혹은 "종합기업(Generalunternehmen)"으로서 그 역할을 재규정함으로써, 공장모듈화를 위한 노사간의 "현대화동맹(Modernisierungskoalition)"이 가능하였다(Haipeter 1999, 409쪽).
5.4 노동조합의 대응방안
위에서 90년대 중반을 전후로 하여 독일자동차산업에서 진행되었던 산업입지의 이전, 부품조달전략 및 조달방식의 변화, 생산모듈화 등을 폭스바겐의 사례를 중심으로 간략히 살펴보았다. 이하에서는 이러한 기업 및 생산구조의 재조직화전략에 대한 노동조합의 대응방안을 독일금속노조의 자료를 기초로 하여 간략히 정리해보고자 한다.
5.4.1 고용 및 산업입지의 보장
90년대 독일자동차산업에서 노사관계의 가장 큰 화두는 고용유지 및 안정에 맞추어져 있었다(Kamm 1999, 19쪽 이하). 이는 자동차산업의 경기호전에도 불구하고 일자리창출은 기대하기가 힘들고, 기업합리화로 인해 파생되는 고용불안은 노동자들의 생존권문제로 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따라 금속노조는 노동자의 고용안정을 위해서 "고용안정협약"의 활용, 경영진의 합리화 및 비용절감조치에 대한 사업장평의회의 동의권 확보, 노동조직 및 생산과정을 개선하기 위한 기업개혁의 추진, 노동의 인간화와 노동자참가권을 보장하는 그룹노동의 형성, 개인의 노동시간선택권과 초과노동을 줄일 수 있는 유연적인 노동시간체계의 구성 등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생산지구화와 외주화의 위협이 현실되고 있는 상황에서 금속노조는 산하 노동자이해대변조직들에 다음과 같은 대처방안들을 권고하고 있다.
먼저 기업구조의 재조직화조치가 계획되는 초기에 포괄적인 정보공유에 기반하여 그 영향력과 효과를 분석하고 평가하여야 한다.
둘째, 지구화와 외주화과정에서 경영진이 강조하는 비용절감효과를 일면적으로 계산하기보다는, 직간접적인 효과를 고려한 총괄적인 비용산정을 수행해야 한다. 이러한 다면적인 평가는 산업입지보장을 위한 투자조치에 대해서도 적용되어야 한다.
셋째, 기업역량과 투자확보를 위한 독자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하며, 이러한 과정에서 고용안정을 보장할 수 있는 조치들을 명문화해야 한다. 이러한 고용정책적인 대응은 개별 사업장평의회의 활동으로 국한하지 말고, 지역고용문제와 관련된 사회시민단체들과 연대적인 활동으로 발전시켜야 한다(IG Metall 1997, 17쪽).
5.4.2 노동자이해대변조직의 참여
기업경영진이 추진하는 지구화와 외주화의 의사결정과정 속에서 노동자들의 이해와 요구를 관철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사업장평의회와 해당 노동자들은 기업의 추진계획에 대해 사전에 포괄적인 정보를 얻어야 한다. 그리고 그 내용을 검토하고 평가할 수 있는 시간과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더욱 더 중요한 것은 기업의 재구조화에 대한 결정이 기업경영진만의 소관사항이 아니라, 이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는 노동자들이 그 결정과정에 참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의사결정과정에 대한 노동자이해대변조직의 참여는 가능한 한 빠를수록 좋고, 최종결정여부 전에 해당 노동자의 의사가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단계별 노동자의 참여기제를 재구조화와 관련된 "기업협정"에 분명하게 명시하여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기업의 재구조화가 일자리를 위협하고 노동조건의 악화를 초래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Doerrenbaecher 1997, 54쪽 이하). 실제로 독일에는 지구화와 외주화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노동자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다양한 차원의 보호법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분사화되는 경우에도 해당 노동자는 새로운 사용주에 대해 기존의 개별 고용계약을 준수할 것을 요구할 수 있고, 기업기본법, 공동결정법과 단체협약에서 규정하고 있는 보호조치들을 활용할 수 있다. 특히 한편 외주화의 결정과정에서도 사업장평의회는 단계별로 자신의 정보청구 및 공동결정권을 활용할 수 있다. 그 좋은 사례가 바로 우리가 앞 장에서 살펴본 "글로벌 및 전방위소싱"에 대한 기업협정내용이다. 먼저 기업의 부품조달전략은 해당 공장의 생산지속가능성, 고용안정에 대한 효과 등을 사전에 고려한 상태에서 계획되어야 한다. 만일 어쩔 수 없이 부품외주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면, 그 구체적인 내용과 외주예상업체들에 대한 정보를 해당 사업장평의회에 정확히 공지해주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내부 부품업체에게 우선권이 부여되어야 하고, 만일 외부업체의 제시안이 더 경영합리적이고 한다면, 이 안에 상응하는 대안을 마련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내부 부품업체에게 주어야 한다(IG Metall 1997, 21쪽).
5.4.3 투자결정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
고용안정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고용보장에 대한 기업협정만으로는 부족하다. 산업입지가 경쟁력을 잃고 몰락하게 된다면, 협정에 나와있는 고용보장에 대한 약속은 한낱 공약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반하여 독일금속노조는 장기적인 고용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로서 기업재구조화조치와 관련된 "투자보장협정(Betriebsvereinbarung fuer Investitionssicherung)"을 경영진에 요구하고 있다.
