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노정연과 나
대학 졸업을 앞두고 진로를 고민하던 시절, 한 선배에게 대학원
진학에 대해 상담을 하게 되었다. 대학원에 가려면 무엇을
준비해야하는지, 대학원에서 무엇을 공부할 수 있는지 궁금한
것이 많았다. 그런데 그 선배는 공부할 생각이 있으면 일단 좋은
연구소를 소개시켜줄 터이니 따라와 보라는 말로 나의 질문들에
대한 답을 대신했었다. 선배를 따라 무턱대고 한 번 가본다고
따라나섰던 곳이 바로 한노정연이었다. 그리고 당시에 막
시작되었던 한 세미나팀에 합류하면서 나와 한노정연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연구소에서 시작한 공부는 매우 흥미롭고 즐거웠다.
학교에서 선배들, 후배들과 조야한 수준에서 공부해왔던 것과는
다른 차원의 공부였었다. 하지만 당초 선배의 조언과는 달리 그
해에 준비하던 대학원에는 떨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다음
해에 한노정연은 학교 대신에 다니는 곳이 되었다.
학내 정치조직에 속하지 않은 상태에서 ‘조직에 속하지
않고서는 진보적으로 살 수 없다’는 친구들의 말에 언제나
자괴감을 느끼며 살았던 나로서는 연구소에서 고민의 새로운
지평을 발견한 듯하였다.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절대적인 것으로
느껴졌던 많은 것들이 그 공간을 넘어서면 매우 작은 것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또 다른 자괴감이 시작되었다.
책으로만 ‘노동’을 공부하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세미나에
와서 나는 이렇게 굳은 살 하나 없는 손으로 책장을 넘기고
있는데, 옆방에 모여 있는 현장 분들을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그런 거리감은 쉽게 해소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연구소에서 접한 현실의 무게에 더 부딪쳐보지 않은
채, 연구소에서 보낸 시간만큼을 다시 군대에서 보내게
되었다.
많은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찾은 연구소의 분위기는 매우 다르게
느껴졌다. 예전보다는 훨씬 편안한 마음으로 연구소에 들릴 수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어려운 공간이었고,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계속 고민하게 하는 공간이었다. 앞으로 살면서
다른 공간에 속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한노정연에서 느꼈던
만큼의 것들을 다시 느끼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 한노정연은
해소되지만, 연구소에서 만났던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더
열심히 살고 고민해서 연구소에 돌려놓지 못한 것들을 되갚고
싶다. (정치학 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