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관계 로드맵’과 ‘비정규권리보장법안’
1. 열린우리당과 정부, ‘노사관계 로드맵’ 24개안 우선 처리 합의, 사측이 반대한 내용은 제외
11월11일,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당정협의를 열어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법안(노사관계 로드맵) 34개 과제 가운데 24개를 우선 처리하고, 나머지 10개는 이번 입법 대상에서 제외하고 6개 과제는 당정이 추가 논의를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노사관계 로드맵이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될 예정인 가운에, 열린우리당은 비정규직법이 국회에 계류돼 있는 상태에서 로드맵까지 입법예고 하면, 비정규직법 처리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어 12월9일 정기국회 폐회 후에 입법예고 하기를 바라고 있고, 정부는 의견수렴 등 법안처리 일정의 촉박함 등을 이유로 늦어도 이달 말 안에 입법예고하겠다는 태도이다.
노사관계 로드맵 24개 가운데 당정이 합의한 18개 항목 내용은 △실업자 조합원 자격 △긴급조정제도 △노동위 기능강화 △직장폐쇄 등 18개이며, 추후에 논의 하기로 한 나머지 6개 항은 △노조 전임자 급여지원 금지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대체근로 △직권중재제도 문제 △부당해고 형사처벌 관련 조항 △경영상 해고 제도와 관련한 사항 등이다. 제외된 10개 항목은 이미 시행되고 있거나 노사협의회 사항을 빼면 △교섭대상 확대 △조정대상 확대 △조정전치주의 폐지 △손배·가압류 제한 등이다.
‘노사관계 로드맵’ 내용이 지난 2003년 12월 선진화위원회 최종보고서 34개 과제 일괄처리보다 더 개악될 상황이다. 왜냐하면 앞서 확인되듯이‘노사관계 로드맵’ 중 노동진영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던 ‘교섭·조정대상 확대’, ‘조정전치주의 폐지’, ‘손배·가압류 제한’ 등 10개 과제와 자본측이 가장 반대했던 ‘통상임금 ․ 평균임금 개념 명확화’ 등 또한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보면, ‘로드맵’를 만든 선진화위원회는 조정대상을 단체교섭·쟁의행위 대상과 분리해 권리분쟁 등 모든 갈등사항으로 확대, 조정 활성화를 제안했다. 즉 파업의 정당성 문제와 별개로 해고자 복직, 단체협약 이행, 구조조정 등 다양한 노사갈등 사안을 교섭·조정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간과했던 과거와 달리, 조정의 대상으로 확대하는 데 초점을 뒀었다. 물론 권리분쟁 등으로 교섭대상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노동진영의 입장과 다소 거리가 있긴 하지만, 이번 입법 처리 대상에서 ‘조정대상 확대’와 ‘조정전치주의 폐지’ 과제가 제외 되었다는 것은 노사분쟁 접근의 ‘패러다임’의 후퇴로 드러난다.
이와는 달리 자본측은 ‘통상임금 개념 명확화’ 부분이 입법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됐다. 지난 2003년 12월 선진화위원회가 발표한 ‘로드맵’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그 동안 통상임금과 평균임금의 개념이 명확하지 않아 해석 및 임금관리상 혼란이 초래됐다며 연장근로수당이나 야간근로수당, 연월차 휴가수당 등의 산출기준이 되는 통상임금에 고정적으로 지급되는 상여금과 각종 수당이 포함되도록 했다. 그러나 기업들은 통상임금 규모가 커지면서 연장근로수당 등을 산출할 때 기업의 인건비 증가가 우려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9월 로드맵 중간보고 당시에는 전경련, 대한상의, 경총 사이에서 다소 입장을 달리했으나 12월 통상임금 부분이 첨가되자, ‘선진노사관계 로드맵’을 모두 반대했다.