이는 독일의 노동자이해대변조직, 즉 노동조합과 사업장평의회의 대표가 기업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경영감독회(Aufsichtrat)에 참가하고 공동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러한 투자보장협정을 통해 산하 각 산업입지들의 미래발전가능성을 위한 투자계획이 확정되고 그 구체적인 내용은 제품개발, 생산현대화 및 숙련향상을 위한 직업교육 등과 관련되어 있다.
한편 기업투자의 의사결정과정에 참가하는 노동자대표들에게 이에 대한 포괄적 정보를 제공하고 이에 대해 검토할 시간을 주는 동시에, 문제가 있을 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경영진의 투자보장약속은 그에 상응하는 생산성향상 및 노동유연화조치를 사업장평의회에 반대급부로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경우에 노동조건과 고용관계에 대한 영향을 면밀히 검토하여야 한다(IG Metall 1997, 23쪽).
5.5 소결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폭스바겐은 93년 노동시간단축과 일자리나누기협약을 통해 정리해고와 대량실업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막아내고, 9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 경영정상화상태로 복귀하게 된다.
주목되는 점은 기업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진행된 산업입지의 재편과 개선, 부품조달방식 및 조달체계의 합리화, 공장모듈화를 비롯한 생산재조직화과정에 사업장평의회는 물론, 노동조합이 일관된 전략적 개입을 수행해왔다는 것이다. 기업구조의 재조직화는 직간접적인 경로를 통해 노동문제를 필연적으로 파생시킬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노동자이해대변조직은 재조직화과정에서 형성될 수 있는 노동의 인간화라는 기회를 극대화하고 고용불안과 노동강도의 강화라는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동결정제도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사업장평의회가 단순히 경영의사결정과정에 참가하여 들러리를 서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이해와 요구에 입각하여 경영을 전략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가능성을 폭스바겐은 보여주고 있다.
과연 그렇다면 기업구조의 재조직화와 관련된 폭스바겐의 사례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경제위기 이후 한국자동차산업, 특히 완성차업체의 노동조합들도 고용안정이라는 목표 하에 기업구조 및 조직의 재편(사업확장, 합병, 이전, 분사, 외주 등)에 대한 개입기제들을 단체협약을 통해 일정한 정도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주로 경영진이 구조조정을 추진하기 전 일정시점까지 그 계획을 통보하고 이에 대해 노조와 협의할 것을 규정하고 있는 수준이다. 물론 고용조정과 직접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는 노조가 동의권을 확보하고 있는 경우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이해대변조직이 기업구조조정에 대한 사전적이고 전략적인 개입을 할 수 없다면 경영진의 고용보장에 대한 약속은 한낱 공약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과연 현재 우리나라의 노동조합이 일상적인 기업구조조정에 대한 개입기제(Interventionsinstrument)와 형성역량(Gestaltungskompetenz)을 가지고 있는가이다.
필자가 보기에 현재 구조조정에 대한 노동자의 개입기제로서 단체협약이 유일무이하다. 노동자보호 및 피해보상을 위주로 하는 단체협약의 역할을 폄하할 필요는 없지만, 그 기능이 상당히 방어적이고 단선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사전적이고 능동적인 개입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최고경영의사결정기구에 대한 노조의 참가와 결정권한의 확보가 시급히 요구된다.
또 다른 문제는 과연 노동조합이 기업이 추진하는 구조조정에 대해 그 근거를 검토하고 그 과정을 감시하고, 그 효과를 총체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능력과 역량을 가지고 있는가이다. 경제위기 이후 진행된 기업구조조정에 대한 노조의 대응양상을 살펴보면 현장조직력으로 대표되는 동원력은 가지고 있을지 모르지만, 기업의 구조조정전략이 지닌 문제점과 약점을 역으로 이용할 수 있을만한 대안형성역량은 아직도 미약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러한 대안형성역량이 단기간에 확보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기업별 노조 하에서 그 능력이 객관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면, 개별 노조들이 공동으로 출자하는 전문컨설팅 및 교육기관을 산업수준에서 혹은 업종단위별로 만들 필요가 있다.
한편 기업구조조정에 대한 독일노동자의 대응과정을 살펴보면서 개인적으로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되는 것은 기업별 교섭체계를 넘어서는 조직전환이 긴박하게 요구된다는 점이다.
독일의 경우 기업구조조정에 대한 노동자의 전략적인 개입이 기업에 대한 의존성의 강화, 기업별 노동자간 경쟁의 촉발이라는 부정적인 상황으로 치닫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적어도 기업단위를 넘어서 산별단위에서 임금 및 노동조건에 대한 임단협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기업별 교섭구조를 그대로 두고 단위노동조합이 기업구조조정과정에 개입하게 될 경우 임금 및 노동조건에 대한 교섭 그 자체가 구조조정의 성과에 의존하는 상황이 초래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교섭 및 조직체계의 산별전환은 일상적 기업구조조정에 대한 노동조합의 전략적 개입을 가능하게 만드는 하나의 계기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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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6. 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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