또한 당정이 합의한 내용이 선진화위원회가 제출한 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당정이 합의한 것은 ‘복수노조와 전임자 임금 지급금지’, ‘직권중재 폐지’등의 원칙론이다. 노조 전임자에 대해서는 소규모 노조 지원방안이 제기되고 있고,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는 ‘다수대표제’(다수의 조합원이 있는 노조가 교섭에 대표로 참여)로 당정이 가닥을 잡고 있다. 공익사업 대체근로 허용 문제도 당정의 입장이 다르지 않다. 문제는 직권중재가 폐지된다고 해도 공익사업장이 확대되고, 긴급조정으로 인한 파업금지 기간이 길어지고 쟁의행위 시 최소업무를 유지하는데다가 대체근로까지 허용된다면 공공부문의 노동운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볼 때, 이번 당정 협의는 형식적으로는 노동계 의견을 무시하고 강행 처리하려는 비민주적 시도이고, 내용적으로는 자본측에 더욱더 힘을 강화시켜 노조의 무력화를 필연적으로 야기 시키는 문제를 안고 있다. 노조 무력화는 노동자 계급의 계급적 단결과 연대의 문제와 연결된다. 그런데 노동자 계급의 분열을 제도적으로 정착시키는 것이 비정규법안이기 때문에 노사관계 로드맵과 비정규법안 문제는 긴밀하게 연관된 문제이다.
2. 노사, ‘비정규권리보장법안’ 교섭이냐, 대화냐 놓고 논란 / 열리우리당, 특수고용법 내년 4월 입법화 목표로 내년 2월 입법 예고
배강욱 민주노총 집행위원장, 백헌기 한국노총 사무총장, 김영배 경총 부회장은 15일 만나 18일, 21일, 23일 정오에 세 번의 교섭을 열어 조항별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기로 했다. 그런데 비정규법 노사교섭 만남을 두고 노사간 법안 ‘내용’과 만남의 ‘성격’을 두고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10일 회동 합의서에서 노사 대표자들은 △비정규보호입법안이 정기국회 회기 내에 입법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대화’하고 △노사 ‘대화’는 4월 노사정 협상에서 논의한 내용을 토대로 출발하며 △‘대화’의 기간은 10일부터 30일까지로 한다고 약속했다. 양대노총은 비정규직법안을 두고 벌이는 ‘교섭’ 또는 ‘협상’이라고 규정한 반면에, 자본측은 ‘대화’라고 규정하고 있다. 15일 만남에서 노동진영은 4~6월 교섭 결과를 토대로 논의 시작한다는 입장이고, 반면 경총은 4~6월 교섭과 이번 만남은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이렇게 노사가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는 이유는 자본측에서 볼 때, 비정규직법을 다루는 것 자체가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다는 인식 때문이다. 이런 인식의 연장선에서 자본측은 이번 교섭이 ‘4월 노사정 협상’이후 ‘재개’된 것이라는 점도 부인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이번 협상이 ‘환경노동위 차원’으로 진행되는 것인지 ‘열린우리당의 주선’으로 열리는 것인지에 대한 ‘해석’ 차이로까지 이어진다. 양대노총은 일단 24일 환노위 차원의 중간점검을 염두에 두고 교섭 진행 과정은 ‘환노위 차원의 교섭’으로 해석하고 있다. 반면에 자본측은 법안을 두고 벌이는 ‘협상’아닌 ‘노사간 임의적인 대화’라는 해석이기 때문에 24일 환노위 차원의 중간점검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렇듯 노사가 만남의 성격에 대한 해석과 입장 차이를 드러내는 이면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다. 노사는 노사 만남을 어떻게 규정하는가에 따라 교섭의 ‘실효성’이 좌우되고, 지난 4월 노사정 교섭 결과의 연장선 여부도 가려지기 때문이다. 이미 자본측은 지난 4월 교섭을 환노위 차원의 공식적인 ‘노사정 협상’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교섭까지 환노위 차원의 교섭으로 인정하게 되면, 결국 4월 노사정 협상의 연장선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간 최대한 양보할 수 있는 선을 ‘정부안’이라고 밝혀 온 자본측에서는 정부안에 비해 노동진영의 요구가 조금 더 반영된 4월 협상 결과를 인정하면서 이번 교섭을 시작하는 것 자체가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된다는 판단으로 보인다.
또한 노동진영의 주장대로 환노위에서 노사 당사자에게 일정한 권한을 ‘위임’한 것이라면 환노위 법안 심의 과정에서 교섭 과정이나 결과를 인정해야 한다. 반면에 자본측의 주장대로 이번 교섭이 열린우리당이 주선한 단순한 ‘노사대화’라면, 교섭 과정이나 심의 과정을 인정하지 않아도 되는 근거를 마련하게 된다. 그런데 자본측의 입장과 맞물려 만약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이 노사 교섭을 ‘열린우리당이 주선한 임의 교섭’이라고 문제를 제기하거나, 국회의원의 입법권을 강조하고 나설 경우, 그만큼 교섭의 실효성이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내년 지방선거와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으로 이어지는 정치일정상 17대 국회에서는 비정규법안을 처리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이번 정기국회에서 ‘비정규권리보장법안’을 반드시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열린우리당은 민주노동당이 점거할 경우 ‘질서유지권’을 발동해 비정규직법을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은 미합의 상황에서 법안을 심의하게 될 경우, 지난 6월 국회에서처럼 회의장을 점거해 법안 처리가 무산되는 상황에 이르면 법안 처리 무산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또한 열린우리당도 ‘질서유지권’을 발동하여 비정규법안을 처리할 경우, 향후 비정규직법과 관련된 모든 책임을 열린우리당이 감수해야하는 정치적 부담이 남는다.
한편 열린우리당은 특수고용관련법을 내년 4월 입법화 목표로 내년 2월 중 입법 예고할 계획이다. 열린우리당은 노사정위 논의 결과를 지켜보되, 파행 운영 중인 노사정위가 결론을 내지 못할 경우 정부안을 추진케 하고, 정부안도 안 될 경우에는 의원발의라도 하겠다는 태도이다. 노동진영은 비정규직 협상에서 특수고용직 노동3권 보장방안도 교섭의제로 포합시켜 연내 입법화을 일차 목표로 하고, 연내 입법화에 검토 시간이 필요하면 노동기본권 보장을 명확히 하면서 노사정 교섭구조를 최대한 빨리 확보하도록 할 계획이다.
그러나 비정규직법 노사 교섭에서도 특수고용직보호방안을 다루기는 힘들어 보인다. 자본측은 특수고용직노동3권보장방안에 대해 노사정위원회 외의 논의 틀을 생각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비정규직법 노사교섭과 별도의 특수고용에 관한 노사정 교섭이 거론되고 있다. 만약 이러한 교섭이 시작되면 교섭을 진행하는 기간이 필요해, 입법 시기가 변경될 수 있다. 특수고용직 관련 논의는 2003년 9월부터 노사정위 특고특위에서 다뤄왔지만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논의 자체가 중단됐다. 2년간의 특고특위 논의 시한도 지난 9월로 끝났다. 당시 노사정은 논의 불충분 등을 이유로 정부 이송 유보를 결정했다.
11월11일, 노사는 30일까지 노사교섭을 진행하기로 했다. 만약 30일 이전에 비정규 노사협상이 결렬되면, 노사 모두 교섭 결렬에 대한 비난여론은 피할 수 없다. 24일에는 이경재 환노위 위원장과 중간점검을 하기로 했고, 국회 환노위 법안심사소위가 11월28, 29일로 예정됐기 때문에 30일까지 교섭이 진행된 뒤 12월1일부터 법안심사소위가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전망 속에서 민주노총은 11월22일부터 국회 앞 농성에 들어가, 12월1일 총파업을 준비할 계획이다.
국회 본회의가 12월1일과 8,9일로 잡혀 있고, 12월 임시국회 가능성을 고려한다면 며칠 동안의 교섭연장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교섭기간이 연장될 경우, 민주노총은 파업투쟁계획을 연기할 가능성이 없다. 이러한 민주노총의 입장에서 남는 문제는 파업 조직 동력 확보이다. 민주노총이 19일까지 연기했던 파업찬반투표 기간을 25일까지 연장한 것은 현재까지의 찬반투표 결과가 파업 조직동력의 확보가 미약함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전국철도노조가 최고의 찬성률 75.4%로 총파업을 결의하고 20일 집회를 갖고, 26-29일 전국 5개권역에서 총력결의 대회를 개최할 예정이고, ‘비정규 권리입법 쟁취와 투쟁사업장 승리를 위한공동투쟁본부(준)’은 특수고용노동자 노동3권 쟁취를 위해 국회앞 거점 농성을 10일부터 확대하고 14일부터 18일까지 전국순회 투쟁을 했다. 또한 23일, 총파업 승리 및 비정규노조 간부파업 결의대회를 진행하며 11월말 전면적인 총파업에 돌입한다는 방침이다. 보건의료노조 또한 쟁의행위 1차 찬반투표에서 76.1% 찬성으로 가결됐다. 물론 현대자동차노조가 선거 시기에 들어가 있는 상태이긴 하지만 현대자동차노조 또한 총파업시 찬반투표 없이 총파업에 돌입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일정정도의 투쟁동력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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